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아이로 살고싶어요 '피터팬 증후군'(이하경) [월드투데이 이하경기자]
영국의 소설 '피터 팬'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피터 팬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섬 네버랜드에서 지내며 평생 소년으로 살아간다.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은 이 증상을 보이는 유명한 인물 중 하나다. 실제 원작의 열렬한 팬이라 늘 자신을 네버랜드의 피터 팬이라고 말하곤 했으며, 1980년대에는 캘리포니아에 네버랜드라는 이름의 놀이공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오늘은 소설 속 피터 팬처럼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내면은 아이 같은 어른이나 아이들을 일컫는 말인 '피터 팬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의
피터 팬 증후군이란,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뜻한다. 오늘날에는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에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거나 유학이나 대학원 진학 등을 이유로 사회 진출을 차일피일 미루며, 부모에게 등록금과 용돈을 받아 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자녀들을 '캥거루족'이라 부른다. 비슷하게 일본에서는 '프리터' 중국에서는 '컨라오족'이라고 부른다.
다만, 이런 용어들은 IMF 외환위기 사태 등과 같은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의 영향을 받은 경제적 의미를 많이 내포하는 신조어인 반면, 피터 팬 신드롬은 이들의 심리적인 취약성에 집중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인 상황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독립이 늦어지거나 못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어른아이에 머물 때 이들을 피터 팬이라고 부른다.
유래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댄 카일리가 1983년 자신의 저서 '피터 팬 증후군'에서 몸은 어른이지만 어른의 세계에 끼지 못하는 '어른아이'가 늘어나는 사회 현상을 반영해 '피터 팬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사용되기 시작했다.
피터 팬은 영국 동화 속의 주인공으로 몸은 다 컸지만, 마음은 순진하고 현실 도피적인 미숙한 캐릭터다. 영원히 아이로 남을 수 있는 네버랜드에서 꿈과 공상 속을 자유롭게 누빈다.
웬디와 그녀의 동생들이 그랬듯이 피터 팬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책임감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피하며,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웬디가 마치 자신의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쫓아다니며 의존하고 자신보다 한참은 작은 요정 팅커벨과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카일리는 1970년대 후반부터 여권 신장과 경기 침체로 인해 상대적으로 남성들의 사회 정치적 힘이 약해지면서 여성들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성들이 증가하자 피터 팬 신드롬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제 이 개념은 성별에 상관없이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존적인 사람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특징
피터팬 증후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피터 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의존한다. 피터팬은 웬디가 마치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의존하는데, 현실 속 피터팬 들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의존한다.
■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의존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잘못을 수용하거나 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 자신이 책임을 지고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상황에선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도 보인다.
■ 피터 팬의 또 다른 특징은 호언장담이다. 할 수 없는 것조차 할 수 있다며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이들의 계획은 현실보다 이상에 바탕으로 두고 있기에 언제나 야심 차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룰 수 없거나 이루기 힘든 과제조차 할 수 있다고 약속하며 다른 사람의 기대 수준을 높인다. 실행이 불가능한 말뿐이라도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 이상이 높으며 과도하게 의존하고 더불어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어른아이들의 특징이다. 이들은 이상은 높지만, 책임 있게 실행하지 않기에 현실과 자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피터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환상의 세계에 몰두한다. 삭막하고 차가운 현실보다는 환상이 자신에게 더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 이들은 결단력 부족으로 결정을 미룬다. 어른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보다는 누군가가 설정한 방식을 따라 선택한다.
선택이 힘들어 차일피일 미루기도 한다.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불평한다.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나는 이유
카일리 박사는 피터 팬들이 각 발달 단계마다 나타내는 특징을 정리했다. 시기마다의 특징을 살펴보면 각 발달 시기마다 성숙을 위해 필요한 힘을 기르지 못하고 언제나 타인에게 의존하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특성을 보이는 것이 피터 팬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성임을 알 수 있다.
카일리는 피터 팬 증후군이 출현한 사회적 배경으로 가정의 불안정, 학교 교육 및 가정 교육의 기능 저하와 미국의 페미니즘 정착에 따른 여성의 자립을 꼽았다.
경기 침체와 함께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하면서 개인에게 기대되는 것은 많아졌다. 더구나 피터팬들은 부모 세대보다 풍부한 물질적 혜택을 받고 자라났고, 그 누구보다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잘 풀어 나갈 내면적 힘을 기르지 못했다.
즉, 마음은 약한데 갑자기 많은 것을 해내라고 기대를 받으니 모든 것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모습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상관계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캇은 우리가 태어나 가장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인 동시에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양육자와의 건강한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적절한 충족과 통제, 자극과 좌절을 주는 환경이 되는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부모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실패와 좌절은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자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다 즉각적으로 가질 수는 없고, 그것을 얻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어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