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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넘어 인문학

이야기 들려주는 여인, 세헤라자데(오혜자)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23.01.05|조회수57 목록 댓글 0

이야기 들려주는 여인, 세헤라자데(오혜자)

[아침뜨락] 오혜자 초롱이네 도서관 관장

 

가을이 깊습니다. 단풍이 짙고 밤공기는 제법 차갑습니다. 시간이 농축되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런 계절에는 오래된 이야기, 고전이나 신화가 제 맛입니다. 깊은 맛이 나지요.

아랍의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고 전해진 이야기가 우리에게 친근한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신비로운 이야기 세계에는 마법의 양탄자가 하늘을 날고 램프에서 요정이 나와 소원을 들어줍니다. 요란한 칼을 찬 도적이 탄 말이 모래먼지를 날리고, 이 도적들은 얼마 전 비밀번호와 관련한 공익광고에도 등장한 '열려라 참깨'라는 암호를 사용합니다. 아랍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알라딘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이름에 익숙합니다. 이야기 속에는 우리주위에서도 만날 수 있는 하산과 카심 같은 이름도 등장합니다. 신밧드의 듣도 보도 못한 모험이야기는 그 옛날 바그다드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그의 모험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이상하고 신비한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민간에서는 야화(夜話)를 통해 모르는 세상을 만나는 것이 익숙합니다.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좀 더 재미있을 만한 요소가 더해지기도 하고 덜 재미있는 부분은 생략되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만나는 아라비안나이트는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부분이 걸러져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고전문학으로 만나는 천일야화는 액자형식이라고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헤라자데라는 등장인물이 하루에 한편씩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이어집니다. 그 속에 우리가 만나온 여러 인물들의 모험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세헤라자데는 용기와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한 여인입니다. 샤푸리야르 왕의 아내이니 왕비입니다. 왕은 여인을 믿지 못하는데다 난폭하여 수많은 처녀들이 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해야했습니다. 세헤라자데가 왕의 아내가 될 것을 청한 것은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당연히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침착하게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은 자신이 무엇을 하려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모험과 사람사이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사건들, 마법과 신비한 현상들이 담긴 이야기는 왕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후 천 하루가 지나 왕은 세헤라자데를 죽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천일야화의 시작과 끝은 '이야기'의 치유적 기능이나 효과를 극명히 드러내 왕이 상처를 회복하여 결국 백성과 나라가 평안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세헤라자데와 같이 지혜와 품성으로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여인의 모습은 우리신화의 바리공주와 닮았습니다.

바그다드에는 세헤라자데가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세계인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문화와 예술, 산업에까지 강한 영향을 미친 아라비안나이트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경외의 마음을 갖습니다. 이야기속의 인물이 역사 속 위인보다 강력한 에너지를 발하는 것도 문학의 힘입니다.

세헤라자데는 성공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아이 셋을 낳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 수능이 임박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성경보다 '수학의 정석'이 스테디셀러의 반열에서 더 우위라는 말이 있다며 우스개소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만, 이제 세상에 나갈 젊은 친구들이 측은지심이나 용기, 최고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 따위도 우리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도 주목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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