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容止若思 言辭安定 (용지약사 언사안정)(백우)
【本文】
容止若思 言辭安定 용지약사 언사안정
몸가짐에 과실없게 주의 깊게 생각하고
언사는 고요하고 편안하게 해야 한다.
【훈음(訓音)】
容 얼굴 용 止 그칠 지 若 같을 약 思 생각 사
言 말씀 언 辭 말씀 사 安 편안 안 定 정할 정
【해설(解說)】
이번 장에서는 몸가짐과 언사에 대해서 다룬 것으로 어떻게 해야 바른 몸가짐과 언어생활이 되는지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容止若思(용지약사) 몸가짐에 과실없게 주의 깊게 생각하고
용(容)은 면(宀)과 곡(谷)의 회의자로 본 뜻은 '담다'입니다. 집(宀)과 골(谷)에는 다 같이 물건을 넣어두거나 갈무리해 둘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물건을 담다'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용기(容器)의 뜻이 있지요. 또한 산에서 내리는 물을 골짜기에서 받아들인다는 데서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용납(容納)은 그런 예입니다.
또, 눈ㆍ귀ㆍ코ㆍ입 등을 담고 있는 것이 얼굴이므로 '얼굴'이라는 뜻으로 전용되었습니다. 용모(容貌)가 그런 예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담고 받아들이는 뜻이 있으므로 용서(容恕)하고 허용(許容)한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지(止)는 발바닥의 모습을 상형한 글자로 '발'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발바닥이 땅에 닿아 서 있는 모양이므로 '멈추다, 그치다', '머무르다'의 뜻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변용되어 '행동거지(行動擧止)'를 뜻하기도 합니다.
약(若)은 초(艸)와 우(右)의 회의자로 '손으로 나물을 캐는 것'이 본뜻인데 나중에 여(如)와 같은 '같다'의 뜻으로 되었습니다. '만일', '너' 등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思)는 전(田)과 심(心)의 회의자로 '깊이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용지(容止)는 행동거지(行動擧止) 즉 몸가짐을 말합니다. 약사(若思)는 '생각하는 듯'이란 뜻으로 과실이 없게 주의깊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용지약사(容止若思)는 몸가짐에 있어서 과실없게 주의깊게 생각하여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인군자나 하는 행동이 아니라 누구나 이러해야 합니다. 특히 불자는 자기의 행동을 늘 살피면서 여법한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야 합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ㆍ어묵동정(語默動靜)에 있어서 위의(威儀)와 도리에 손색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자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다른 이의 지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지약사(容止若思)를 대하고 보니 소시적에 읽은 《소학(小學)》의 구용구사(九容九思)가 생각납니다. 감명 깊게 읽어서 잊지 않으려고 일기장에 써 넣은 적이 있습니다. 소학(小學)이란 원래 유교의 여러 경전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데 필요한 경구를 모아 놓은 책입니다.
이 소학에 나오는 구용구사(九容九思)는 아홉 가지 몸가짐과 생각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든 것입니다. 구용(九容)은 본래 《예기(禮記)》에 출전을 둔 것이고, 구사(九思)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특히 구용구사(九容九思)는 율곡(栗谷)선생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에도 인용되어 학생을 가르치는 요긴한 지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구용(九容)은 무엇일까요? 원문을 보겠습니다.
禮記曰 君子之容은 舒遲니 見所尊者하고 齊遫이니라
예기왈 군자지용 서지 견소존자 제속
足容重하며 手容恭하며 目容端하며 口容止하며 聲容靜하며 頭容直하며
족용중 수용공 목용단 구용지 성용정 두용직
氣容肅하며 立容德하며 色容莊이니라.
기용숙 입용덕 색용장
예기(禮記)에서 이르기를,
"군자의 몸가짐은 여유있고 고요하지만, 존경하는 사람을 보면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발걸음은 무겁게 하며, 손모양은 공손히 가지며,
눈은 단정히 뜨고, 입은 듬직하게 말하며, 목소리는 고요하게 말하고, 머리는 바르게 가지며, 숨쉬기는 엄숙하고 고르게 쉬며, 서 있는 모습은 덕스럽게 하고, 낯빛은 장중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몸가짐을 한다면 누구에게 눈총을 받으며 그 누가 눈살을 찌푸려 못마땅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삼가고 삼갈 일입니다.
다음은 구사(九思)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孔子曰 君子有九思하니 視思明하며 聽思聰하며 色思溫하며 貌思恭하며
공자왈 군자유구사 시사명 청사총 색사온 모사공
言思忠하며 事思敬하며 疑思問하며 忿思難하며 見得思義니라.
언사충 사사경 의사문 분사난 견득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할 것이 있으니, 보는 데는 분명하기를 생각하고, 듣는 데는 총명하기를 생각하고, 안색은 부드럽기를 생각하고, 모습은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은 성실하기를 생각하고, 어른을 섬김에는 공경하기를 생각하고, 의심나는 것은 묻기를 생각하고, 화가 날 때는 환난을 생각하고, 얻는 것이 있을 때는 의로운 것이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글은 《논어》『계시편(季氏篇)』나오는 구절입니다. 밝은 눈, 총명한 귀, 부드러운 얼굴빛과 공손한 몸가짐, 성실한 말과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자세, 의심나는 사항은 물어서 깨우치려는 자세, 분노의 다스리는 자제력, 이익을 앞에 두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하는 자세는 군자의 도리이자 바로 불자의 마음가짐입니다.
言辭安定(언사안정) 언사는 고요하고 편안하게 해야 한다.
언(言)은 형성자로 본뜻은 '직언(直言)'이지만 여기서는 '언어'를 말합니다.
사(辭)는 본래 죄를 다스리는 '송(訟)'의 뜻이었으나 나중에 '설(說)'의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안(安)은 면(宀)과 여(女)의 회의자로 「설문(說文)」에는 '여자가 집안에서 가사를 돌보면 안정하다'는 뜻이라 했습니다.
정(定)은 면(宀)과 정(正)의 형성자로 「설문(說文)」에는 '집안이 올바르면 안정된다'는 뜻이라 했습니다.
언사(言辭)는 글자 그대로 '말'. '말씨'를 말하고 안정(安定)은 '편안하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구용구사(九容九思)에서도 나왔지만, 구용(九容) 중 구용지(口容止), 성용정(聲容靜)은 언어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를 나타낸다 할 것입니다.
구용지(口容止)는 입을 쓸데없는 말을 떠벌이지 말고 듬직하게 가지라는 뜻이고, 성용정(聲容靜)은 목소리는 큰소리치지 말고 낮고도 점잖게 하라는 말입니다.
또한 구사(九思) 중 언사충(言思忠)은 진실되고 성실하게 말하라는 뜻입니다. 언어생활이 이렇게 안정되어 있으면 낭패를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말에 대하여 불교 만큼 누누이 강조한 가르침도 드물 것입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중 언어생활에 해당하는 구업(口業)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망어(妄語. 거짓말), 양설(兩舌. 이간질), 악구(惡口. 험한 말), 기어(綺語. 아첨)가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독(毒)입니다. 이는 악업(惡業)이지만 이 네 가지를 하지 않으면 그대로 선업(善業)이 됩니다.
불망어(不妄語)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참말, 진실한 말, 성실한 말로 생활하라는 말씀입니다.
불량설(不兩舌)은 남을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말고 화합할 수 있는 부드러운 말, 온화한 말, 따뜻한 말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불악구(不惡口)는 욕설이나, 비방, 저주와 같은 험한 말, 악한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불기어(不綺語)는 비단결 같은 말로 아첨하고 사탕발림으로 사기치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니 바른 언어 생활은 신뢰사회를 이끄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불경의 도처에는 말에 대한 계언(戒言)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대집경(大集經)》에서 보녀동자(寶女童子)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진실한 말이란 어떤 것이옵니까?"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말을 조심하고, 거친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진실한 말이니, 너는 진실한 말을 익히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보살본연경(菩薩本緣經)》에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진실한 말을 해서 적을 만들지언정, 비위 맞추는 말을 해서 친우를 만들지 말라. 차라리 바른 가르침을 설하고 지옥(地獄)에 떨어질지언정, 그릇된 가르침을 설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지 말라."
《화엄경(華嚴經》에 이르기를,
"소위 해치는 말이나 거친 말, 남을 괴롭히는 말, 남으로 하여금 원한을 품게 하는 말, 저속하고 나쁜 말, 용렬하고 천한 말, 이런 말들은 다 버리고, 늘 정다운 말, 부드러운 말, 듣기를 원하는 말, 듣는 사람이 기뻐하는 말, 사람의 마음에 잘 받아들여지는 말, 멋지고 도리에 맞는 말들을 하며,
항상 시기에 맞는 말, 분명한 말, 진실한 말, 도리에 맞는 말, 정법(正法)을 설하는 말, 잘 조복(調伏)하는 말, 때에 따라 결정한 말을 즐겨 생각해야 한다. 보살은 웃을 때라도 늘 자세히 생각하거니, 하물며 굳이 어지러운 말을 함부로 하겠는가?"
《묘법성념처경(妙法聖念處經)》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감로(甘露)와 같아서, 사람마다 사랑하고 즐기므로 자타(自他)를 널리 이롭게 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면 독약과 같아서, 자타를 해치므로 편할 날이 있을 수 없다."하였습니다. 이밖에도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이번 천자문의 용지약사(容止若思) 언사안정(言辭安定)은 우리의 몸가짐과 마음가짐, 그리고 언어생활을 함에 있어서 안정되게 하여 예(禮)에 어긋나는 일이 없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