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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아기편지

제2185신: 장한 어머니 김복례!

작성자취원|작성시간25.05.08|조회수177 목록 댓글 6


장한 어머니 김복례!

엄마!
어젯밤도 별일 없이 오늘을 맞습니다.
‘캄캄하고 적막한 너른 터를 홀로 지켜내는 밤이 이제는 무섭다’고.
엄마의 가느다란 독백이 제 가슴에 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밤은 늘 불안합니다.
딸사위와 함께하는 밤은 달팽이처럼 오그라든 엄마의 몸이 쭈~욱 펴지고 코골이도 제법 자신만만합니다. 이날은 엄마가 깊은 잠을 자는 날입니다.
엄마!
지난 2025년 4월 19일
장흥군 부산면 면민의 날에 <장한어머니상>을 수상한 거 기억하시죠.
“죽을 나이 돼서 <장한어머니상> 받은 거 그래도 잘한 일이지야?”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리 생각하시니 다행입니다.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자녀를 바르게 자라도록 하는데 성공하고, 부모님을 공경한 사람에게 준다는 명목하에 수여한 <장한어머니상>이었지요.
엄마 시대에 누군들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며, 시부모 봉양인들 어디 외면할 수 있었으리오.
하지만 엄마는 특별하셨습니다.
부잣집 화목한 가정의 넷째 딸로 태어나 부모님 사랑 속에서 별 부러움 없이 성장하셨다지요. 23세 되던 해, 가세가 한창 기울고 있는 8대 종손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증조부님까지 계시는 4대 종갓집으로요. 시집은 엄마의 친정과는 가풍이 사뭇 다른 허울만 좋은 딸깍발이 선비 집안이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며칠 후, 군에 입대해 5년간 군 생활을 한 아버지와 생이별을 한 채 엄마의 낯선 시집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엄마의 인생은 이때부터 험준한 고개의 시작이었습니다. 논밭 한 뙈기 없는 골골한 양반 살림은 허리띠조차 졸라맬 수 없는, 난생 처음 겪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거기에 4대 봉사며 증조부님, 조부님, 시동생들을 떠받들고 살아야 하는 고단함까지. 고진한 엄마는 당연한 일로 여기며 온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곯은 배를 채우기 위해 보리를 따서 절구통에 갈아 죽을 쑤어 먹었던 일, 출입하시는 조부님의 두루마기, 저고리, 바지를 손수 지어 풀 먹여 바친 일, 조부님 돌아가시고 나서 상방 차려 1년 동안 아침 지어 올리시고 어깨를 못 쓰게 된 엄마의 지난한 삶은 소설과도 같습니다.
생계를 잇기 위해 남의 논밭 빌려 농사를 짓고, 울력을 나가 밀가루 배급을 받고, 때론 외조부님의 원조로 허기를 채우시기도 했다지요. 엄마의 기막힌 삶은 파헤칠수록 너무 비참하고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고비마다 낫으로 괭이로 쳐내야 할 가시덤불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엄마의 삶도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순종만이 미덕이었던 엄마의 인생은 엄마 자신도 모른 채 엄마의 가슴 켜켜이 한이 되어 서리서리 쌓여 갔습니다.
그러나 삶도 자연의 한몫이런가 혹독한 겨울만이 아니었습니다. 봄 새싹 같은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엄마의 삶을 힘차게 호령했습니다. 오롯한 희망의 끈, 자식들은 고단한 삶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교육열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생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한 장에 10원 하는 발장을 밤새워 치고, 도라지•토마토 장사, 작약•담배 농사, 닭 토끼 돼지 키우기 등등. 엄마의 헌신은 물불 가림없이 막무가내 밤낮이 없었습니다. 이고 지고 메고 매고 갈고 닦고…….
엄마의 희생과 정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며 느끼며 온몸으로 체득하며 살아온 우리 5남매는 나름 성실하게 생활하고 공부했지요. 생활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마음은 엄마의 사랑과 정성으로 부자가 되어 각자가 제 구실을 오롯하게 할 수 있게 되었지요. 형식이긴 하지만 5남매가 모두 대학을 마치고, 그 중엔 박사도 있고 석사도 있고. 장학사•교장, 교사, 사장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엄마의 수고와 헌신을 밑거름 삼아 엄마 흉내 내며 산 결과들이지요. 무엇보다도 엄마가 우리 5남매를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하시니 분에 넘치게 감사할 일입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제 나이가 70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70년을 헌신, 희생만으로 살아오신 엄마의 육신은 점점 줄고 졸아들어 갔습니다. 그 엄마가 30여 년 전, <효부상>을 받으시더니 94세 되는 해, 부산면 면민의 날에 <장한어머니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행사장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엄마만큼 수척하고 초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김복례!’를 호명받고 시상대까지 나가는데 부축 없이는 걷기 힘든 엄마였습니다. 한아름 꽃다발도 힘에 겨워 들 수 없는 가여운 엄마였습니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수상을 하고 박수를 받고 축하를 받았습니다.
저 허깨비 같은 엄마가 내 엄마라니.
누가 엄마를 저토록 앙상한 가지로 만들었을까......
기쁨은 어디 가고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너무 짠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너무 고마웠습니다.
<효부상>도 <장한어머니상>도 내 엄마에게는 훈장이 아닌 십자가였습니다.
<장한어머니상>은 우리 5남매에게도 십자가입니다.
뉘엿뉘엿 지는 서녘 해가 순간 자취를 감추듯,
삶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엄마도 언젠가 저희 곁을 가뭇없이 사라지실 겁니다.
엄마!
내게 <장한어머니> 되시어 지금의 나로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우리 5남매의 <장한어머니> 김복례 엄마!
자자손손 길이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엄마,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깊이깊이 마음에 새기며 사랑합니다.


*<장한어머니 상> 부상으로 상당한 금액의 상금을 받으셨다. 엄마는 잠시 망설임도 없이 우리 5남매에게 골고루 나누라고 하시며, 큰동생에게 건네셨다. 형제들이 의논하였다. '엄마께는 나눠 가졌다고 하자.(이미 받은 것이기에)
그러나 나눔이 일상이신 엄마의 삶과 가치에 합당한 곳에 쓰자'고.
(현재 큰동생이 보관하고 있으며 적절한 곳을 탐색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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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egg3151 | 작성시간 25.05.09 참으로 장하십니다. 효부상,장한어머니상을
    받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올린글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훌륭하십니다.그런 어머니를 두신
    사모님의 품성을 이제 알것같습니다.
  • 작성자르네브향 | 작성시간 25.05.11 장한 어머님 이시고
    감동의글과 효녀의
    따뜻함이느껴집니다~~
    늘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 작성자김옥숙 | 작성시간 25.05.11 정말 장하셔요. 겹쳐서 나의 엄마생각도 나 눈물나네요
  • 작성자이경은 | 작성시간 25.05.12 우리의 어머니의 삶이 투영되 보여 애잔함이 더합니다.그리고 너무 장한 어머니 이십니다.그런 어머니의 그 강두희 이십니다.
  • 작성자leehan202 | 작성시간 25.05.14 마치 가슴 얼얼한 옛 소설 한권을 읽은듯 착잡해집니다.
    그 고단하고 지난한 긴 세월을 견딘 힘은 바로 오남매를 바르고 참되게 키워내리라는 일념에서였겠지요.
    참으로 장하십니다.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효부상,
    장한 어머니상 수상에 기립하여 큰 박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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