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狂不及(불광불급)-미치지(狂) 않으면 결코 미치지(及) 못한다(문재일)
몇 년 전 흥행에 성공한 스릴러 영화 ‘블랙스완’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순수한 하얀 백조와 관능적이면서 도발적인 검은 백조를 동시에 연기해야하는 ‘백조의 호수’ 발레공연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그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려다가 그만 미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최고의 발레리나라는 예술가로는 성공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정신분열증에 걸리고 만 것이죠. 예술가가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면 미칠 만큼 온전히 자신의 혼을 다 바쳐 매달려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이야기였습니다.
또 우리나라 근대소설인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속의 주인공 백성수는 최고의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방화도 서슴지 않는 광기를 부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예술가의 천재성이 내포한 뇌의 병리적인 문제점을 잘 묘사한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현실에서도 세계적인 예술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이와 같은 광적 몰입을 보여주는 예가 많습니다.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라흐마니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연주하려는 욕심에 그만 정신분열증(조현증)에 걸려버린 호주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David Helfgott-이 실화는 ‘샤인’이란 영화로 세상에 더 잘 알려집니다)이나,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화가 고흐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큰일을 하려면 완전히 그 일에 미칠 정도로 몰입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의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사자성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 말은 사실 ‘若汝不狂(약여불광) 終不及之(종불급지)’의 줄임말이라 합니다. 최근 이런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사례가 뇌연구전문잡지인 Nature Neuroscience에 발표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대학 인류학과의 Kari Stefansson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사람의 예술적 창의성과 정신분열증 혹은 양극성장애(조울증,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한 조증과 우울증 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기분조절 이상 질환) 사이에는 정말 유전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8만6천명이 넘는 아이슬란드 사람의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정신 분열증과 양극성 장애의 위험을 높이는 유전적 변형체를 검사해본 결과 시각 예술가, 작가, 배우, 무용가, 음악가 등으로 구성된 국립 예술가협회 회원 중에서 유독 그러한 유전적 변형체를 가진 사람들이 일반인과 비교하면 무려 17%나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또한 연구팀은 과거 네덜란드와 스웨덴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를 바탕으로 창의성과 정신질환 간의 연계성을 조사해본 결과 창의적인 일을 하는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정신질환과 연관된 유전적 변형체를 가질 확률이 거의 25%나 더 높다는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볼 때, 아마도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평소 정상인들과는 다른 방식, 즉 비범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일상들이 꾸준히 쌓이다 보면 결국 정신분열증에 취약한 유전 요인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굳이 자기 일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 성공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는 철강왕 카네기의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실 미친 듯한 열정이 없으면 위대한 성취를 하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는 사회 고도화나 기술 복잡성으로 인해 개별 능력의 척도인 IQ(intelligence quotient, 지능지수)나 EQ(emotional quotient, 감성지수)를 통해 창의성이 드러나는 시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협력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능력의 척도인 SQ(social intelligence quotient, 사회지능)를 통해 드러나는 창의성을 더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즉 현대는 단순히 창의적이기만 한 아이디어보다는 창의적이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담긴 아이디어를 더 높이 평가하는 시대인 것이죠. 이에 오늘 저는 새로운 육자성어를 제안해 봅니다. ‘동불광동불급(同不狂同不及)’, 즉 다른 사람과 함께 미치지 않으면 좋은 일은 함께 이룰 수 없다고요.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