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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누벨바그란?

작성자다다|작성시간07.07.04|조회수194 목록 댓글 0
누벨바그

누벨 바그라는 명칭은 1958년 '렉스프레스'지의 여기자가 당시 새롭게 데뷔한 감독들을 새로운 물결(Nouvell Vague)이라 자칭하면서부터 영화계에 등장했다. 누벨바그는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로, 자끄 리베뜨, 아녜스 바르다, 로제 바딤, 루이 말과 같은 감독들의 영화를 포함하기도 한다. 누벨 바구 감독들은 씨네마떼끄 프랑세즈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에서부터 할리우드 B급 영화까지 영화역사를 두루 섭렵하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교과서적인 영화보다는 앞으로 프랑스에서 나아갈 영화에 대해 논의하였다. 영화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영화 속의 현실에 대해 고뇌했던 그들은 감독의 창조적 개성을 반영한 영화가 진정한 영화라고 주장했으며, 영화 속에서 꾸준히 탐구하는 일관된 주제를 갖는 사람을 '작가'로 규정하여 영화계에 작가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누벨 바그 세대들이 새롭게 내 걸었던 영화 형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승전결식의 양식화된 구성에서 벗어난 영화였으며, 저항과 변화를 전제로 기존의 문화 관습과 패러다임에서 탈피한 영화였다.

첫째, 누벨 바그 감독들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스튜디오에서 잘 만든 세트 속에 잘 알려진 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공 조명을 사용해 영화를 찍는 것과는 달리 이탈리아 신사실주의 전통과 바쟁의 리얼리즘 이론에 영향받아 스튜디오를 떠나 거리에서 동시 녹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누벨 바그 감독들은 현장에서의 경험 없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만들었고 고전적인 할리우드식의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는 일부러 엉성하고 낯선 영화들을 만들었다. 당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일탈과 반항을 즉흥 연출과 인터뷰, 자막사용, 단절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블록 구조, 관객에게 직접 건네는 대사 등 전통적인 이야기 틀을 벗어난 화면 속에 담음으로써 할리우드 영화에 도전했던 것이다.

둘째, 현장 촬영을 선호하고, 들고 찍기 같은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을 자주 사용했으며, 롱 테이크를 특징으로 한 영화였다. 또한 인물을 쫓거나 장소를 보여주는 데 패닝과 트레킹이 자주 쓰인다. 트뤼포의 <400번 구타>에서 주인공 앙뜨완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미디엄 쇼트로 앙뜨완느의 얼굴을 롱 테이크로 잡아 준 장면이나, 고다르의 <주말>의 첫 장면에서 자동차 사고 현장을 수평 크레인을 이용하여 카메라를 횡으로 이동시키면서 롱 테이크로 잡은 화면 등은 관객들에게 영화 속 사건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카메라의 수평 이동을 통해 잡은 이동 화면을 통해 관객들이 배우가 아니라 주변 환경에 집중하도록 권유하며, 화면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스스로의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다. 따라서 관객들은 자신이 피사체를 선택해 관찰하며 화면 속에 나타나지 않은 장면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냄으로써 영화 화면에 비치지 않은 공백을 채워 가는 것이다.

셋째, 플롯의 인과론적 연결성은 더 느슨해졌으며, 행위의 뚜렷한 목적이나 동기를 확인할 수 없는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식의 사건과 인물은 불연속적인 편집 기교와 맞물려 서사구조의 연속성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모호한 결말을 제시한다. 흔히 점프 컷으로 불리는 몽타주 컷을 도입해 동일한 인물이 처한 상황을 시간적으로 다르게 바뀌는 배경 속에 삽입함으로써 일관된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관객들의 기대치를 배반하고 꾸며낸 이야기의 인과 관계 대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자 했다.

넷째, 그들은 자유로운 영화를 지향했다. 작가주의를 표방했던 그들은 영화 감독도 화가처럼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하고 화면이라는 캔버스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트뤼포 같은 감독은 기록 영화를 삽입하여 영화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으며, 동일한 영화 속에서 화면의 크기도 변화를 주었다.

다섯째, 할리우드나 유럽의 다른 영화들을 인용한다. 이는 그들의 재치와 영화 매체에 대한 자의식을 엿보게 하는 특징으로서 영화 선배들에 대한 존경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들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누벨 바그 감독들은 1968년 5월 학생 혁명을 계기로 결별했지만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해 영화로 대답하여,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였다. 일정한 틀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들의 실험정신은 다른 나라의 뉴 씨네마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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