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의 유래(마음소리)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5.11.20|조회수429 목록 댓글 0

 

계륵의 유래(마음소리)

 

계륵(鷄肋)

먹자니 먹을 것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란 뜻.

쓸모는 별로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의 비유.

닭갈비처럼 몸이 몹시 허약함의 비유.

[출전]後漢書》〈楊修傳. 晉書》〈劉伶傳

먹자니 먹을 것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란 뜻. 쓸모는 별로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의 비유. 닭갈비처럼 몸이 몹시 허약함의 비유.

삼국 시대로 접어들기 1년 전(219)인 후한(後漢) 말의 일이다.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대군을 이끌고 한중(漢中)으로 원정을 떠났다. 익주[益州:사천성(四川省)]을 차지하고 한중으로 진출하여 한중왕을 일컫는 유비(劉備)를 치기 위해서였다. 유비의 군사는 제갈량(諸葛亮)의 계책에 따라 정면 대결을 피한 채 시종 보급로 차단에만 주력했다. 배가 고파 도망치는 군사가 속출하자 조조는 어느 날, 전군(全軍)에 이런 명령을 내렸다.

"계륵(鷄肋)!"

'계륵?'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주부(主簿) 벼슬에 있는 양수(楊修)만은 서둘러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 장수가 그 이유를 묻자 양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닭갈비는 먹자니 먹을 게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한중 역시 그런 닭갈비 같은 땅으로 생각하고 철군(撤軍)을 결심하신 것이라오."

과연 조조는 며칠 후 한중으로부터 전군을 철수시키고 말았다.

[] 한중 : 섬서성(陝西省)의 서남쪽을 흐르는 한강(漢江:양자강의 큰 지류) 북안의 험한 땅으로서 진()나라를 멸한 유방이 항우로부터 분봉(分封)받아 한왕(漢王)을 일컫던 곳.

(:西晉, 265316)나라 초기에 죽림 칠현 가운데 유령(劉伶)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유령이 술에 취하여 행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상대가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유령은 점잖게 말했다.

"보다시피 '닭갈비[鷄肋]'처럼 빈약한 몸이라서 그대의 주먹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소." 그러자 상대는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본문>夫鷄肋食之則無所得하고 棄之則如可惜이라

(부계륵, 식지즉무소득, 기지즉여가석)

<해석>

무릇 닭갈비 부분은 (그것을)먹는다면 곧 얻는 바가 없고, (그것을)버린다면 곧 아까울 만 할 것 같다.

<해설>

: 무릇 (발어사). 발어사란 특별한 의미나 쓰임은 없고 다만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듣는 이로 하여금 들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운을 떼는 말이다. 영어의 well, 일본어의 あの~따위와 같다.

: . 로도 쓴다.

: 갈비. 갈비뼈가 있는 신체의 부분을 나타내는 말. 갈비뼈는 肋骨(늑골).

: 먹다   

: 대명사 혹은 동사화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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