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가 자라는 시간
아랫마을 기와집 담장 아래서 자라는 옥수수가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큰다. 아랫마을을 거쳐서 근처 연못으로 산책하러 나가다 보면 집집이 비슷한 작물을 키우고 있다. 대문가에서는 장미꽃이 거침없이 도전적으로 피더니 유월로 들어서니 시들 부들부들하다. 길바닥에 낱장 낱장으로 떨어진 장미꽃잎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시간의 흐름에 순종하는 삶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들 부들부들해서 떨어지는 장미꽃을 한참으로 바라보았다.
중앙아메리카 신화에서는 신이 옥수수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인디언 이야기 속에서도 ‘옥수수수염’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자연을 닮은 너무도 순수한 이름 같아서 내 마음에 저장을 해두었다.
옥수수는 사람과 친근한 작물이다. 옥수수수염이라고 부르는 것이 옥수수의 암꽃이고 위쪽에 피는 벼처럼 달린 이삭이 수꽃이라고 한다. 해마다 옥수수수염을 말려서 차로 마시곤 한다. 강원도에서 자란 나는 옥수수에 대한 추억이 많다. 옥수수 알갱이를 일일이 따서 냉동실에 얼려둔다. 한겨울에 밥을 지을 때 조금씩 넣어서 먹는다. 강냉이밥은 나에게는 영혼의 음식이다.
여자아이들은 옥수수 껍질을 잘게 찢어서 머리카락처럼 땋아서 인형으로 갖고 놀았다. 강냉이로 튀밥을 튀겨서 한 자루 들고 오시던 엄마의 모습이 아련하다. 까슬까슬한 튀밥을 그릇에 담아서 동생들과 아랫목에서 이불 아래 발을 묻고 먹던 시간이 이제는 오래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옥수수가 단장 아래서 저돌적으로 자라듯 호박도 담장 위에서 곡예 하듯이 담장을 타고 오른다. 주인장이 가지를 묶어주면서 길을 터준다. 벌써 꽃을 야무지게 물고 있는 부지런한 친구도 보인다. 처음 호박을 심었을 때 마당 전체로 번져서 당황한 적이 있다. 초보라서 심어놓고 내버려두었더니 호박의 기세가 온 집안을 점령했었다. 이제는 길을 터주고 보살피면서 키우고 있다.
온 세상이 푸르다. 연 저수지도 날마다 푸르러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