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의 유래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7.06.03|조회수150 목록 댓글 0

천자문의 유래

 

 

주흥사가 지은 4250구의 장편시. 한문(漢文) 초학자를 위한 교과서 겸 습자교본.

 

[解義]

중국 南朝(남조)()나라에 周興嗣(주흥사, 468-521)라는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공부는 많이 했지만 도무지 등용되지 않았다.

그러기를 몇 년, 糊口之策(호구지책)으로 책을 수선해 주기로 했다.

落張(낙장)내용을 복원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박식하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修補殘書(수보잔서, 해진 책을 복원해 줍니다.)라고 큼직하게 몇 자 써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하루는 어떤 이가 신기한 나머지 누더기 같이 해진 책을 가지고 나와 복원시켰다.

그는 즉석에서 복원해 주었다. 물론 원서와는 한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 소문은 금방 장안에 퍼져 마침내 천자의 귀에까지 들리게 됐다.

천자는 그를 불렀다. 그리고는 일부러 서가에서 좀먹은 책 한 권을 뽑아 복원시켰다.

"이 책은 복원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신은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翰林院(한림원)에 기거하면서 복원해 보도록 하시오."

며칠이 지나 4250구의 장편시를 바치면서 千字文(천자문)이라 이름 붙였다. 정형시에다 완벽한 내용에 천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당장 관직을 내려 그를 등용했다.

천자문의 유래다. 一說(일설)에 의하면 그동안 너무 고심한 나머지 온통 머리가 다 셌다해 천자문을 일명 白首文(백수문)이라고도 한다.

내용은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난다.

당나라 이후 급격히 보급되어 많은 서가(書家)에 의하여 쓰여졌으며 그 중에서도 습자교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왕희지의 7대손 지영(智永)이 진서(眞書:楷書)와 초서(草書)의 두 체로 쓴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본으로 1109년에 새긴 석각(石刻)이 전하고 있다.

송대(宋代) 이후 이용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천자문의 순서를 이용하여 문서 등의 번호를 붙이는 습관도 생기고 또 속천자문이 나오는가 하면 전연 딴 글자를 뽑아 서고천자문(敍古千字文)이라 이름붙인 종류도 많이 나왔다.

이 책이 한국에 전해진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백제 때 왕인(王仁)논어(論語)10권과 함께 이 책 1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훨씬 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한문의 입문서로서 초보자에게는 필수의 교과서로 중용(重用)되었으며 선조 때의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석봉천자문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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