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초대석(유명종 시인)
속도, 효율, 경쟁의 시대에 조용히 반기를 드는 책
『쓸모없음의 쓸모』 출간한 유명종 시인 겸 문화평론가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산문집 『쓸모없음의 쓸모』를 쓴 유명종입니다. 시인이자 문화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잡지를 만들었고, 지금은 문장과 행간을 오가며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강의와 문화 콘텐츠 기획도 하고 있습니다.
느린 걸 좋아합니다. 천천히 읽히는 문장, 시간을 품은 음식과 물건들…. 운동도 걷기처럼 몸을 천천히 쓰는 걸 좋아합니다.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게 있어요.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매력이 있고요.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세상을 깊게, 그리고 다르게 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산문집 《쓸모없음의 쓸모》를 소개하면?
속도, 효율, 경쟁이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시대에 조용히 반기를 드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느림과 결핍, 슬픔과 낭만, 사랑과 외로움, 죽음과 기다림 같은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것들을 자꾸 비효율적이고 무용한 것으로 밀어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것들이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오래된 노래 한 곡으로 하루를 견딥니다. 누군가는 저녁 무렵 잠깐 올려다본 노을빛 하나로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은 이미 떠난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죠. 한마디로 정리하면 세상이 ‘쓸모없다’라고 밀어낸 것들을 위한 에세이입니다.
-산문집을 내게 된 동기
내면에 쌓여 있던 질문들이 어느 날부터 문장으로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빠르게 살아야 하는가. 풍요롭고 편리한데 왜 우리는 외롭고 불안한가. 어느 날 문득 스케줄은 늘 빽빽한데 마음은 점점 비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삶의 속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 삶에 대한 감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을 끝내 살게 하는 것은 거대한 성공이나 생산성이 아니라, 무용해 보이는 감정과 연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질주하는 세계 건너편에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싶었습니다.
-산문집을 엮으면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민들레를 바라보던 순간입니다. 봄날이었습니다. 벚꽃이 지고 일주일쯤 지난 무렵이었는데, 산책하다가 풀밭이 노랗게 물든 걸 보았습니다. 민들레였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벚꽃은 올려다봐야 보이지만 민들레는 시선을 낮춰야 보인다는 사실을요.
세상이 ‘쓸모있다’라고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높고 빠르고 화려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낮은 곳에서 조용히 피어 있습니다. 사랑도 그렇고, 위로도 그렇고, 인간의 슬픔과 결핍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지요. 그 장면 이후 책의 방향이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산문집을 읽으실 독자들께 팁이 있다면?
천천히 읽어주세요. 이 책은 빠르게 읽으면 안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느 문장에서 멈추면 잠시 그냥 멈춰 주세요.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 멈춤이 이 책과 제대로 만나는 순간입니다. 한 독자가 이런 한 줄 평을 남겨주셨습니다. “절반만 읽고 나머지 절반은 아껴 읽고 싶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읽어주셔도 좋습니다. 하루에 몇 편씩,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천천히 읽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빠른 위로가 아니라 느린 동행이니까요.
-앞으로의 계획
계속 걷고, 계속 쓰는 것입니다. 거창한 계획보다 그것이 먼저입니다. 산책하다가 발견한 것들, 문득 떠오른 문장들, 오래 붙잡고 있었던 질문들. 그것들을 계속 글로 옮기고 싶습니다.
다음 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쓸모없음의 쓸모』가 질주하는 세상의 반대편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다음 책은 지구와 생명, 인류와 문명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인문 교양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지구와 생명의 탄생에서, 인간과 문명, 그리고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 전체를 하나의 긴 흐름 속에서 바라보려 합니다. 앞으로도 인간과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글을 계속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분들이시니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진짜 아름다운 것들은 대부분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요. 벚꽃보다 민들레가 더 오래 기억되는 날이 있습니다. 성공보다 다정함이, 속도보다 멈춤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쓸모없음의 쓸모』는 그런 순간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늘 더 높이 올라야 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삶을 끝내 지탱해 주는 것들을 오래 사랑하길 바랍니다.
<뷰티라이프> 2026년 7월호, 창간 27주년 기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