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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대망 - (96) 응답받는 눈물의 기도 역대하 32장 24절

작성자서설원 목사|작성시간25.05.14|조회수38 목록 댓글 0

TBC 성서연구 - 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대망

(96) 응답받는 눈물의 기도 대하 32:24-26 열왕기하 20:1-11

 

대적이 물러났습니다. 이제 아래로는 뿌리가, 위로는 가지가 뻗어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요? 만군의 하나님께서 싸워주신 때문입니다. 어떻게 싸워주셨다고 했지요? 지난 시간 말씀 잠깐 복습하고 넘어갑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열심으로 이루십니다. 진짜 문제는 가까이 오지도 못하도록 지키십니다. 악인의 영광은 흔적도 없이 지우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연합하여, 악인들의 회유와 협박, 저들의 영광이 하룻밤에 소멸되는 것을 보시는, 끝까지 입술을 잘 지켜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늘 놀라운 승리를 안겨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어떻습니까? 한 시름 놓을 만 해졌다 싶었건만, 저 쓰나미같이 밀려들던 산헤립의 군대, 외부로부터의 문제가 해결되자, 히스기야 개인의 문제가 시작됩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던 것이지요? 히스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습니다. 1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이 가는 길입니다. 죽도록 바깥의 문제와 싸우고 씨름해서 간신히 살만해지면, 누군가가 아픕니다. 이제는 좋은 것만 누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덜컥 사형선고가 떨어지는 것이지요? 그것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참 인생이 덧없고 허무합니다.

 

오늘 히스기야가 그러했습니다. 어렵게 종교개혁을 하고, 한때 잘못 판단해서 조공을 바쳤던 것이 잘못되기도 했었고, 멸망직전까지 갔던 유다를 이제 다시 회복해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죽을 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진단을 내려주셨던 것이지요? 이제는 죽고 살지 못한다. 집을 정리해라. 집을 정리하라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 인생을 돌아보며 유품들을 정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문장을 직역하면 너는 너의 집을 위하여 명령하라”, 죽기 전에 후계자를 지명하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죽기 전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왕위계승에 혼란이 없도록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요? 이제 너는 더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예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도 얼른 몸을 떠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뵙고 싶습니다. 24시간 안에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실 수 있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허락하신 생애가 미련이 없고 후회가 없을만큼, 하나님 앞에서 내 모든 것을 다 드려 충성한 생애, 모든 사명을 멋지게 감당해두신 신앙의 자녀들과 복음전도의 열매들이 가득하셔서, 언제 부르셔도 기쁨으로 떠나실 수 있는 복된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최소 100살까지 건강하게 사명 감당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복된 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손이 탁 풀어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만큼, 갑자기 낙망하고 힘을 잃게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 중병에 걸리거나, 바로 내가 그 시한부 선고를 받는 자리에 있을 때입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고난이 거듭 거듭 찾아오면 사람들은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게 마련인 것이지요.

 

히스기야는 강대한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고통을 겪었는데, 이제는 죽을병까지 걸렸습니다. 더구나 선지자를 통해, 회복될 가망이 없으니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우리 삶에 이런 위기가 닥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정신을 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히스기야의 강점이 힘을 내기 시작합니다. 히스기야는 그 말씀이 주어지자마자 여호와께 기도하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기가막힌 역사를 일으킵니다. 히스기야가 뭐라고 기도하지요?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20:3)

 

진실된 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해 주님 앞에 행했던 자신의 삶, 그 가운데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환란과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추억해주십사 부탁드릴만한 선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많은 우리의 생애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나를 긍휼히,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나의 헌신과 수고를 기억해 주옵소서. 여러분 이 기도가 오늘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히스기야의 기도와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생명 15년을 연장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선행이 공로가 구원의 조건이 되지는 않습니다. 천국에 가냐 마냐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복을 주실, 치료하시고 회복하실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계속해서 수도 없이 이야기 합니다. 다윗이 정직하게 행했기에 유다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노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기뻐하심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기도의 근거를 쌓아두실 수 있는 복된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51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영광 받으신 하나님이, 그 영광을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저와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히스기야를 오해해서,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선행에 기초하고 선행에 의존한 기도에 머물러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 그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 오늘 그 말씀과 약속을 의지해서 기도하시길 축복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기도는 바로 이 사랑, 이 성품을 의지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어떤 것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의탁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히스기야가 자기의 선행을 추억해주십사 기도했던 것은 자기 선행을 의지하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기억해주실,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했던 것이지요.

 

여러분, 선행도 선행이지만 오늘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은 그 선행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은 어쩌면 그 히스기야의 공로와 선행은 하나도 보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보셨을까요? 그것이 바로 그가 올려드린 눈물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볍게 보지 않으십니다.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a broken spirit)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a broken and contrite-죄를 깊이 뉘우치는 heart)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여러 목사님들이, 예배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예배는 기쁨이고 감격이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예배에 나오면서 잔치요, 축제에 나오면서 기뻐하라고 말이지요? 웃으라고 말이지요? 울상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있지 말라고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기뻐하는 자리요, 다시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뵈옵는 자리이기에 축제요, 잔치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분명 예배는 우리의 진홍같은 죄를 양털 같이 희게 하는 역사의 자리입니다.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는 자리입니다. 재대신 화관을 슬픔대신 희락을 근심대신 찬송의 옷을 주시는 현장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상한 심령을 주님 앞에 드리는 시간이 예배시간인 것이지요. 그리고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가 바로 우리의 눈물을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우리를 치료하시고 회복하시고 고쳐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무거운 짐을 벗기고자 부르시는 자리가 예배의 자리입니다.

 

죽을 병에 걸린 채, 그것을 확인까지 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까지 들었으니, 모든 의욕을 잃을 법도 한데, 오늘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통곡합니다. 누구의 기도가 생각나세요? 히브리서 57절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여러분, 기도입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능히 구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는 것, 그렇게 하나님께 들으심을 얻는 것이 기도입니다.

 

히스기야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하나님 나를 향한 계획이 왜 죄다 이런 고통스러운 것들 뿐이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말씀드렸지요? 기도를 감사함으로 드리지 못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분임을 믿지 못하고 드리면 이렇게 원망과 비난, 불평과 푸념으로 기도가 채워지기가 쉽다고 말입니다. 그런 기도는 엊그제 랍사게와 산헤립처럼 하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될 수가 있는 위험한 것입니다. 제가 엊그제 읽어드렸잖아요. 레위기 24, 신명기 5, 죽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다가 인생의 위기를 만나면,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려워서 견디다 견디다 견디지 못하고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떠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을 버리는 것을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 시험들었고 나 이런 하나님이면 못 믿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떠날 구실을 찾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참으로 가볍고 얄팍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평가해대며 내 맘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이요, 기도인 것입니다. 슬픔이 찾아올 때, 시련이 찾아올 때, 어려움과 육신의 질병이 찾아올 때, 주님께로 더욱 나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한 심령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앞에서 속상하다고 울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와서 우시는 것입니다. 이놈 앞에 가서 울다가 저놈 앞에 가서 울다가 내 앞에 와서 울면, 여러분 그거 이뿌시던가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만 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이놈 앞에서 울다가 저놈 앞에서 울다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와서 울어도 하나님은 그 발걸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우세요. 새벽에 사람 많아 못 우신다구요? 사람 없습니다. 오셔서 우세요. 낮에 밤에 언제든지 오시고, 예배시간 전후 30분만 피하세요. 예수님 빼고 아무도 없습니다. 오셔서 마음껏 우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지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왕하20:5-6)

 

놀랍지요? 기도를 듣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죽을 병에서 간신히 살려주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온전히 나아가 성전에 올라갈 수 있도록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15년의 왕위를 연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모든 시간, 히스기야와 앗수르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노라고 약속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에?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으로 눈물로 통곡하며 드리는 기도에, 오늘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기도한 것에 어마 어마한 축복을 더해서 응답해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말씀 들으러 오셨나요? 울며 기도하러 오셨나요? 바라옵기는 울며 기도하러 오시길 축복합니다. 질병으로 울지만, 물질로 울지만, 대적 때문에 문제 때문에 가족들 때문에, 이웃들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 때문에 울지만, 기도한 내용은 물론이요, 기도하지 않은 것들까지 넉넉하게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 모두가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이 은혜, 주님 앞에만 서면 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마음 놓고 울 수 없는 우리를 따듯하게 받아주시고 안아주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평생에 함께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들으시는 기도, 저 히스기야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2절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왕하20:2)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그는 체념하지 않습니다. “낯을 벽으로 향하고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기록합니다. 산적한 국가의 중대한 일들을 남겨두고 젊은 나이에 죽게 된 히스기야는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홀로 한분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의 모습이 결연합니다. 세상을 뒤로하고 다른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의지로, 오늘 그는 하나님 앞에 눈물과 통곡으로 호소했던 것이지요.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던 골방기도가 생각납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

 

골방은 어떤 곳입니까? 다른 사람과 세상이 찾아올 수 없는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나만 머물러 대화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그곳은 진지함과 두려움이 있는 곳인 것입니다.

 

여러분, 벽을 향하든 골방에 들어가든 중요한 것은 세상과 사람을 뒤로하고 하나님과만 대면하는 시간, 하나님과만 대면하는 공간, 오늘 그곳에서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십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기도가 사람이 보고 알아주기를 원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참 기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6:5)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시지요? 그가 기도한 것 그의 병의 치유에 더하여 수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그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시겠노라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곤 곧바로 무화과를 종처에 얹어 치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 기도하며 상처에 된장을 발랐더니 다 나았더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절망적인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오늘 명령과 계획을 바꾸시는 것이지요? “당신이 죽고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사야의 발걸음을 돌리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번복하십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를 살려주신 것이지요?

 

히스기야가 지금 자신의 선한 일을 추억해달라고 기도했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한다구요? 히스기야처럼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를 추억해 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그 사건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간구를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지 여러분 그 사실을 알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다면, 오늘도 하나님을 부르실 수 있는 우리이기에 얼마나 축복인지요? 기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절대적인 절망의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를 오늘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지키시고 돌보시는 분이, 그 놀라운 사랑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해할 수 없도록 지켜주고 계신 까닭입니다. 오늘 이 밤에도 부르짖어 기도하실 바랍니다. 크고 작은 모든 일들, 특별히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민이 있다면 더욱 그것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가 부르짖으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보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기도의 즐거움과 참맛을 날마다 누리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기도에 파격적으로 응답하신 하나님의 처사가 사뭇 이해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은 의심스러운 태도로, 오늘 이 응답에 대한 증거를 요구했던 것이지요? 내가 나를 잘 아는데 삼일만에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어떤 징표를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마저도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롯의 소원을 다 들어주시던 천사처럼, 오늘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청을 다 들어주시는 것이지요? 이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왕하20:9)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기브온에서 해와 달이 머물렀던 사건을 말입니다.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삼일 길을 하루 만에 달려, 기브온 족속을 구해내려할 때, 하나님은 사람의 말을 전무후무하게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구의 자전이 잠시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의 자전이 역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던 것이지요? 나아갔던 해그림자가 오히려 뒤로 물러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런 표징까지 보이시면서 저 히스기야를 회복시키고 계시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천국가면 또 물어볼 것이 생긴 것이지요? 하나님 그 때 왜 그렇게 무리수를 두시며 히스기야를 살리셨습니까? 먼저 가시는 분이 물어봐 주시고 나중 가시는 분께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오늘 절망 중에 있던 히스기야의 간구를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중히 여기시고 들으셨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지구가 당신이 부여하신 질서대로 어김없이 자전하는 것보다, 히스기야 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오늘 그가 하나님의 응답과 그대로 역사하실 것임을 의심없이 믿고 담대하기를 더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능력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절망하고 의심하면 기도의 역사를 누리질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성도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어려운 중에 드리는 눈물과 통곡의 기도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도한 것 몇 곱절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어렵고 이길 수 없는 문제를 만나실 때마다, 절망스럽고, 원망스러운 일과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와 그를 위해 천지를 움직이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정말로 당신의 자녀를 천하보다 소중하게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하고 용기있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사람들 앞에, 세상 앞에 서시는 복된 분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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