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김정호)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논어(論語) 첫머리는 세 가지 즐거움으로 시작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 토를 달아 외우던 기억이 새롭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아? 인부지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즐거움, 시공을 초월해 와 닿는 보편성이다.
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술과 지식의 습득, 학문의 연마에서부터 총체적 인격도야에 이른다. 평생 배움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쁨이다.
벗은 부모, 형제만큼 중요한 존재다. 친구는 취향과 뜻이 비슷하고 잘 통하며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사람이다. 벗이 찾아온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교만 방자함의 즐거움, 주색에 빠지는 즐거움은 즐거움이 아니다. 알코올과 필로폰, 즐거움은 그러한 욕망을 채우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배움의 경지를 세 단계로 나누어 설파했다.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지자는 호지자만 못하고, 호지자는 낙지자만 못하다)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아는 것을 넘어서서 좋아하여야 하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즐겨야 한다. 대가(大家)들은 일을 즐긴다. 앎과 놀이와 노동의 합일이다. 즐기는 사람은 당해내지 못한다. 즐기는 사람은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몰두하므로 무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맹자(孟子)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을 말했다. 양친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살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했다. 하늘이 내려준 즐거움, 인격수양을 통해 얻은 즐거움,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즐거움을 꼽았다. 천하를 통일하여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를 살다간 김성탄(金聖嘆)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불역쾌재삼십삼칙(不亦快哉三十三則)’을 읊었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꿰뚫은, 여유에 세상번뇌를 잊는다.
“빚을 다 갚는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들불을 바라본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줄이 끊어진 연을 바라본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겨울밤 술을 마시다보니 문득 방안 공기가 싸늘하다. 창문을 열어보니 함박눈이 내려서 이미 발목까지 쌓였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나그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는데, 멀리 집의 대문이 보이고 이곳저곳에서 아이와 여인들이 모두 고향말로 떠들고 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즐거움은 자기가 알고 느끼고 향유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즐거움은 도처에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서문에, 알고 보는 즐거움이 인용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前)과 같지 않으리라.”
사람은 평생 출세를 지향하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적 자족(自足)이 행복의 비결만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의 실현과 함께 어울릴 때 겉돌지 않는다.
가난해도 아부하지 않고 넉넉해도 교만하지 않는 것도 훌륭하지만, 가난해도 즐거움을 알고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우리는 늘 근심에 차 있다. 범사(凡事)에 감사하기를 잊고 있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낙이 없다고 낙담하는 사람에게서, 사람의 향기를 맡는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혼탁한 시대,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벗을 만난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설날, 연휴, 대체휴일까지 주어졌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나를 비우고,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어울리자. 함께 하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불역락호(不亦樂乎)! 불역쾌재(不亦快哉)!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