임철우-‘사평역’을 읽고(kmdh1988)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소설화한 작품이기도 한 임철우의 사평역.
고교시절에 자주 접했던 언어영역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전개는 단순하다. 추운 겨울날. 사평역 대합실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 못할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소설은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삶을 끄집어내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한 구석에 남모를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시골 농부. 사상범으로 구속되었다가 갓 출소한 갈 곳 없는 중년 사내. 학생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하고 고향에 내려온 청년. 출세의 꿈을 안고 상경했으나 홍등가에서 몸을 팔아먹고 사는 가련한 처녀.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고 콧대 높지만 마음 한 켠에 살가운 정을 품고 있는 서울 여자. 그리고 굴비와 옷가지 장사를 하는 아낙네 두 명과 미친 여자.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는 그들. 그 이유는 아마 그들 모두가 7~80년대의 사회 격동기를 살다 간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등장 인물 모두가 당시대와는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고 울퉁불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하염없이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막상 기차가 온다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는 삶.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소설은 당대 사람들의 어두운 삶과 좌절만을 암시하고 있지만은 않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그들에게, 늙은 역장은 톱밥 한 자루를 선사한다. 그리고 그 톱밥을 조금씩 화로 안에 던져 넣으면서, 다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정신적 위안을 받게 되지는 않았을까. 톱밥을 던지는 행위, 그것은 추운 겨울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가가 던지는 작은 희망의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흐름에 긴 여운. 그것이 이 소설의 최고 백미일지도 모른다. 기차에 사람들이 오르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은 곤히 잠든 미친 여자다. 세상에서 가장 소외받고 상처받은 한 영혼. 홀로 텅 빈 사평역 대합실을 지키고 있는 그녀를 위해, 역장은 톱밥 한 줌을 다시금 난로 속에 던져넣을 것이다. 그리고 난로 속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절대로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지는 모르지만 시보다는 소설 쪽이 역시 좋았다. 시에서 보여주지 못한 구체적인 인물들의 삶을 꿰뚫어 봄으로서 그들의 삶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시의 정서 또한 소설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여백의 미는 꼭 시의 전유물만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