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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즐거움

냉동 파이-허향숙 시인-

작성자아빠|작성시간26.06.23|조회수277 목록 댓글 0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56)

 

냉동 파이

허향숙(1965~ )

 

벌써 십오 년입니다

 

유리그릇에 예쁘게 담긴 채

냉동실 차가운 어둠 속에서

십오 년을 살아냈네요

 

아마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함께 살아낼 것입니다

 

아프기 직전 구워 준 파이

차마 먹지 못하고

저장해 둔 시간이 이리 깊습니다

 

보고플 때마다 꺼내어

눈으로 어루만지고 손끝으로 비비다

녹기 전에 서둘러 다시 넣어 두던

 

“엄마! 파이가 맛있게 구워졌어요.

커피와 함께 드세요.”

 

지금도 우련하게 들리는......

허향숙 시인

허향숙 시인

충남 당진 출생. 2018년 계간 『시작』으로 작품 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 『그리움의 총량』,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 전자시집 『슬픔은 늙지 않는다』. 시인이자 시낭송 문학가로 활동하며 문학과 예술의 현장에서 대중과 소통 중.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 허향숙 시인의 “냉동 파이”입니다.

 

읽으며 마음이 먹먹해지는 시가 있습니다. 시 속의 글자들을 눈물로 적시는 시가 있습니다. 그 글자들은 마침내 맑은 햇살 속으로 증발하고 빠빴한 종이와 가슴만이 남습니다.

 

어릴 적 칠성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키가 껑충하게 컸으며 피부는 새하얗게 빛났습니다. 친구들이 부르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사람 좋게 웃었습니다. 우리는 여름이면 동네 앞 개울에서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빠끔살이도 종종 했지요.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친구 칠성이는 깊지 않은 개울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했습니다. 깊지 않은 개울이었다며, 동네사람들은 이렇쿵 저렇쿵 수근댔습니다. 한동안 동네 아이들은 개울가에서 놀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것은 칠성이 어머니의 통곡소리입니다. 개울가에 앉아서 이튿날을 울었습니다. 마치 짐승 같은 울음소리였습니다. 칠성이 어머니의 울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산에 올라 칠성이 이름을 부르며 산 곳곳을 헤매셨습니다. 그런 날이면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칠성이 어머니의 울부짖음만이 온 동네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런 칠성이 엄마도 몇 해 전, 칠성이 곁으로 갔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슬픔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십오 년”이 아니라 백오십 년이 지나도 그 슬픔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시인의 따님은 “십오 년” 전에 아파서 이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마음씨 따뜻했던 딸은 어머니를 위해 “아프기 직전” “파이”를 구웠습니다. “엄마! 파이가 맛있게 구워졌어요.// 커피와 함께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런 파이를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지요. “냉동 파이”는 딸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아마도 살아 있는 동안은” “보고플 때마다 꺼내어” 보고 “눈으로 어루만지고 손끝으로 비비다” “다시 넣어” 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아 낼 것입니다”

 

칠성이 어머니의 울부짖음과 시인의 애닮음이 “우련하게 들리는” 여름 오후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6년 7월호, 창간 27주년 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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