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 (고덕천)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6.08.18|조회수185 목록 댓글 0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 (고덕천)

[서해안칼럼] 고덕천 칼럼위원

 

추석을 얼마 앞 둔 8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하기 위한 귀향차량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주차장 같았다.

마침 태안중학교 동창모임이 연포해수욕장에서 계획되어 있어서 나도 이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교통 혼잡을 예상하여 여유 있게 출발하면서 태안에서 선배님들과 점심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꽉 막힌 도로는 풀릴 줄을 모르고 평소 소요시간의 3배정도는 더 걸려서 도착하였다. 결국 점심 약속시간에 늦게 합류하여 사과를 하였다. 진땀나는 시간이었지만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어서 지루한 줄을 모르게 하였다. 그것이 무엇이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바로 고향길이었고 40여년 만에 만나는 중학교 동창생들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수구초심(수구초심), 여우가 죽을 때엔 자기가 살던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 는 고사성어이다.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을 도와서 패업을 이룬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죽어 주나라 땅에 묻히자 그의 후손들도 계속하여 주나라 땅에 보내져 묻히게 된 데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禮記>에 의하면 음악은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던 본원(本源)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즉 선조에게 감사하고 생활을 즐기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1963년 영국의 야간열차에서 당시 최고기록인 2백63만 파운드(약 50억 원)를 털어 달아났다가 체포되어 수감중 탈옥하여 브라질에서 정착하여 살던 로니 빅스(Ronnie Biggs)라는 사람이 있었다. 빅스는 35년간의 해외도피생활을 마치고 2002년 자진 귀국하여 런던의 교도소에 수감되는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그가 자수의사를 전해온 이유는 고향이 그립고, 고향의 선술집(Public House)에서 영국전통맥주인 비터(Bitter)를 한잔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2009년에 영국의 법원이 노환 때문에 가석방결정을 내렸다고 하는데 고향 선술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와서 40여 년 동안 고향을 마음대로 찾지 못하는 공군의 조종사 생활을 하였지만 고향의 그 풍경, 그 냄새를 잊은 적이 있었던가? 영광스러운 장군으로 진급을 하여 별판을 붙이고 제일 먼저 찾아 인사를 한 곳도 선산이었으며, 고향의 어른들과 친구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객지 생활동안 출신 고향이 어딘가는 늘 따라 붙는 그림자이다. 진급이 안 되면 남들처럼 영남도, 호남도 아닌 충청도라서 그런 게야 하고 위로해 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영남이 권력을 잡으면 호남이라서 배려해 주고, 호남이 힘이 있으면 영남 몫으로 얼마는 나누어 주고, 이도 저도 아니면 기타에 들어 간다 라고 농담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2011년 1월 군에서 제대를 하고 어디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것인가 고민할 때도 제1의 대상지는 고향이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죽을 때가 되어서야 머리를 누일 수 있게 될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귀향의 문제는 진행형이다.

고향은 그런 것이다. 그런 고향이기에 가끔씩 가슴 설레이며 방문하는 고향길이다. 반갑게 맞아 주는 손길들을 만나면 추억으로 달려가서 얘기를 쏟아 내고 정겨움으로 안부를 묻곤 한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갈등의 골도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서로 말은 안하지만 떠나 갔던 사람, 고향을 지키고 살아 온 사람이라는 삶의 차이에서 오는 감정의 벽일까? 책상이 일터인 고운 손길과 흙과 더불어 살아 온 투박한 손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일까? 그러한 느낌도 막걸리 한 잔 돌아가면 바로 잊고 하나가 되는 부질없는 소견일 뿐인데...

이제 추석이 되면 우리는 또다시 만나고 헤어진다. 단지 고향이 좋아서 찾아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고향이 되고, 아름다운 고향을 가꾸고 지켜 온 이웃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는 귀향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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