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소설) 얼음과자

작성자흙빛(생명의낙원)|작성시간26.06.19|조회수12 목록 댓글 0

(계절소설) 얼음과자

 

만덕은 은정이 좋았다. 

 

은정도 만덕이 싫진 않았다. 그러나 은정은 만덕과 달리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조심했다. 

 

만덕의 주름이 깊게 패이고 살이 까만 게 맘에 걸렸다. 사실 그런 것들은 은정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주변의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게 조심스러웠을 뿐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인 6월 중순, 매우 뜨거운 날이었다. 은정이 농장에 놀러왔다. 둘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밭일을 같이 했고 들쥐를 쫓아 농장을 뛰기도 했다. 은정이 농장 일을 도울 때 만덕이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만덕의 거친 손과 은정의 하얀 손이 겹치는 모습은 제법 보기 좋았다. 은정이 일하는 중간에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곤 하였다. 

 

일이 서툰 만덕은 은정을 챙기는 것도 잊은 채 불볕더위 속에서 대책 없이 해가 기울 때까지 일을 해버렸다. 만덕에겐 익숙했을지 몰라도 은정에게는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은정은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은정이 휘청거리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만덕이 은정의 팔을 붙잡고 일으키려 했으나 자신도 기운이 딸렸다. 은정의 상체만 들어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은정아, 왜 그래? 정신 좀 차려봐!"

 

"예. 갑자기 조금 어지러웠어요. 저... 배가 고파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덕이 집을 향해 번개처럼 달렸다. 집안을 뒤졌다. 급하게 먹을 것을 찾아보았다. 먹을 거라곤 냉동실 안쪽에 놓인 비비빅 하나 뿐이었다. 만덕에게는 생각이고 뭐고 할 틈이 없었다. 무작정 손에 쥐고 뛰어 나갔다. 

 

은정은 살구나무 아래 그늘에 누워 있었다. 만덕이 은정의 어깨를 잡고 들어올렸다. 하드 봉지를 서둘러 벗긴 뒤 은정의 손에 쥐어줬다. 만덕의 체온에 하드는 반쯤 녹아 있었다. 은정이 하드 막대기를 받아 쥐었다. 은정이 하드를 입에 넣으려고 들어올렸다. 순간 기운이 빠진 은정이 입에 대보지도 못 하고 하드를 놓쳤다. 땅바닥에 떨어졌다. 

 

둘은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더욱 난감했던 쪽은 만덕이었다. 

 

'집에 먹을 것이라곤 이게 전분데...'

 

그때였다. 은정이 땅바닥에서 하드를 집어 자신의 입에 넣었고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모래알이 사정없이 갈리는, 분명한 흙을 씹는 소리가 났다. 은정은 웃으며 먹었다. 입으로 흙을 쭉 빨아 뱉어내거나 호호 불어 털어내지도 않았다. 곱게만 살아온 은정이 그렇게 먹었다.

 

은정의 입안에서 모래 갈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만덕의 심장도 같이 갈려나가는 것 같았다. 저 고운 사람에게 흙을 먹게 하다니. 만덕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은정아!"

 

은정이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아요."

 

만덕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은정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은정이 하드를 다 먹을 때였다. 만덕이 손을 뻗어 흙을 한웅큼 손에 쥐었다. 은정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여주더니 자신의 입에 털어넣고 꿀떡 삼켰다. 

 

은정이 만덕의 허벅지를 벤 채 웃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이상하게 두 사람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만덕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은정의 앞이빨 사이에 좁쌀만한 까만 흙 알갱이가 끼어있었다. 마치 조개가 품은 진주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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