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23일
무치 바위
시골집 앞에 하흘천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는 냇가가 있다. 비교적 하천의 폭이 넓어서 냇가로 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운 하천이다. 지금은 새로운 다리가 있어서 장마철에도 걱정이 없지만, 예전에는 오래된 다리가 물에 잠기는 날에는 보를 건너왔다,
예전에는 흐르는 물도 많았고, 주변에 모래밭이나 자갈밭이 있어서 고기도 잡고 물놀이도 했다. 이제는 하천 주변에 풀이 무성하다. 모래나 돌덩이는 수풀 속에 숨어버렸다, 낚시하려면 풀숲을 헤지고 들어가야 한다. 물놀이는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다슬기가 많아서 사람들이 잡으러 많이 온다. 이 지역 말로 ‘고디’라고 부르는데 해마다 여름이면 시댁 형제들이 모여서 고디를 삶아서 일일이 알갱이를 바늘로 꺼내서 얼갈이배추와 부추를 넣은 고디탕을 끓여서 먹는다.
여름이면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모깃불을 피워놓는다. 한쪽에서는 장작불을 피워서 고기도 굽는다. 얼큰한 고디탕을 스테인리스 그릇에 하나 가득 퍼주면 땀을 흘려가면서 먹는다. 숯불에 구운 삼겹살을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쑥갓을 올려서 먹으면 무더위가 무서워서 달아난다.
시골집은 며느리인 나에게는 추억이 없지만, 시댁 형제들에게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날 것이다. 이방인이지만 그들의 시간 속에 첨벙 다리를 담그고 새로운 시간을 입혀가는 중이다.
주말에나 가게 되는 시골집 마당에 들어서면 기운이 없는 핼쑥한 얼굴로 늙은 집이 우리를 맞아준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상추와 배추가 신통하게 훌쩍 자라있다. 홍매화 나무도 어쩌다 보면 쑥쑥 키는 아이들처럼 몰라보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의 순리인가 보다. 한쪽에서는 낡아가고 한쪽에서는 새롭게 태어난다.
안주인의 부재로 적막감과 허전함이 있지만, 시멘트로 다져놓은 마당에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잡초들이 왕성한 기운을 뿜어낸다. 댓돌 아래에 뽑아내도 뽑아내도 다시 살아나는 씀바귀가 살고 있다. 어지간하면 그냥 버려두는데 신발을 벗어두는 디딤돌 바로 아래에서 몸집을 엄청나게 키우고 있으니 드나드는 이웃 사람 입방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서 보이는 대로 뽑아낸다. 돌 틈에 꽉 박혀서 호미로 캐내도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 어느 날, 노랗게 핀 씀바귀꽃을 보면서 “그래, 함께 살자” 마음도 먹었었는데 하루는 지나가던 이웃 어르신이 ‘이런 것은 뽑아줘야지.’ 하면서 단호하게 손으로 뜯어내니 어쩔 수 없다.
아침을 먹고 남편이 어려서 물고기 잡고 수영하던 냇가로 산책을 나갔다. 풀이 무성하게 자랐지만, 그래도 자갈도 보이고 모래밭도 보이는 정겨운 냇가다. 건너편에 바위가 예사롭지가 않아 보였다.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추억의 무치 바위다. 멀리서만 보다가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니 사랑하는 사람의 추억이 살아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친근하게 다가왔다. 무치바위는 물이 많아지면 묻혀버려서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바위 이름이라고 한다.
동시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말을 안 해도 저 바위에서 무엇을 하면서 놀았는지 알 것 같았다. 철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냇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하던 냇가에는 무치바위를 닮은 바위가 있었다, 동네 개구쟁이들이 한여름 뙤약볕에서 더위를 식히던 곳이다. 용감한 아이들이 바위 위로 올라가서 다이빙했다. 하나둘 아이들은 코를 막고 뛰어내렸다, 풍덩 소리를 내면서 멋지게 다이빙하던 친구들이 참으로 용감해 보였다.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나는 깍쟁이처럼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모래밭에 앉아만 있었다, 수영복이 흔하지 않은 시절에 군인이셨던 아빠 덕분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은 기억이 난다. 파란 수영복을 기억하는 초등학교 남자 친구가 “그때 너 무척 깍쟁이였어, 새침하고.” 피식 웃으면서 바람처럼 말했다, 그 소녀가 내 안에 살고 있다.
최북단 철원에서 자란 아이들이나 상주라는 남쪽 지방에서 자란 아이들이나 추억은 같다. 무치바위에서 팬티만 입고 씩씩하게 뛰어내리던 아이들이 그려진다. “저렇게 얕은 물에서 다이빙하면 다치는 것 아니야?” 바위를 바라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바위 아래는 깊어, 위험해.” 하면서 멍하니 무치 바위를 바라보는 남편 뒷모습을 놀래 사진에 담았다. 무치바위 이야기를 아마도 백번은 들었을 것이다. 언제 들어도 동화처럼 따스하고 파란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