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4일
백팔 톤의 바위가 한 말 / 한승원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내 몸뚱이 백팔 톤의 무게로 당신의 백팔번뇌 눌러 놓고
전어회 한 접시 소주 한 병으로
흐르는 구름 바라보며 사랑과 달을 노래할 시간을 만드십시오.
당신의 그 시간을 영원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 속에
보석 같은 사리를 앙금지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백팔 톤의 바위로
당신의 백팔번뇌 눌러놓으면
당신의 몸과 일상이 신화와 전설이 되는
파도를 몰고 달려온 미역냄새 나는 바람이
횟집의 유리창에 볼을 비비며 속삭이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흐린 날이다. 베란다 벽에 기대어 있는 천으로 만든 쿠션 의자에 홀로 앉아서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다. <햇볕 의자>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천으로 만든 앉은뱅이 의자라서 감촉도 폭신하고 시멘트 바닥의 차가움도 덜어준다. 한가로운 시간에 햇볕을 쪼이면서 음악도 듣고 커피도 마신다. 무엇보다 마음이 눅눅한 날에는 햇볕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서 한참을 앉아서 ‘햇볕 샤워’를 한다. 겨울에는 무릎담요를 덮고 양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눈을 감은 채 한참 앉아 있다.
어려서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까만 먹지의 한가운데 대면 종이에 불이 붙어서 타들어 갔다. ‘햇볕 샤워’를 할 때마다 돋보기가 생각났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천근만근 무겁던 몸이 뽀송뽀송해진다. 잠깐 졸곤 했다. 내 몸이 먹지가 되어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승원 선생님이 생각났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계신다는 소식을 작년 봄에 들었는데 그 후로 전화 통화가 안 된다. 걱정이 되지만, 마음뿐이다. 아침부터 선생님 책을 손에 들고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보고 있다. 마음에 위로가 조금은 된다. “좋은 시 많이 쓰세요.” 하시던 선생님 목소리가 그립다. “건강하셨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뵈는 건데” 속상한 마음이 자꾸 든다.
선생님이 자주 가시던 횟집에서 전복죽을 사 들고 뵈러 갔던 그해 여름이 생각난다. 오랫동안 감기로 힘들어하셨는데 전복죽을 잡수시고 좋아졌다고 하시면서 소년처럼 해맑게 웃으시던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마음처럼 조금은 흐린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