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6일
현충일 스케치
오늘은 71주년 현충일이다. 매년 현충일에는 영천 호국원에 계시는 시아버님을 참배하러 간다. 대전 현충원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도 간절한 날이다. 당일에는 복잡해서 친정 동생들도 전날에 미리 다녀온다고 하니 서운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당일에만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시댁 행사에 며느리인 나는 제수를 챙겨서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조금은 섭섭할 수 있다. 그렇지만 너무 뾰족하게 생각하면 내가 아프다. 언제든 대전 현충원에는 다녀오면 된다고 마음을 정하고 시댁 행사에 내 도리를 다한다. 나 하나 마음을 접으면 모두가 편안하다.
현충일 전날 늦은 밤에 내일 가져갈 제수를 준비한다. 시댁 형제들이 모두 참석하는 날에는 제수 준비를 많이 한다. 올해는 우리 식구만 참석하니까 간단하게 준비했다. 시아버님이 좋아하시던 배추전과 동그랑땡, 감자전을 부쳤다.
내일 아침에 호국원 가는 길에 과일과 막걸리와 황태포를 사면 된다. 늦은 시간까지 전을 부치면서 친정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큰딸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어디서든 구김살 없이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군인의 딸로 살아가는 일은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음식을 하면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함께 드세요.” 친정 부모님께도 인사를 가야 하는데 이제는 어른스럽게 순리에 따르는 삶을 살아간다.
2주 만에 집에 온 남편과 현충일 당일에 시골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시골집에 도착하니 포도나무 가지가 근처 텃밭 고추를 칭칭 감으면서 살고 있었다. 고추는 숨이 막혀서 죽어가기 직전이었다. 옥죄인 줄기를 풀어주니 고추가 이제 살았다는 표정이다. 홍매화 나무도 진드기로 몸살을 앓는다. 매일 들여다보면서 보살펴야 하는데 서울에서 오가는 일이 힘들다. 올 때마다 마음이 급하고 짠하다.
상추가 마당 가득이다. 오랜만에 오면 채소들이 몰라보게 자란다. 2주 전에 쑥갓도 댕강댕강 다 잘라서 가져왔는데 키가 훌쩍 컸다, 상추와 쑥갓을 뜯어서 봉지에 담았다. 직접 키워서 자란 채소를 수확하는 맛은 아삭아삭하고 달콤하다. 남편은 나무에 유기농 약을 뿌려주었다. 대추나무도 단정하게 가지를 쳐주고 얼갈이배추는 다 뽑아서 손질했다. 달팽이가 잎을 야무지게 갉아 먹어서 줄기만 성하다. 서로 나눠 먹으면서 살기로 했으니 그다지 속상하지 않다. 줄기만 챙겨도 우리 식구 먹고 남는다. 여름에 시아버님 기일이 있는데 그때 나물로 쓰면 된다. 아들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키운 채소니까 아버님이 좋아하실 것이다. 배추를 다듬는데 달팽이가 더러 보인다. 이제는 무섭지 않다. 배추를 나눠 먹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서너 시간 머물면서 금한 것을 단도리하고 시골집을 나섰다. 현충일 행사를 핑계로 시골집을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남편을 칭찬해 주었다. 포도 줄기가 칭칭 동여맨 고추는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고 나무들도 진딧물 몸살로 얼마나 아팠을까? 채소밭에 물을 흠뻑 주고 시골집을 나오는 데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번에는 막내아들도 모처럼 할머니 집에 함께 가서 텃밭에 물도 주고 우물가에서 사이좋게 살고 청개구리 한 쌍을 만나기도 했다, 달팽이가 배추밭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풍경과 제비가 안방까지 드나드는 정겨운 모습을 만나기도 했다. 청개구리 한 쌍이 수도꼭지에 나란히 앉아서 인기척에도 꿈쩍도 안 하니 밭에 물을 대야 하는데 난감해서 우두커니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던 따스한 풍경을 시골집에 그려놓았다. 마음이 따스한 아들은 끝내는 다른 호스를 연결해서 물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남겨놓고 시골집을 나섰다.
부지런히 달려서 영천 호국원에 도착했다. 현충일 행사가 끝난 시간이라서 한산했다. 햇살은 따가워도 복잡하지 않아서 여유롭게 참배했다. 아들과 손자와 며느리가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니 아버님도 흐뭇하신 것 같다. 비석을 말끔하게 닦았다. 좋아하시는 막걸리와 배추전을 드시면서 이제는 성인이 된 손자와 희끗한 머리를 숙여서 절하는 큰아들 모습을 보면서 오늘 하루는 외롭지 않으셨으리라. 작은 손자가 올해는 세상과 소통하는 작품을 만들어서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할아버지께 간절하게 부탁했다. 어미는 자식 앞에서는 이렇게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나 보다.
오늘 두 번째 일정을 끝냈다. 다음은 세 번째 일정으로 남편 대학교 동기 모임이 있다. 부부동반이라 정신없는 스케줄에 마음이 바쁘다. 저녁 모임이라서 부지런히 참배를 마치고 집에 잠시 들려서 옷차림을 고치고 시내로 나갔다. 시원한 냉면을 먹었더니 정신이 돌아온 기분이었다. 냉면 맛이 엄지척해 주고 싶은 명품 냉면이었다. 식당 밖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슬로우 라이프> 라는 자연 친화적인 카페에서 망고 빙수를 먹었다. 식물원처럼 꾸며놓은 하우스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내 마음까지 꽃향기로 가득해지는 밤이었다.
가끔은 아름다운 카페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난생처음 카페에 온 듯한 촌사람이어도 좋다. 나는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이런 곳도 있구나! 오늘 밤은 망고 빙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