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3 - 8. '불'(현진건) 줄거리 및 감상하기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2.10.24|조회수577 목록 댓글 0

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3


8, 불(현진건) 줄거리


시집 온 지 한 달 남짓한, 금년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순이는 잠이 어릿한 가운데서도 숨길이 답답함을 느낀다. 천 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듯한 중압감과 아픔에 시달리지만, 피곤한 몸 때문에 도무지 눈을 뜨지 못한다. 그러다 억지로 눈을 떠 보니, 험상궂은 모습의 남편이 자기를 덮고 있다.

  그 무서운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때에는 유월의 짧은 밤이 새고 나서였다. 남편은 새벽일을 나갔고, 순이는 이 원수의 방을 살펴본다. 어젯밤 분명히 헛간에 몰래 숨어 잤는데, 남편이 방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시어머니의 불같은 호령이 들려온다. 쇠죽솥에 불을 지피고 나서 물동이를 이고는 물을 길러 간다. 큰비 덕택으로 논에는 윤기가 흐르고 새벽의 안개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보인다. 순이는 동이로 물을 길어 나른다. 또 한 동이를 이려고 왔을 때 송사리가 욜랑거린다. 한 마리를 손으로 움켜 내어 바닥에 던진다. 송사리가 죽어 버리자 생명을 앗은 공포감이 밀려온다.

  바쁘게 아침을 치르고 난 뒤 보리를 찧고, 또 점심을 지어서는 모내기하는 일꾼들에게 줄 밥을 이고 나선다. 건강한 모습의 일꾼들이 논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들판은 생명의 기쁨으로 넘치고 있다. 불건강을 허락하지 않는 천지였다. 순이만 불건강한 것이었다. 순이는 정신이 어찔해지며 그만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한참 만에 깨어나 보니 집이었다. 그리고 그 원수의 방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순이는 미친 듯이 밖으로 뛰어나온다. 시어머니는 쉬지 않고 나온다고 나무란다. 그릇 깨뜨린 걸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쓰러진 며느리를 꾸짖을 수는 없어 참고 있는 차에, 순이가 그만 싫다고 단호히 대답하자 치받치는 미움을 참지 못해 순이에게 욕을 하며 매질을 한다. 순이는 매를 맞으면서도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럭저럭 해가 저물고 밤마다 느끼는 공포심이 또 밀려온다. 날마다 당하는 고생과 시어머니에게 당한 매질을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남편이 들어와 자상하게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주고는 나간다. 남편을 본 뒤 공포심은 더 커진다. 그 원수의 방을 없앨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할 때 성냥이 보인다. 여태 그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생각하며 생그레 웃는다. 그 날 밤 난데없는 불이 집을 휩싼다. 뒷집 담 모서리에서 순이는 환한 얼굴로 기쁨에 젖어 모로 뛰고 세로 뛴다.<개벽>(1925)


핵심 정리

 갈래 : 단편소설

 배경 : 농사일로 바쁜 6월의 농촌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특징 : 사실적 문체

주제 : 가혹한 노동과 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함. 열다섯 살 어린 민며느리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학대에 대한 비판


인물의 성격 :

순이 → 열다섯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육체적 고통과 남편의 성적 횡포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원수의 방에 불을 지르고 마는 여자.

남편 → 부지런하며 일에만 열중하는 인물. 인정이 없지는 않으나 순이에게는 성적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시어머니 → 며느리에게 모질 게 대하는 인색한 시어머니



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은 가난한 집 민며느리로 어린 나이에 들어간 순이가 힘에 겨운 농사일과 남편의 과도한 성욕, 시어머니의 몰이해와 학대에 견디다 못해 집에 불을 지르는 행동으로 반항하는 소설이다. 크게 보면 한국적 조혼 제도의 비판과 인간해방을 주제의식으로 한다고 볼 수 있는데, 불을 질러 태워 없애 버리겠다는 적극성을 띄고 있다. 다만, 그 행위가 주인공 순이의 자각되지 않은 일시적 충동에 불과하다는 점에 아쉬움이 있다.


◈ 순이가 당하는 고통 → 첫째, 아직 성숙되지 않은 소녀의 나이(15세)에 결혼을 하게 되고, 야수적인 남편으로부터의 성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고통받는 실상을 통해 제도적인 성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성의 박탈이 인간 조건을 상실하게 하는 요인이 됨과 마찬가지로, 준비되지 않은 성의 부여 또한 그에 못지 않은 고통을 주는 것이다.  둘째, 순이는 과도한 노동으로도 시달림을 받는다. 휴식이 주어지지 않는 일상이다. 새벽부터 밤이 이슥하도록 일에 매달린다. 휴식의 시간인 밤마저 성에 의해 빼앗긴다.


◈ 작가는 성 문제를 노동과 결부시키면서 인간적 애욕의 세계마저도 노동의 힘겨움에 밀려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실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이런 부조리를 자아내는 시대 현실에도 관심을 가지고 주목한다.


◈ 불

 무화(無化)에의 열망 → 성의 노예, 노동의 노예가 된 열다섯 앳된 여자의 불지르기는 성과 노동의 무게로부터 벗어나려는 열망의 표출이다. 불이 모든 것을 소멸시키듯 그 불에 의해 지겨운 성과 노동이 사라져 가기를 염원하는 내면의 불길이기도 하다. 물론 불지르기가 현실적인 고통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불이 꺼진 뒤에는 더 많은 노동의 양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고, 정신적인 고통까지 수반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우선 불지르기로 해결하려고 한 점과 불을 질러 놓고 좋아라 하는 그 천진한 모습에서 연민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가련한 여자이다.


◈ 구성적 측면에서 본다면, 쇠죽 솥에 불을 지피고 앉아 불붙는 모양을 흥미있게 구경하는 순이의 모습을 통하여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암시를 보인 점, 샘물에서 송사리와 희롱하는 천진난만한 모습과 그 송사리를 태질하는 가학적 행동의 대비를 통하여 순이의 순진함과 이상심리를 교차시키는 대목들은 뛰어난 단편 소설적 기교라고 할 수 있다.


◈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한계는,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농촌 상황보다는 민며느리 제도의 비극적 측면에 그 초점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사실적 묘사와 치밀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현실에 대한 당대적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고난과 갈등의 원인에 대한 이성적인 파악 없이 즉물적인 파괴 행위로 사태에 대응한다는 결말이 문학적 감동을 반감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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