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이원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인간들의 동화책에서만 나온다
만일 그들이 바다에서 경주를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마저 인간의 생각일 뿐
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생각한다 왜 백 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출발선에 슬슬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가
한 오백년 뒤 저의 푸른 그림자로
아예 골인 지점을 지워버릴 것이다
마침내 비닐하우스 속에
온 지구를 구겨 넣고 계시는,
스스로 속성재배 되는지도 모르시는
인간은 그리하여 살아도 백년을 넘지 못한다
* 토끼보다 먼저 목표지점에 도착한 거북이는 행복했을까? 그 목표는 정말 거북이가 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경주 도중 토끼는 왜 잠잘 생각을 했을까?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성장 환경이 다르고, 서식지도 다른데 무엇 때문에 경주를 하게 되었을까? 토끼와 거북이는 이 경주의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까? “미안하지만 이마저 인간의 생각일 뿐/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몇 해 전 둑방을 산책하는 데, 부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멈추어 서더니, 부추를 모두 둑방 아래로 쏟아 버리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가까이 갔더니 트럭에서 내리는 아저씨의 눈자위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돌아갈 기름 값 조차 건질 수 없었다는 아저씨 목소리가 사포로 문지르듯 거칠고 갈라져있었다. 열심히 앞만 보고 농사를 지었을 뿐인데, 마지막 목적지에서 자신이 성실하게 지은 농산물을 팔 수 없었던 거북이 아저씨. 토끼처럼 졸았던 적도 없이 열심히 자신의 “속도”로 나아갔던 아저씨는 무엇에 진 것일까?
거북이의 “속도”로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가도 내 집 한 채 마련하려면 십여 년은커녕 평생이 걸리는 현실 속에서, 500여 채 이상의 집을 혼자 소유하고 토끼처럼 낮잠을 즐겨도 늘어나기만 하는 부의 “속도”를 거북이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토끼와 거북이 경주가 주는 교훈은 누구를 위한 걸까?
서대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