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규장전’을 읽고... (다산)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나는데 영 내용이 생각나질 않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내용이 기억이 나는 거다.
만복사 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총 다섯가지의 소재로 다뤄져 있다. 다 어려운 한문으로 된 이름이라 기억하기가 낯설었다.
매월당 김시습이 나고 자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은 건지 작가의 유, 불, 선 사상이 적절하게 혼합돼 있는 거 같다.
작가는 약간은 현실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렇게 강하게 자기색채를 나타내지 않는 걸 보니........
고려 공민왕 때 송도(지금의 개성)에 이생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용모가 뛰어나고 재주가 많은 청년이었는데 어느 날 최랑이라는 부잣집 담벼락을 타고 들려오는 아가씨의 시를 듣고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시를 적어 돌에 말아 집안으로 던졌고 그게 인연이 되어 최랑과 함께 노느라 집에도 사흘만에 들어가게 되자 이생의 아버지가 아들의 잘못을 알고 크게 꾸짖어 울주로 유배가듯 내 쫓기게 되었고 최랑은 이생을 못 잊고 그리워 하다가 결국은 부모님께 이생과의 일을 이야기하기에 이르고 최랑의 부모는 이생의 부모를 설득하여 둘은 우여곡절끝에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 후 이생은 학업에 정진하여 장원급제를 한 후 벼슬에 올랐고 행복한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이 쳐들어와 왕도 복주로 피난을 가게 됐고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다시피 적에게 짓밟히게 되었다.
이생도 최랑과 피난을 가게 됐는데 홍건적에게 쫓기다가 이생은 가까스로 탈출을 했는데 뒤쫒아 오던 최랑은 홍건적에게 잡히고 말았다.
도적이 최랑을 겁탈하려하자 최랑은 도적을 크게 혼내며 죽어서 이리의 밥이 될 지언정 개돼지같은 네놈의 배필은 못 되겠다고 꾸짖었고 도적은 노하여 최랑을 죽이고 만다.
한참 뒤 도적들이 물러간 뒤 이생이 집으로 와보니 집은 다 불타 없어졌고 최랑의 집엘 가보니 행랑만 남아 있었다.
이생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을 하며 있는데 밤이 되었고 어디선가 최랑이 생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이생은 분명 최랑이 죽은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여 최랑과 꿈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부모의 유골을 찾아 묻어주고 최랑의 안내하에 금붙이며 보물을 팔아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삼년의 세월이 흘렀고 최랑은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며 이별을 고했으며 이생은 그녀의 유골을 거두어 부모의 묘소 곁에 묻어주고 여인을 추모하다가 병을 얻어 수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설화를 소재로 삼은 것 같기도하다.
비현실적인 사랑.......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사랑을 묘사한 명혼소설은 김시습의 상상력을 말해주는 거 같다.
작가의 상상력과는 무관하게 이 글을 읽으면서 고려시대 때 최랑 같은 처자가 오히려 더 대담하게 외간 남자를 집 안으로 불러들이고 결혼도 하기 전에 사흘밤낮을 함께 보냈다는 게 너무 파격적이었다,
얼마나 적극적인 여성이었으면 자기생각을 아무런 거침없이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집안의 체통도 체통이지만 자식의 목숨을 위해 부잣집 양반가에서 가난한 양반가의 사위를 맞이하기 위해 두 번의 중매쟁이를 보내 결혼을 성사시킨 최랑의 부모의 모습도 옛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내용이어서 조금 놀랐다.
상식적으로는 그 시대의 다른 소설에서는 부모의 모습이 거의 가문과 체통을 중요시해서 자식 특히나 딸의 의견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부모의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특이했다.
김시습이란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홍건적의 난 때 피난길에 오를 때도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어떻게든 지켜주지 못하고 홀로 도망친 이생에 대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뭘까?를 생각해봤다.
아마도..... 살기위해 사랑하는 사람조차 버리게 만드는 비정한 인간의 생존본능과 인간의 한계점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 사랑에 변함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된 게 죽은 부인인줄 알면서도 한 치 의심도 없이 행복하게 서로 사랑을 하며 삼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다는 내용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영원한 이별 앞에서 더 이상의 삶의 의미를 못 느껴서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이생.
비현실적이지만 슬픈 사랑의 이야기였다.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