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八福) ㅡ마태복음 5장 3~12절(윤동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해설1
이 시가 반(反)신앙시 혹은 풍자시라는 평론이나 논문들이 있다. 이러한 논문들은 윤동주가 썼던 "슬픈"이라는 단어조차도 검색해보지 않았던 논문들이다. 시(詩)는 시 스스로 증언한다. 시가 시를 말한다.윤동주를 제대로 읽지 못한 단견들이다. 윤동주야 말로 본회퍼가 말했던 '은밀한 비범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슬픔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단순한 '비범성'의 원리를 깨달은 것이다. (김응교)
해설2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동주야, 따라해 봐."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시인은 슬픔이 곧 복이라는 재앙스런 말을 여덟 번이나 되풀이한다. 어째서 슬픔은 복이라고 무정한 신은 말하는가. 어째서 슬픔 따위가 복인가..
윤동주의 중얼거림은, 산상수훈의 부정도 신성모독도 아니다. 이 슬픔의 끝을 묻지 않는 것에, 슬픔의 영구 실천 속에 희망의 씨앗이 들어 있다는 뜻 아닐까. 어리석은 목소리로 엎드려 똑똑히 따라 말한 끝에, 스물세 살의 젊은이는 육사의 <절정>과는 또 다른, "한국시의 비극적 황홀"(김종길)에 이른다.
시의 이런 순간은, 정말 놀랍다..(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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