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1일
갓꽃이 귀한 손님이다
동자못이 새롭게 단장했다. 동자못 기운이 다한 듯한 생각에 섭섭했는데 다시 생기를 찾아서 동네 사람들 산책로가 되었다. 동자못도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연못이 되었다.
태풍에 쓰러진 속이 까맣게 타버린 회화나무는 우리 아이들 놀이터였다. 송사리 소금쟁이 우렁이 도마뱀이 친구가 되어주던 이제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우리 큰아들 놀이터였다. 꽃무덤 만들면서 소꿉놀이하던 소녀는 멋진 요리사가 되었다. 동자못을 산책하면 꼬마들이 하나둘 동자못에서 걸어 나온다.
누가 심지도 않았다. 바람이 키운 갓꽃이 동자못 산책길을 노랗게 물을 들인다. 느티나무와 회화나무와 이팝나무, 은행나무가 초록 문자를 보낸다. 싱그럽고 찬란한 4월의 하루를 온몸으로 껴안고 행복해한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해가 길어져서 늦은 오후에 산책하러 나간다. 이른 새벽이 아니면 낮에는 기미가 무서워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다. 젊어서부터 선생님들과 답사를 많이 다녔다. 주변에서 모자를 쓰라고 걱정해도 귀찮고 답답해서 그냥 다녔다. 얼굴에 잡티가 생기는 정도는 걱정도 안 하던 내 삶의 가장 뜨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가끔 돌아보면 순수하고 뜨겁고 짜릿한 순간이 많아서 그냥 좋다.
이제는 맨얼굴로 돌아다니는 것은 나에게 미안한 것 같다. 이제부터는 나를 아끼고 조금만 애쓰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억지로 악착같이 용을 쓰면서 살아도 보았으니, 이제는 천천히 즐기면서 걷고 싶다. 조용히 행복한 시간을 기록하면서 살고 싶다.
동자못 둘레길 경관 등에 불이 들어왔다. 동네 어르신들이 보이지 않는다. “새댁은 몇 바퀴 돌아?” “다섯 바퀴 정도 걸어요.” “많이 도는구먼. 젊어서 잘 걷네.” 10년 후 내 모습이다. 아직도 나를 새댁이라고 부르는 어르신들이 내일도 모레도 동자못을 환하게 웃으면서 걸었으면 좋겠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동자못 야경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이렇게 귀한 손님을 어떻게 대접해 줘야 할까? 물속에 비친 불빛과 노란 유채꽃의 조합이 가슴 시리게 아름답다. 이 순간 단 하나의 풍경이다. 누군가에게 마구 자랑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