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책과 힘과 벽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요즘은 영어 가사의 지나친 사용으로 얼핏 듣기엔 K팝 음악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노래들도 있지만,
꿈과 책과 힘과 벽은 오로지 한국어로 쓰여진 가사가 특징이다.
특히 한 글자 단어인 꿈, 책, 힘, 벽을 조사인 '과'와 엮어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꿈 많던 어린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젊은이가 되고,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어른이 되어버리며 과거의 향수를 기억하며 어째서 어른이 된 건지 생각하는
나에게, 우리들에게 물어보는 듯한 가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3년 만에 돌아온 잔나비의 2집이네요. 머나먼 시간이었죠.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어요. 세상은 더 이상 갈망하지 않고, 치열하게 부딪히며 사랑하던 모든 관계 역시 시대답게 편리해진 듯해요. 그것도 모르고 언제나 더 뜨겁고자 했던 나와 내 친구들은 어디에 몸을 부벼야 할지 몰라 한낱 음악 속에 우리 이야기를 눈치 없이 다 담아버렸네요. ‘전설’이라는 쓸데없이 장엄하고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과 함께요. 투 머치 인포메이션. 그래서 빙빙 돌며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할테니 남 이야기 듣듯 무심히 들어주세요. 언젠가는 다 사라져 전설로 남을 청춘의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많은 시간 함께 기다려준 우리 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도 얼마나 많이 기다려왔는지 몰라요."
위의 글은 2019년 3월에 발매된 잔나비 2집, 『전설』의 앨범 소개글이다. 내가 오늘 이야기할 곡인 「꿈과 책과 힘과 벽」역시 전설의 마지막 수록곡이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는 2019년의 겨울이었는데, 당시 여러 상황으로 인해 많이 힘든 상황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우울한 감정을 달래곤 했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걸
앞에 쓴 전문과 더불어 꿈과 책과 힘과 벽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2절의 후렴구이다. 점점 어른이 되어 가는 우리들. 과연 하루하루 무거운 짐을, 무서운 밤을, 잘 버텨내고 있을까? '꿈과 책과 힘과 벽'의 나를 떠올렸을 때, 꿈을 펼치고 싶지만 책을 펼치고 있고, 힘을 가졌지만 벽에다 주먹질을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느껴졌기도 했다. 점점 마음은 응어리가 되어서 굳어 갔지만,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잔나비의 말에 위안과 함께 실컷 울곤 했다.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노래가 있냐 한다면 많은 노래를 말하겠지만, 그중 단 한 곡만 말하라 한다면 난 단언컨대 이 곡을 추천할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2% 부족한 글도, 나의 친구들도, 빛 바랜 전설이 되어 모두 끝나버리겠지만, 그럼에도 웃으며 함께 이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