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庶幾中庸 勞謙謹勅(서기중용 노겸근칙) ② (백운)
【本文】
庶幾中庸 勞謙謹勅 서기중용 노겸근칙
중정(中正)의 바른 길인 중용(中庸)의 길 바란다면
공로(功勞)에 겸손(謙遜)하며 삼가고 경계(警戒)하라.
【解說】
지난 시간에는 서기중용(庶幾中庸)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하였는데 이번 시간에는그 실천행이라 할 노겸근칙(勞謙謹勅)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합니다.
노겸근칙(勞謙謹勅) 공로(功勞)에 겸손(謙遜)하며 삼가고 경계(警戒)하라
로(勞)는 력(力) + 형(熒)의 회의자(會意字)로, '형(熒)'은 홰를 엮어 세운 화톳불의 뜻입니다. 화톳불이 타듯이 힘을 연소시켜서, '피로해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수고하다, 노곤하다, 괴로워하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수고한 것을 '위로하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겸(謙)은 언(言) + 겸(兼)의 형성자(形聲字)로, '겸(兼)'은 '렴(廉)'과 통하여, '단정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단정한 언동을 한다는 뜻에서 '삼가다, 겸손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근(謹)은 언(言) + 근(菫)의 형성자(形聲字)로, '근(菫)'은 찰흙을 바르다의 뜻입니다. 말이 바르다의 뜻에서, '삼가다, 조심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칙(勅)은 칙(敕)과 동자(同字)인데 속(束) + 복(攴)의 회의자(會意字) 혹은 형성자(形聲字)로, 본 뜻은 '경계하다'의 뜻으로 '신칙하다, 삼가다'의 뜻을 나타내며, 임금의 명령을 적은 문서인 '조서'로도 쓰입니다.
노겸근칙(勞謙謹勅)은 공로(功勞)에 겸손(謙遜)하며 삼가고 경계(警戒)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노겸(勞謙)은 '큰 공로(功勞)가 있어도 겸손함'을 말합니다. 또는 '어려운 일을 맡아 애쓰면서도 겸손하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힘써 일하면서도 겸손함을 말합니다. 또한 '힘써 겸양(謙讓)하다'로도 새겨지고 '노고(勞苦)와 '겸양(謙讓)'을 아울러 이르기도 합니다. 근칙(謹勅)은 '삼가 스스로 경계하다'는 뜻으로 조심성이 많고 경솔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가짐을 삼가고 경계함을 말합니다.
노겸근칙(勞謙謹勅)은 앞서 설명한 서기중용(庶幾中庸)의 실천행이라 할 것입니다. 즉 누구든지 중정(中正)의 바른 길인 중용(中庸)의 길 바란다면 노겸근칙(勞謙謹勅)을 명심하라는 뜻입니다.
앞서 노겸(勞謙)의 뜻을 살펴보았지만 공로가 있다고 해서 우쭐하여 자만(自慢)하거나 거만(倨慢)한 행동을 하면 이는 중용(中庸)을 잃은 행동이자 아상(我相)을 나타내는 것이라 자기 공로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애써 일을 잘해 놓고도 욕을 먹게 됩니다. 공로가 있어도 겸손하면 마음의 평정을 이룬 것으로 누군들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역(周易)》의 64괘 중 15번째 나오는 곤상간하(坤上艮下)의 괘(卦)가 『지산겸(地山謙)』이란 괘(卦)인데, 겸손(謙遜)에 대해 나와 있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괘를 얻으면 "겸(謙)은 형(亨)하니 군자(君子)ㅣ 유종(有終)이니라." 하였습니다.겸(謙)은 형통(亨通)하니 군자(君子)가 마침이 있다는 말입이다.
이에 대해 정자(程子)는 말했습니다.
"겸(謙)은 형통(亨通)하는 도(道)가 있다.
덕이 있으면서도 거처하지 않는 것을 겸손(謙遜. 謙巽)이라고 하니,
사람이 겸손(謙巽)함으로 스스로 처신하면 어디 가선들 형통하지 않겠는가?
'군자가 마침이 있다[君子有終]' 함은 군자가 뜻을 겸손한 데 두어서,
이치에 통달했기 때문에 천명을 즐기면서 다투지 않고,
안이 충실하기 때문에 물러나고 양보하면서 자랑하지 않는다.
겸손함을 편안하게 이행해서 종신토록 바꾸지 않으니,
스스로 낮추어도 사람들이 더욱 높이고,
스스로 감추어도 덕이 찬란히 나타나므로,
이를 두고 '군자가 마침이 있다[君子有終]'고 말하는 것이다.
소인은 욕심이 있으면서 반드시 다투고 덕이 있으면 반드시 자랑해서,
비록 억지로 겸손하려해도, 또한 편안하게 행하지 못해서 굳게 지키지 못하니
마침이 있을 수 없다."
이렇듯 겸손은 중용의 길을 걷는 군자의 필수 덕목이라 할 것입니다.
노겸(勞謙)이란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하다는 뜻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높은 것을 좋아하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겸손히 지내는 것도 드문 일인데 공로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으스대고 싶지 않겠습니까? 공로가 있어 높이 되었다면 그 권력을 휘두르고 싶지 않겠습니까? 자기를 낮추면 스스로 높아지는 법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소위 갑질을 하다가 원성과 빈축을 사는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힘을 가진 사람이 남을 억누르지 않기 어렵다." 하셨습니다. 이런 행동은 어리석은 범부(凡夫)의 행동이자 소인(小人)의 행동입니다. 중용을 실천하는 군자의 행동은 아닌 것입니다.
《주역(周易)》『지산겸(地山謙)』「상사(象辭)」에 이르기를 노겸군자(勞謙君子)는 만민복야(萬民服也)라 했습니다.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군자는 만 백성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또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수고로워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이 있어도 덕으로 삼지 않음이 두터움의 지극한 것이니, 공로가 있으면서도 남의 아래함을 말함이다. 덕(德)은 성함을 말하고, 예(禮)는 공손함을 말함이니, 겸손이라는 것은 공손함을 이루어서 그 자리[位]를 보존하는 것이다.(勞而不伐 有功而不德 厚之至也 語以其功下人者也 德言盛 禮言恭 謙也者 致恭 以存其位者也)"
하였으니 겸손의 도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겸손의 도리에 대해서 누누이 강조하신 바가 많으셨습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께서《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다음과 같이 이르셨습니다.
"세상을 수호하는 사람[護世者]은 여덟 가지 도리를 가지고 세상을 수호한다.
첫째는 언행(言行)이 들어맞아 어긋나지 않음이다.
둘째는 집안 어른을 존경해 가벼이 여기지 않음이다.
셋째는 말이 부드러워 거친 데가 없음이다.
넷째는 저를 낮추고 공손해서 늘 겸손(謙遜)의 뜻을 지님이다.
다섯째는 늘 질박(質朴)하여 아첨이 없음이다.
여섯째는 인화(仁和)를 닦아 비위를 맞추는 일이 없음이다.
일곱째는 온갖 악이 없음이다.
여덟째는 선근(善根)으로써 세상에 적응함이다."
이처럼 불자라면 받드시 겸손이란 덕을 지녀야 할 일입니다.
또, 부처님께서《수호국계주경(守護國界主經)》에서 이르셨습니다.
"보살은 자신을 낮추고 남에게 은혜를 베풀되 겸양(謙讓)하여 스승을 따르며, 또 사람들로 하여금 겸손(謙遜)을 터득게 한다."
이와 같이 어떤 일에 힘써서 공로가 있다거나 은혜를 베풀었더라도 그 상(相)을 나타내지 않고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용을 바라고 중용에 가까우려면 반드시 겸양의 덕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 도리입니다.
또 중용을 가까이 하고 중용을 바라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사항은 근칙(謹勅)입니다. 근(謹)은 '삼가', '삼가다'는 뜻이고, 칙(勅)은 '타이르고 경계하다'는 뜻이니, 근칙(謹勅)은 '삼가고 경계하다', 삼가 스스로 경계하다', '조심성이 많다', '경솔하지 않다' 등의 뜻을 나타냅니다. 근칙(謹勅)은 계신(戒愼)의 뜻과 같습니다. '삼가 경계하라'는 말은 오직 바름을 견지하고 추구하라는 뜻입니다.
이 근칙(謹勅)이나 계신(戒愼)은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언제 어디서든지 명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성현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홀로 있을 때라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한다.
숨은 것에서 가장 잘 나타나며 미세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 조심한다."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 君子 愼其獨也)
하였습니다. 신독(愼獨)이란 말은 수신(修身)의 도입니다. 이는 남 뿐만 아니라 자신도 속이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성철(性徹) 스님께서 즐겨 쓰시는 말씀 중에 '불기자심(不欺自心)'이 생각납니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남 앞에서는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보지 않는 곳에서는 행동이 방일하다면 이는 남을 속이는 일이자 자기기만입니다.
《법구경(法句經)》『비구품(比丘品)』에서 부처님께서 노래하셨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고서
안으로 마음과 싸워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진리 염(念)하면
비구는 언제나 안락하리라.
(當自勅身 內與心爭 護身念諦 比丘惟安)
이 말씀은 마땅히 스스로 악업(惡業)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잘 단속하고 경계하여 안으로는 삿된 생각과 싸워서 악에 물들지 않도록 굳건한 보리심(菩提心)을 키워서 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진리를 염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마침내 열반(涅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중정(中正)의 바른 길인 중용을 길을 바란다면 공로(功勞)에 겸손하며 몸과 마음의 가짐을 삼가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화(中和)를 이루어 도덕군자(道德君子)가 되고,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를 행하여 해탈열반(解脫涅槃)을 구하는 이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겸손(謙遜)과 근칙(謹勅)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