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계양(품자주자 시민들 공동대표, 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라는 영화는 미국이 낳은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미국인 용병 로버트 조단(케리 쿠퍼)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교량 폭파의 임무를 맡은 3일 동안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와 맑고 순수하고 간절한 사랑을 하고, 끝내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후 그녀를 위해 적탄에 맞아 죽는 아름답고도 장렬한 서사로 되어 있다. 이 영화 제목은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죽음에 임한 때(비상시/위급한 때)의 기도’(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 중 17번째 기도문에서 인용하였다. 심지어 영화의 주인공 조단도 시인 존 던의 이름을 비슷하게 차용했다고 한다. 시를 다시 읽어 본다.
‘인간은 누구도 혼자만의 섬이 아니다./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본토의 일부일 뿐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쓸려나가면,/유럽은 그만큼 줄어든다./바다로 툭 뛰어나온 육지도 마찬가지다./누구의 죽음이든,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하기 때문이다./그러니 누구를 위해서 조종(弔鐘)이 울리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마라./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이 기도문은 1624년 유행하던 페스트의 진행 과정과 내면세계를 23편의 글로 남긴 것으로 『인간은 섬이 아니다』(나남, 2023)로 번역돼 있고, 부제는 ‘병의 단계마다 드리는 기도’이다.
존 던은 성공회 수석 사제로서 전염병에 신음하는 환자들에게 온종일 성경과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다 그에게도 페스트의 증상이 나타나고 시시각각 찾아오는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급기야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을 깊이 묵상 묵상하는 가운데 이 기록들을 남기게 된다.
이 시에서 종소리는 죽은 자를 위한 교회의 조종(弔鐘) 소리를 말하며 존 던은 병상에서 이 소리를 듣는다. 당시 런던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교회에서 종을 치면서 애도했다. 존 던은 ‘종소리가 죽은 자뿐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종소리도 될 것이니 그 종이 자신을 위하여 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하여 울린다’고 기록하였다. 또 ‘어떠한 인간도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섬일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바다에 떠 있는 대륙의 일부이다. 하나의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사라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진다. (중략) 당신 자신의 소유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한 인간의 죽음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니 나는 인류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그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개인의 죽음은 인류공동체 전체와 연관 되어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이미 겪은 바 있는 코로나가 그렇고, 지금 겪고 있는 기후 위기와 산불이 그렇다. 나아가 개인적,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불법 계엄을 통해 혐오와 배제, 차별을 일삼는 무리들이 새겨야 할 경구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로버트 조단의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은 전쟁이 개인에게도 상처와 회의감을 준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정치, 경제, 사회 이념의 대립, 갈등, 분열하는 폭력적인 행위로는 개인의 희생뿐만 아니라 집단이나 공동체를 훼손하게 됨을 보여준다.
헤밍웨이의 이 소설은 스페인 내전이라는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과 이념적 갈등이 한 나라를 둘로 분열시키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비극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나라도 탄핵을 두고 정치적 대립과 이념의 극단적 갈등, 적대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는 앞으로도 개인과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협할 것이 뻔하여 걱정이다.
이 작품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가 ‘모두를 위해’(For every)나 ‘누구를 위한’(For whom)이라는 문구를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보면 아마 갈등과 대립과 적대보다는 이해와 희생을 통한 공감과 공존을 중시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종소리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증오와 적대, 파괴를 부추기는 무리들의 귀에 울림이 되면 좋겠다. 종소리는 울림, 감동, 감화, 공감, 깨달음, 각성을 주기 때문에 ‘울린다’고 하는 게 아닐까.
흙 한 줌이 유럽 영토를 좁히듯, 개인의 이념이나 욕망의 선택이 공동체에 어떻게 관련을 맺고 영향을 주는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소설과 영화와 시가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소통 부재와 연대의 약화, 극단적 이기와 편향된 이념의 광기에 사로잡힌 우리나라와 특히 불량한 지도자(?)들에게 경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광주매일신문 칼럼 2025.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