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3일
영원한 군인 - 백골부대
나의 아버지는 군인이셨다. 나의 자랑이다. 큰딸인 나에게 아버지는 큰 산이었다.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자랐다. 지금 내 나이를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짠하다. 서른쯤부터 마흔 살, 쉰 살에 아들딸 4남매를 키우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드셨을까?
최전방 철원 백골사단에서 근무하실 때 퇴근 후, 술을 드신 날에는 전투화를 신고 주무셨다. 혹시나 술에 취해서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까 봐 군복도 입고 전투화도 신은 채로 주무셨다. 아무리 엄마가 전투화를 벗기려 해도 아버지는 완강하게 뿌리치셨다는데 취중에도 오직 부대 생각만 하신 것 같다. 비상 연락이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군복을 입고 전투화를 신으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로봇처럼 움직이시던 우리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아버지 기일에 대전 현충원에서 참배한다. 한동안 아버지를 찾아가서 하루 형제들과 보내다 왔는데 얼마 전에 남동생이 아들을 결혼시켜서 그때 형제들이 다 만났다. 동생들이 현충원에 다녀와서 올해는 조용히 아버지를 그리면서 보내고 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군복과 전투화가 떠오른다. 아침마다 아버지 출근 전에 나는 전투화를 반짝반짝 닦아놓았다. 구두약을 바르고 면으로 된 헝겊으로 쓱쓱 싹싹 닦으면 광이 났다. 결혼해서도 남편의 구두를 닦아준다. 출근 전에 남편의 신발을 깔끔하게 닦아서 현관 앞에 놓아둔다. 남편이 고맙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구두를 닦아놓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어려서 아버지께 해드리던 좋은 기억이라서 그리움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언제인가 남편이 회사에서 직원들이 구두가 항상 깨끗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출근할 때 아내가 구두를 닦아주지 않느냐’라고 농담처럼 대답했다고 했다. 표현은 안 해도 다 알고 있었나 보다. 아버지 생각에 언제나 따스한 출근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는 약주를 좋아하셨다. 술 한잔하시면 노래를 부르셨다. 내가 어릴 적에는 회식을 집에서 주로 했다. 엄마는 음식을 잘하셨는데 아버지가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데리고 오셨다. 그럴 때마다 환하게 웃으면서 안주를 마련하셨다. 특히 병사들에게 밥을 잘 해주신 기억이 난다. 집에서 회식하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렸다.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난다. 노래 가사를 다 외워서 불렀다, 전축을 틀어놓고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면서 장단을 맞추었다. 우리는 옆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면서 엽서도 보내고 음악도 들으면서 나름 멋있게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대전 현충원에 엄마랑 함께 계신다. 현충일이나 기일이나 명절에 찾아뵌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맥주와 오징어 한 마리 구워서 다녀와야겠다. 아버지 오늘은 많이 생각나고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