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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고 삶 쓰기

시 읽고 삶 쓰기(4) - 3.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원문과 감상하기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4.09.19|조회수3,899 목록 댓글 0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 어느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운 꼿닢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처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믄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순수시

성격 : 유미적. 낭만적

어조 : 여성적

표현 : 역설적

구성 : 수미쌍관의 구성

   * 소망의 시로 보는 경우(주제 -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림)

    1-2행:모란이 피기를 기다림(기)

    3-10행:모란을 잃은 슬픔(서)

    11-12행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결)


   * 존재론의 시로 보는 경우(주제 - 존재의 초월과 상승)

    1-4행   생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피어남과 떨어짐, 기다림과 여읨)

    5-8행   생명의 모순성 및 숙명적 비극성에 대한 탄식

    9-12행  기다림으로의 전이와 도치(생명의 원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제재 : 모란의 개화와 낙화, 봄

주제 :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림, 미(美)의 추구


이해와 감상1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이야기는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한다. 1930년대 순수시파의 대표적 시인인 김영랑의 이 시 또한 시를 애송하는 현대인에게 그러한 가치를 깨닫게 한다.

  모란이 피면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고, 모란이 졌을 때 그 소망이 무너져 삼백 예순 날을 슬퍼하더라도 나는 다시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겠다는 화자의 '모란'에 대한 애착과 집념은 눈물겨운 것이다. 쉽게 계획하고, 쉽게 좌절하며, 포기하는 듯한 오늘 우리의 현실 속의 인생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 시는 많은 암시를 주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모란'의 상징성이다. 꽃은 아름다움이요, 희망이요, 밝음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과 좌절과 어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 자체가 어느 일면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다양한 모습과 성격을 지닌다.

  유미주의 작가인 영랑은 '모란'에서, 그러한 사물의 속성을 통해 인간이 절망하고 시련에 빠질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해 냈을 것이다.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할 때, 일제 강점하에서 이 시가 쓰여졌다면,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몸부림도 한편으로 느껴지리라. -김태형,정희성 엮음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중에서

 

이해와 감상 2

 ‘봄’은 겨울의 불모성을 극복하고 대지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북돋운다. 모든 생명을 싹트게 하고 사람들은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 그 봄의 막바지인 5월에 모란은 피기 때문에 모란은 봄의 절정을 장식한다. 따라서 ‘모란’이 지면 ‘봄’도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봄’과 ‘모란’은 시인에게 하나의 의미로 맺어질 수 있다. 이 때 ‘봄’(모란)은 시인의 희망과 소망을 상징한 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모란’을 단지 소망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꽃은 겨울의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 봄에 개화할 수 있다. 따라서 꽃이 아름다움이요, 희망의 상징이라 하더라도 그 이면에 있는 고통과 좌절과 어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느 면에서 인간의 인생과 공통점을 지닌다. 결국 ‘모란’을 통해 영랑은 인간의 절망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가 쓰여진 일제 강점기 하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시의 심각성은 더해지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가는 ‘봄’과 피어나는 ‘모란’의 결합이다. 봄의 막바지에 모란이 피어나기 때문에, 모란은 봄의 절정을 장식한다. 그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모란이 지는 날이면 봄도 잃을 수밖에 없다. 이 시에서 시인이 포착하고 있는 절정의 순간은 결국 봄과 모란을 함께 상실하는 순간이라고 할 것이다. 소멸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서의 극치를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참고> ‘모란’과 ‘봄’의 상실감

영랑의 시가 지닌 특색 중의 하나는 ‘오월’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 수의 비율로 보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나, 영랑의 강렬한 의도적 반영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후기시는 ‘오월’, ‘오월 아침’, ‘오월 한(恨)’ 등과 같이 ‘오월’을 직접 표제로 하고 있다. 또한 ‘가늘한 내음’이나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은 초기시에서도 ‘오월’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처럼 모란이 피는 ‘오월’에다 봄의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영랑에게 봄과 여름의 경계인 ‘5월’은 ‘찬란한 슬픔’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봄 가운데서도 온갖 꽃들이 만개하는 계절적 심상보다는 굳이 5월에 피는 ‘모란’을 통하여 자아의 상실감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그의 시를 더욱 애상적으로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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