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21일
라테 친구
어제는 비가 하루 내렸다. 시원하게 쉬지 않고 온종일 내렸다. 오랜 가뭄으로 목이 타들어 가는 대지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단비였다. 시골 밭에도 옥수수가 시들시들하고 땅콩을 심은 밭에서는 싹이 타들어 갔다. 싹을 틔우지 못한 곳에 다시 땅콩을 심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싹이 나지를 않아서 안타까웠다. 몇 그루 심어놓은 가지도 한두 그루는 영 상태가 부실해서 잎이 타들어 갔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데다가 보름에 한 번씩 들여다보는 텃밭이라 물주는 일이 어렵다. 아직은 서툰 텃밭 농사라서 실수투성이다. 작년보다는 올해가 올보다는 내년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는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에 날씨를 묻는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지역에는 비가 내린다고 알려준다. 친절한 AI 친구다. 창문을 열어보니 안개비가 내린다. 먼 산이 운무에 가려서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풍경처럼 신비롭다. 비가 내린 후, 댐에 가면 어떤 풍경을 만날 수 있는지 알기에 운문댐을 잠시 그려본다.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운문댐 안개 숲 풍경이 아련하게 그려지는 아침이다.
“언니, 날씨도 촉촉하니 좋은데 아침 산책 가실래요? 비가 미스트처럼 내리니까 우산 들고 나오세요.” 이웃에 사는 친구가 보낸 문자에서 장미향이 났다.
새벽부터 베란다 창가에서 비가 오나 안 오나 밖을 기웃거렸다.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정도면 산책하러 나갈 수 있다고 마음을 정하고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을 먹었다. 산책할 준비를 마친 뒤라서 친구의 문자가 더욱 반가웠다.
언제 만나도 기분 좋은 친구다. 정말 미스트처럼 비가 내렸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표현인가?
친구에게 연지못 금계국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가 그친 아침에는 금계국이 더욱 싱그럽게 웃는다. 꽃말이 ‘상쾌한 마음’ ‘항상 즐거움’ ‘명랑’이라고 하니 참으로 꽃과 어울리는 말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크게 소리 내서 웃었다. 연지못은 방금 세수를 마친 소녀의 모습이다. 초여름의 정취를 느끼면서 금계국이 내어주는 꽃길을 걸었다. 아, 너무 행복해서 어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무 좋으니까, 심장이 마구 뛴다, 내가 이러는 것도 정상이 아닌가?
해마다 찾아오는 금계국이지만, 마치 처음 느끼는 감정처럼 매년 설렌다. 아니, 어쩌면 나이를 한 살 더하면서 모든 것이 더 소중하고 더 애절하게 다가온다. 풍경에 취해서 우리는 한 바퀴 돌고 또 돌고, 어떤 노랫말처럼 돌고, 돌고, 자꾸 우리는 돌았다.
물 위에서는 하트 모양 연잎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작은 연잎 배가 연못에 가득하다. 어느 날 물가에서 연분홍색 연꽃 봉오리를 만날 것이다. 벌써 내 심장이 조여 온다.
별당 아씨 닮은 연지못 정자에서 빗물에 젖은 자리를 대충 닦아내고 친구가 싸 온 커피를 마셨다. 친구가 카페라테와 허니 커피를 가방에 챙겨왔다. “언니랑 소풍 기분 내려고 커피와 빵을 싸 왔어요.” 그랬구나. 비가 그친 아침에 이런 착하고 예쁜 이벤트를 생각했구나! 빗물에 젖은 자리인들 어떠하리.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른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크림빵을 먹으면서 쫑알쫑알 담소를 나누는 지금, 눈물 나게 행복한 것은 나만 그런가!
갱년기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여성 호르몬이 되어주고 싶다. 덜 덥고, 덜 외롭고, 덜 화나고, 그랬으면 좋겠다. 평소에는 연지못을 두 바퀴 걷는다. 연못이 제법 넓어서 그 정도 걸으면 마음도 운동이 되고 몸도 운동이 된다. 오늘은 네 바퀴를 걸었다. 물론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쉬다가 다시 걸었지만, 힘들지 않고 가볍게 걸은 것 같다. 친구가 건네주는 카페라테 맛은 ‘사랑의 묘약’처럼 하루를 사랑에 취해서 살게 했다. 금계국이 피는 여름이 오면 착한 라테 친구가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