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듀크)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5.08.05|조회수78 목록 댓글 0

과유불급(過猶不及)(듀크)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자주 드는 것이, 나이가 들었다는 표시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한창 시절에는 옛말에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공자왈, 맹자왈' 하면 속으로는 꼴값(?)한다고 생각했던 걸 기억하면, '청하'님이 자신의 글에서 언급한 것 처럼, 귀가 부드러워진다는 이순(耳順)의 초엽에 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게다가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 것보다는 남의 것이 더 좋고 훌륭해 보였다. '(?)도 미제가 더 좋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듣고 자랐으니 오죽했을까? 미제나 일제는 무조건 좋고 국산은 품질이 조악한 싼 물건의 대명사로 통했었다. 가사의 뜻도 모르고 팝송을 따라 불렀고, 보난자, 5전선, 도망자와 같은 미국 연속극에 빠졌고,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었다. 그러니 철학이나 사상도 동양철학보다 서양철학이 뛰어나 보였고 그래서 더 흠모했었다. 그런 이유에서 였을까? 종교도 불교보다는 개신교가 더 그럴듯해 보였고, 절보다는 교회가 가깝게 느껴졌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했던가! 수 십 년 이상 세월이 지난 요즘에 더 말해서 무엇하랴? 강산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산천이 뒤바뀌고 천지가 개벽을 했으니 그 변화를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더러 불가능하다. 먹거리를 비롯해서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이나 밥솥, 오븐 같은 주방제품에서 스마트폰, 태블릿과 같은 첨단제품에 이르기 까지 국산은 우수한 품질의 고가제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류에 세계가 매혹당하고, 유럽 아이들이 가사의 뜻도 모르면서 K-POP을 따라부르는 세상이 되었다.

한국정치가 꼴불견이고, 질서가 엉망이고, 젊은이들의 취업이 곤란하고, 전세가가 치솟고, 메르스 감염자가 계속 나오고, 노인빈곤이, 가계부채나 정부부채가 심각하다고 해도, 이곳에서 살며 피부로 느끼는 한국의 모습은 대부분 사람들이 활기차고 행복해보이고 바쁘고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신문이나 방송에서 우려하고 걱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야구장에는 공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젊은이들로 만원이고, 술집에는 삼겹살 굽는 연기와 냄새로 가득차있고, TV에는 젊은 아이들이 누가 더 섹시한지 경연이나 하는듯 격렬한 몸동작으로 흔들어대고, 곳곳마다 축제와 웃음과 환락과 공연과 오락이 있으며, 거리에는 현란한 광고판과 갖가지 차량들이 뒤덮고 있다. 오직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나도 저 속에서 주인공 노릇을 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 뿐이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우리 세대는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거기다 다른 나라 국적을 갖고 돌아왔으니 나는 더욱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종교도 그렇다. 한국의 선불교에 심취한 파란눈의 스님들이 한국의 절에서 수도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포교하고 있다. 끊임없이 몸집을 불려가던 개신교 신자수가 줄고, 카톨릭이나 불교신자가 늘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통계도 보았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최근에 '교회''개신교'는 대형교회를 뜻하며, 담임목사의 세습과 사리사욕, 자본주의, 거짓과 탐욕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과거에는 한경직 목사, 옥한음 목사, 문익환 목사와 같은 개신교 목회자들이 민중에게 가르침을 주었으나, 요즘은 법륜스님이 국민멘토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 524일에 방영된 SBS 스페셜,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프로였다. 젊은이들의 난해한 고민들을,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들을 법륜은 알기쉬운 비유와 현자의 설법으로 달래주었다. 대중의 지식에 뒤지지 않으려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회, 첨단과학으로 급변하는 세상, 모든 가치가 돈에만 집중되는 자본주의에서 어찌 가치관이 혼돈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 젊음의 방황을 그는 지혜가 가득한 말로 가르침을 주었다.

'과유불급'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논어의 선진편(先進編)에 나오는 말로 '지나침''모라람'만 못하다는 이 말을 이순에 접어든 이제야 조금은 알 듯 싶다. 젊었을 때는 항상 지나치고자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모라람을 즐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 법륜스님이 항상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학문도, 재산도, 용모도, 육체도, 음식도, 섹스도, 명예도, 건강도 욕심을 낼 때 변고가 생긴다. 과유불급이기 때문이다.

들어주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같은 말을 되뇌이는 것도 과유불급이라는 현명함을 모르는 일이지만, 적절한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는 것은 현자의 처사이다. 굳이 다른 이의 잘못을 들추어 공개하는 것도 너그러움이 부족한 탓이지만, 자신이 비난을 뒤집어 쓰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고자 했다면 그것 또한 현자의 도리일 것이다.

, 안타깝다! 과유불급이라는 넉 자가 주는 교훈을 진작 깨달았더라면 지난 인생이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하하하, 절대 양비론은 아닙니다. 두 분 모두를 좋아해서 드리는 말씀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제주의 비오는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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