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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고 삶 쓰기

시 읽고 삶 쓰기 10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읽고 감상하기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2.06.25|조회수796 목록 댓글 0

시 읽고 삶 쓰기 10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시집 '거대한 뿌리', 1974)




핵심 정리

성격 : 비판적. 자조적

표현 :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함

제재 : 현실의 불합리와 부조리

주제 : 억압적 정치권력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방관하는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고발함,

출전 : <거대한 뿌리>(1974)


<이해와 감상1>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진솔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발견하게 된 자신의 초상(肖像)은 자신이 추구하는 시의 경향이나 민중 시인으로서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땅 주인’이나 ‘구청 직원’ 또는 ‘동회 직원’, 소위 가진 자, 힘 있는 자에게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이발장이’나 ‘야경꾼’들로 대표된 가지지 못한 자, 힘없는 자에게는 단돈 일 원 때문에 흥분한다. 또 그는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다 ‘붙잡혀 간’ 소설가를 보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대항하지 못하고, ‘설렁탕집’에서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한다. 이렇게 커다란 부정과 불의에는 대항하지 못하면서도 사소한 것에만 흥분하고 분개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봄으로써 마침내 시인은 자기모멸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또한, ‘절정 위에는 서 있지 /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는 자신의 방관자적 자세를 확인한 그는 ‘모래’․‘풀’․‘바람’보다도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비판, 반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은 아무 죄 없는 소설가를 구속하거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에는 정면에서 대적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의식을 폭로, 고발하는 진지한 자기반성을 통해 자신의 최후이자, 최고의 작품인 <풀>이라는 걸작을 창작하게 되는 정신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작가가 1965년 11월 어느 날 고궁 나들이를 다녀오고 나서 쓴 작품이다. 역사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해서는 저항하거나 비판하지 못하고 일상(日常)의 사소한 일에만 화를 내는 자신의 소시민적 태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4․19 혁명으로 한층 부풀었던 자유와 사랑과 양심에의 희망이 5․16 군사 쿠데타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가능한 자신의 처지를 조롱함으로써 한때 소리 높여 외쳤던 자유, 사랑, 혁명이 좌절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무엇보다도 시인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진솔하게 보여 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발견하게 된 자신의 초상(肖像)은 자신이 추구하는 시의 경향이나 민중 시인으로서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땅 주인’이나 ‘구청 직원’ 또는 ‘동회 직원’, 소위 가진 자, 힘 있는 자에게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이발장이’나 ‘야경꾼’들로 대표된 가지지 못한 자, 힘없는 자에게는 단돈 일 원 때문에 흥분한다. 또 그는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다 ‘붙잡혀간’ 소설가를 보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대항하지 못하고, ‘설렁탕집’에서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한다. 이렇게 커다란 부정과 불의에는 대항하지 못하면서도 사소한 것에만 흥분하고 분개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봄으로써 마침내 시인은 자기 모멸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또한, ‘절정 위에는 서 있지 /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는 자신의 방관자적 자세를 확인한 그는 ‘모래’․‘풀’․‘바람’보다도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비판, 반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은 아무 죄 없는 소설가를 구속하거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에는 정면에서 대적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의식을 폭로, 고발하는 진지한 자기 반성을 통해 자신의 최후이자, 최고의 작품인 <풀>이라는 걸작을 창작하게 되는 정신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보충>

1950년 6월 25일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특별한 의식없이, 세태에 따라서 잔류 문인들과 함께 문학가 동맹에 들어감. 의용군으로 북으로 끌려감. 평남 개천 야영 훈련소, 북원 훈련소를 거치다가 유엔군의 평양 탈환으로 남하. 서울 집 근처까지 왔다가 탈주자로 오인되어 경찰에 체포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이념으로 빚어지는 참상을 목격한 듯하다. 이때의 기억은 평생토록 상처가 되어 심하게 그를 움츠러들게 했다.

1951년 부산포로 수용소 제14 야전 병원에 이송(외과병원장 통역)→1952년 12월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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