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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는 지혜로운 삶의 담론

작성자김석철|작성시간26.06.07|조회수146 목록 댓글 0

상식이 통하는 지혜로운 삶의 담론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사) K 정나눔 이사장)

보편적으로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시시각각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매체의 역할담당은 더없이 소중하다. 까닭에 극소수의 창조자로서 정신작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문화예술인에게「상식이 통하는 지혜로운 삶의 담론」의 논의에서 일체의 뉴스 기사는 신속한 보도로 실생활에 영향을 끼침은 새삼 유념할 문제다. 그 같은 맥락에서 필자 그 나름으로 엄숙한 삶의 매 순간을 이 땅의 진정한 정신작업에 몸담아 오면서 “듣고 말하되 집착(執着)하지 말라.”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스스럼없이 화평을 나누는 자가 될 것을 끊임없이 헤아려왔음은 솔직한 심사(心事)다.

일단『한국일보』(2023년 10월 24일) 문화면의「'출판계 환멸' 느낀 출판인들이 공동체 만들어 출간한 에세이 시리즈(이혜미 기자)」기사 중 ‘언론·출판 종사자 에세이 시리즈인 '우리의 자리' 통해 출판공동체 '편않'이 말하고 싶은 것들 출판공동체 '편않'이 지난해 9월부터 발행하고 있는 언론·출판 종사자 에세이 시리즈『우리의 자리』(5권. 편않 제공)를 논의에 앞서 한 번쯤은 분별할 당위성을 지닌다. 또 한편 ‘지난 2017년, 경기도 파주출판 단지의 같은 출판사 동료로 지내던 젊은 출판인 몇 명은 출판계에 대해 느끼던 환멸과 절망의 감정을 토로하곤 했다. '왜 출판계는 늘 불황일까?', '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을까?', '왜 출판노동자들은 이직이 잦을까?' 등과 같은 물음은 출판계의 후진성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수렴됐다. 그 같은 결과로 '출판공동체'라는 이름의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편않)'를 출범시켰다. 마침내 2018년부터 독립잡지인「편않」을 발간하고, 2023년 ‘세계 책의 날(4월 23일)’을 맞아 서평집『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을 출간하는 대안적 출판문화를 지향하였음도 새삼 긍정적으로 가늠할 일이다.

그 같은 일면에서 언론·출판계의 문제를 다양하게 다뤄온 주로 언론계 출신인「저니맨(떠돌이)」의 ‘체험과 느낌, 육성, 고뇌 및 소외감’을 구도 처리한 언론·출판인 에세이 시리즈『우리의 자리』(5권째)를 출간하며 그 정체성을 확장하였다. 비록 새로운 맥락은 아닐지라도 자못 언론의 기능은 대중을 자극하여 무명의 인사도 공론화로 한순간 유명인사로 거듭나게 만드는 다소 안타까운 사회현상은 물론이거니와 또 한편 그와는 상이하게 대조적으로 명망이 높던 공인의 비리와 부당함을 한순간 확증시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시키는 작금의 현상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이처럼 정보화의 생명력은 물리적인 행위와는 별개로 가히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무제한의 위력과 맞물려 있음은 다시금 주지할 바다.

어디까지나 사회의 정의이고 또 공기(公器)인 언론의 역할은 권력을 경계하고 편 가름 없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공동체의 추이(推移)와 민주사회의 변화·발전에 공헌하여야 한다. 차제에 최소한 언론작업의 종사자라면 역사적 소임과 이해의 상충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지닌 정확한 보도로 소외된 약자의 인권을 존중함은 물론이고 이해당사자의 피해를 최소화하여야 한다. 따라서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상에서도 마치 튀르키예의 혁명 시인 나짐 히크메트 란(Nâzım Hikmet Ran)이 <신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우둔함을 신의 이름으로 경계하며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결국 현재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듯 정권의 도구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건의 가시화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여 합일을 불러내는 토론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담당으로 건강한 비판의식을 올곧고 엄중하게 지켜내야 한다.

그렇다. 역사적 소임을 담당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할 언론인이라면 한 시대의 양심이며 지성인임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언론의 진정성이 공익과 정의의 편에서 진실을 명증하고 사건을 신속 정확하게 통신하는 역할수행에 맞물려 있음을 수긍하고 존재감을 명백히 확증할 일이다. 또 한편 일반사항이지만 ‘5W 1H의 기사작법’에 의해 씌어 진 기사의 생명력은 객관성과 정확성이 잇닿아 있기에, 과장됨과 편견을 배제로 그 키워드는 적절성을 명증해야 한다. 그와 같이 양심에 한 치의 부끄럼이 없는 진정한 언론인은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 일체의 조건에 부당한 차별성을 받지 않도록 감시기능으로서 철저한 역할을 담당할 일이다.

각론하고 진실로 우리가 처한 사회현상이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는 사회구조일지라도 ‘공동체 인식(inter-being)’을 일깨워 통섭(通涉)의 지평을 열어가는 소중하고 지혜로운 삶의 교시(敎示)로 이해의 상충을 경계해야 한다. 또 한편 언론은 여론을 선도하는 기능을 지녔기에 국민의 공통된 정서나 의견의 집합체로서 응당 정론을 펴는 언론인으로서의 시대적 소임을 부당한 압제에 맞서 결코 굴복하거나 정의의 필봉을 꺾지 말아야 한다. 까닭에 1940년 독일 나치의 정치 선동에 저항한 끝에 가톨릭의 20세기 성인으로 추앙받는 네덜란드 출신의 언론인 티투스 브란즈마(Titus Brandsma) 신부의 강직한 삶은, 진실이 위협을 받는 암울한 사회현상에서도 ‘진실과 정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언론매체를 통해 언론인의 참된 정체성과 사명’을 자신의 목숨으로 지켜냈기에 ‘언론인의 초상(肖像), 불멸의 영혼’으로 신선한 충격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신의 나라는 씨앗을 팔지 열매를 팔지 않는다.”라는『탈무드』의 일깨움은 짐짓 자아 인식의 소중함과 애씀의 땀 흘림에 관한 소중한 삶의 일깨움인 연유로, 닫힌 세계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정진해야 한다. 까닭에 이 시대의 우리 또한 ‘높은 자유와 지성, 진정한 세계의 성숙한 문화시민으로서의 세계고(世界苦)를 함께 절감하되’ 건강하고 생산적인 비판 정신도 올곧게 수긍할 일이다. 또 한편 이처럼 삶의 공간에서 조금은 여유롭게 서로를 반조(返照)하되 존엄한 민족의 혼(魂)을 일깨워 ‘듣고 말하되 집착(執着)하지 말라.’는 일상의 경계도 스스럼없이 수락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21세기 문화의 지역구심주의의 시간대에서 그린 리프(Greenleaf)가 지적하였듯 ‘리더를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하인(servant)으로 생각하고, 구성원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아 명령과 통제로 일관하는 자기중심적 리더가 아닌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개방적인 가치관을 지닌 진정한 리더의 행태로’ 겸양지덕(謙讓之德)을 갖춘 섬기는 자의 자세로 상생(相生)을 위한 온전한 서번트 리더십(servant-leadership)으로 불확실한 역겨움도 말끔 씻어낼 일이다. 모쪼록 불확실한 현실 상황에서도 동서양을 융합하는 가장 이상적인 르네상스의 지평을 열어 낡고 그릇된 고정관념을 청산하는 극명한 삶의 교시를 대륙의 심장 깊이 간직할 점이다.

 

출처 : 문화앤피플(https://www.cn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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