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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고 삶 쓰기

시 읽고 삶쓰기(4) - (16)가정(家庭)(박목월) 원문 읽기 및 감상하기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5.02.02|조회수500 목록 댓글 0

가정(家庭)(박목월)

지상(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들깐 : 경상도 방언으로 부엌 가까이 설치되어 주로 주방 용품을 보관하는 곳간

 

 

핵심정리

주제 아버지로서의 삶의 고달픔과 가족에 대한 애정

 

이해와 감상

"가정"'자연'을 노래하던 그의 초기시와는 달리 '생활'을 노래한 시인의 중기시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이 시에는 평이한 일상어로 가난한 시인의 생활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1연에서 서정적 자아는 귀가한다. 하루 일에 지친 몸을 끌고 돌아와 보니, 현관에는 아홉 켤레의 구두가 놓여 있다. 그 구두의 크기는 곧 자식들의 크기이고, 넉넉하진 못하지만 정겨운 가정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지상'이란 표현도 재미있다. 일단 가정에 돌아오면 가정은 하나의 세계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2연에서 시인은 식구들의 아홉 켤레의 신 옆에 자기 신을 벗어 놓는다. 이른바 가족 공동체이다. 가장 큰 신발의 아버지와 가장 작은 신발의 막내둥이로 모든 가족은 대표된다.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란 표현은 서정적 자아의 고달픈 일상적 삶을 간결하면서도 실감 있게 표현해 주는 구절이다.

3연의 1,2행에는 생활은 고달프지만 너희들 앞에서는 내 웃는 얼굴을 보이리라 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여기는/지상'은 어렵고도 고달프게 사는 가정을 뜻하며 '연민한 삶의 길이여'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내 신발은 십구 문반'은 막내의 '육문 삼'과 대비되어 가장으로서의 생활의 책임을 실감 있게 나타낸 것이다.

4연에서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는 이 시의 중심이 되는 구절로 생활에 시달리는 가장의 통곡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에서 이 시대를 사는 아버지의 굳건함을 읽을 수 있다. 아버지를 '십구 문 반의 신발'로 표징함으로써 객관화시켜 극복의 발판을 준비한다. 또한 3연의 첫머리에 나왔던 '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를 다시 반복함으로써 고달픔을 극복하려는, 자식들 앞에서 당당하려는 다짐을 나타낸다. -윤재열 외 <즐거운 시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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