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법보단경언해 연구
김 무봉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Ⅰ. 서 론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1)는 당나라 시대에 在世했던 禪宗의 6대 조사 惠能禪師(A.D. 638-713)의 어록인 한문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의 본문을 적절히 분단하여 정음으로 口訣을 달고, 번역 간행한 3권 3책의 불경언해서이다.
한문본 <육조법보단경>은 혜능선사가 韶州의 曹溪山 大梵寺에서 설법한 法門을 門人이 集錄하여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오늘날 10여 종의 異本이 전하는데 最古本은 돈황 석굴 발굴본이다.3) 흔히 敦煌本으로 불리는 이 책은 천여 년 동안 석굴에 비장되어 있다가 20세기에 발굴․소개되었기 때문에 뒷사람들의 첨삭을 면할 수 있어서 육조대사 당대의 가르침을 가장 잘 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내제는 「南宗頓敎 最上大乘摩訶般若波羅蜜經 六祖慧能大師 於韶州大梵寺 施法壇經一卷」이며, 권말에는 「南宗頓敎 最上大乘壇經法一卷」이라는 권미제가 있다. 이 내제와 권미제로 책의 성격, 설법자, 설법 장소 등이 어느 정도 파악된다.
ꡔ육조법보단경ꡕ은 이본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른데, 갖은 이름으로는 대체로 ꡔ육조대사법보단경ꡕ, ꡔ육조선사법보단경ꡕ, ꡔ육조법보단경ꡕ 등으로 부른다. 줄인 이름은 ꡔ육조단경ꡕ, ꡔ법보단경ꡕ, ꡔ단경ꡕ 등이다. 이 논의의 대상인 언해본 ꡔ육조법보단경ꡕ 상권(원간본)의 맨 앞 ‘德異序’에는 ꡔ六祖法寶壇經ꡕ, 복각본인 하권의 권말(85장 앞면)에는 ꡔ六祖禪師法寶壇經ꡕ, 판심서명은 ꡔ壇經ꡕ이라 되어 있다.4)
ꡔ육조법보단경ꡕ은 선종의 宗旨的 核心을 담고 있어서 조계 선종을 표방해 온 한국 불교에서도 널리 유통되었던 듯, 고려시대인 13세기 초에 간행된 修禪社本(1207年刊. 知訥의 跋 첨기) 이래 수차례에 걸쳐 印刊된 책과 기록이 전한다.
수선사본 이후에는 元나라 승려 蒙山 德異5)에 의해 교정․찬술되어(1290) 고려에 전래된 후(1298), 이를 바탕으로 고려의 慧鑑國師 萬恒(1249-1319)이 간행한(1300) 이른바 ‘덕이본’이 萬恒의 찬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重印된 듯 오늘날 전하는 한문본 ꡔ단경ꡕ의 대부분은 ‘덕이본’이다.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도 덕이본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현전하는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 중에는 간행과 관련된 기록을 가진 문헌이 없어서 간행 경위 전반에 대해 소상히 알기가 어렵다. 다만 같은 해에 간행된 ꡔ진언권공․삼단시식문언해ꡕ6)의 권말에 붙어 있는 발문의 내용 중 대부분이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에 관련된 것이어서, 이 발문을 통해 언해본 간행의 전반적인 경위를 짐작할 수 있다.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가 간행되던 당시에는 동일한 발문을 같은 시기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도 사용한 예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ꡔ시식권공언해ꡕ에 있는 발문과 똑같은 발문이 지금은 원간본이 전하지 않는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 하권의 말미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7) 어떻든 우리는 ꡔ시식권공언해ꡕ의 발문을 통해 언해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의 간행 관여자, 발행 부수, 간행 시기, 편찬자 등 간행과 관련된 제반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발문에 의하면 언해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은 弘治 九年(연산군 2년, 1496) 五月에 발문을 쓴 승려8)가 인수대비의 명을 받아 이른바 ‘印經木活字’9)로 300부를 간행하여 나누어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ꡔ육조법보단경ꡕ의 언해본은 상․중․하 3권 3책으로 간행되었으나 오랫동안 하권의 출현이 없어서 그 전모를 알기가 어려웠고, 이로 인해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8년 남권희 교수의 발굴로 하권 1책이 학계에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현전하는 상․중권과 같은 계통의 것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복각된 重刊本으로 앞에서 말한 발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비록 覆刻本이어서 간행과 관련된 기록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이 하권의 출현으로 우리는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 3권 전체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소중한 문화유산의 발굴이라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이 방면 연구의 진일보를 위한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해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인경목활자로 조성된 15세기 마지막 불전언해서임이 드러났고, 편찬은 당대의 고승인 ‘學祖’에 의해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10) 그리고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국어사적 고찰도 웬만큼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11) 이 논의는 이러한 선행연구의 토대 위에서 한문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의 성격, 언해본의 간행 경위 및 서지 사항, 그리고 국어학적 특징을 전반적이고도 깊이 있게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Ⅱ. 한문본 ꡔ육조법보단경ꡕ
ꡔ육조법보단경ꡕ은 禪宗의 6대 조사 惠能禪師가 門人들에게 설법했던 法門을 그의 門下 제자인 法海가 集錄한 것이다.12) ‘法寶’는 佛陀의 진리를 이르고, ‘經典’은 불타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혜능선사의 壇語13)를 ꡔ법보단경ꡕ이라 부르는 데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14) 오히려 ‘법어집’, 또는 ‘어록’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확한 명칭일 것이다. 게다가 이 경전의 찬술이 중국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굳이 성격을 밝히자면 僞經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록을 오랫동안 ꡔ법보단경ꡕ이라 부르고 받들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 어록에 실려 전하는 혜능선사의 가르침이 중국 불교 선종의 근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곧 선사가 천명한 남종 돈교의 禪旨가 원돈교인 ꡔ最上乘般若波羅蜜經ꡕ의 뜻과 다름이 없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15)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이 어록에 담긴 혜능선사의 자서전적 일대기와 講說한 禪의 要諦가 그 내용으로 인해 한국․중국․일본 등지에서 경전과 같은 존숭을 받았고, 이러한 선종의 진리를 후인들이 높이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러 왔던 듯하다. 이는 ‘惠能禪師’를 ‘聖位의 祖師’로 받들고, ꡔ법보단경ꡕ을 ‘南宗 頓敎의 宗旨를 설한 聖典’으로 예우하는 일단을 보인 것이다.16)
ꡔ육조법보단경ꡕ의 요체는 ‘無相戒’ 와 ‘摩訶般若波羅蜜法’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마음을 찾아 밝힌 自性定, 自性慧와 그 수행법으로 생각을 여읜 無念을 宗으로 삼고, 일체의 현상을 초월한 無相으로 體를 삼으며, 좋고 나쁜 데 집착하지 않는 無住로 根本을 삼는다.”17)는 뜻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르침이 선종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까닭에 지금까지 ꡔ육조법보단경ꡕ이 선종의 최고 경전으로 존중되고, 널리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18)
ꡔ육조법보단경ꡕ은 最古本인 敦煌本을 비롯하여 10여 종의 異本이 현전한다. 하지만 크게는 敦煌本 계통, 惠昕本 계통, 契崇本 계통으로 나뉜다. 각 이본들은 큰 요체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나 전승의 계보에 따라 달라진 듯 품의 분단이나 표현 방법, 세부 내용 등에서는 다소의 다름이 보인다.
이본들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19)
1) 敦煌本
현전 최고본이다. 8세기 중엽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내제는 앞에서 적은 대로 ꡔ남종돈교 최상대승마하반야바라밀경 육조혜능대사 어소주대범사 시법단경일권ꡕ이라 되어 있어서 ꡔ단경ꡕ의 성격과 설법자, 설법 장소 등을 알게 해 준다. 이런 제명은 돈황본에만 있다. ꡔ단경ꡕ의 初期 형태를 충실하게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제 옆에 나란히 ꡔ兼受無相戒 弘法弟子 法海集記ꡕ라 하여 집록자의 이름이 부기되어 있는 점도 마찬가지다. 돈황본을 계승한 같은 계통의 이본 수종이 전한다.
2) 惠昕本
원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고 興聖寺本에 붙어 있는 혜흔의 서문에 의해 책의 간행지 및 간행 연대를 알 수 있다. 중국 宋나라 乾德 5년(967) 혜흔이 廣西省 羅秀山 思迎塔院에서 간행한 것이다. ꡔ단경ꡕ 저본을 두 권으로 나누고 내용을 11문으로 분단하여 찬술한 듯하다. 항목을 나눈 대강은 대승사본과 흥성사본으로 이어진다.
2-1) 興聖寺本
일본 경도의 임제종 사찰인 興聖寺에 전해져 있는 일본 最古의 五山版本이다. 표제 및 내제와 권미제가 모두 ꡔ육조단경ꡕ이다. 책의 말미에 法海-志道-彼岸-悟眞-圓會로 이어지는 ꡔ단경ꡕ 전수의 계보가 적혀 있다.
2-2) 大乘寺本
일본 石川縣 金澤市의 조동종 사찰인 大乘寺에 소장된 판본으로 ꡔ道元書大乘本ꡕ이라고도 한다. 표제는 ꡔ韶州曹溪山六祖師壇經ꡕ이다. 권말에 ‘道元書’라 적힌 것으로 보아 ‘永平道元禪師’ 계열 보관본인 듯하다. 혜흔본 계통이지만 ‘서천조통설’ 등에 관해서는 흥성사본과 달리 서천 28조설을 취하고 있다.
3) 契崇本
德異本과 宗寶本의 모본이 되는 판본이나 원본은 전하지 않는 듯하다. 송나라 인종 때의 이부시랑 郞簡의 ꡔ육조법보기서ꡕ(1056)에 의해 알려진 판본이다. 당시의 ꡔ단경ꡕ이 첨삭이 심해서 ꡔ단경찬ꡕ을 지은 契崇(1007-1072)에게 정정을 의뢰하니 契崇이 2년 만에 ꡔ曹溪古本ꡕ을 얻어 이를 교정하여 3권으로 간행한 책이다.
3-1) 德異本
고려조 이후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통되었다. 원나라의 古筠比丘 德異에 의해 至元 27년(1290) 교정된 판본이다. 전체를 10장으로 나누었다. 내제는 ꡔ六祖大師法寶壇經ꡕ이고, 권미제는 ꡔ六祖禪師法寶壇經ꡕ이다. 책의 맨 앞에 德異의 序文이 있고, 이어서 法海의 略序가 나온다. 고려 충숙왕 3년(延祐 3년) 刊本이 많이 유통되어 흔히 ‘高麗延祐丙辰本’이라고도 부른다. 앞에서 말한 대로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의 저본이다.
3-2) 宗寶本
덕이본과 같은 契崇本 계통이다. 원나라 至元 28년(1291) 南海風旛報恩光孝寺의 宗寶에 의해 편찬되었다. 표제, 내제, 권미제가 모두 ꡔ六祖大師法寶壇經ꡕ이다. 10장 1권이지만 장의 이름과 편제가 덕이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위의 여러 판본 중 언해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의 저본인 덕이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悟法傳衣 第一 [법을 깨닫고 법의를 받다.]
釋功德淨土 第二 [공덕과 정토를 밝히다(풀어 말하다).]
定慧一體 第三 [定과 慧는 일체임을 밝히다.]
敎授坐禪 第四 [좌선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다.]
傳香懺悔 第五 [오분향과 참회법을 전하다.]
參請機緣 第六 [제자들의 참청한 기연을 적다.]
南頓北漸 第七 [남돈과 북점의 같고 다른 점을 밝히다.]
唐朝徵詔 第八 [당조에서 초청하다.]
法門對示 第九 [법문을 對로 보이다.]
付囑流通 第十 [유통을 부촉하다.]
Ⅲ. 언해본 ꡔ육조법보단경ꡕ
1. 간행 경위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연산군 2년(弘治九年, 1496) 5월에 仁粹大王大妃의 명을 받은 승려에 의해 이른바 ‘印經木活字’로 간행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같은 때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ꡔ시식권공언해ꡕ의 권말 跋文에 의해 확인된다.20) 한편 발문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현전하는 문헌과 그 내용에 의해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모두 3권 3책으로 간행된 불전언해서임을 알 수 있다. ꡔ시식권공언해ꡕ 발문의 내용은 대부분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와 관련된 것이고, 정작 ꡔ시식권공언해ꡕ에 대한 내용은 2行 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ꡔ시식권공언해ꡕ와 직접 관련된 내용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이 논의의 맨 뒤에 원문 전체를 그대로 옮기고, 김갑기 교수의 번역문을 실었다. 同學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21)
…若六祖大鑑禪師 言簡理豊 祖席中卓然傑出 故古人稱語錄 爲經者 良有以也 我仁粹大王大妃殿下… 命僧以國語翻譯六祖壇經 刊造木字 印出三百件 頒施當世… 且施食勸供 …詳校得正 印出四百件 頒施中外焉 弘治九年夏 五月日 跋
위와 같이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시식권공언해>를 집필하고 편찬했던 바로 그 승려에 의해 300件22)으로 印刊된 책임을 알 수 있다. 발문의 간기에 나온 대로 인출 시기는 연산군 2년(1496)이다. 그런데 문제는 발문 작성자, 곧 책 편찬자가 明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인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重刊되어 나온 刊經都監 後刷本 책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口訣 작성자와 譯者 記名行의 삭제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바로 당시의 시대 상황 때문으로 생각된다. 특히 연산군 2년은 儒臣들의 斥佛 분위기가 가장 고조된 때이다.23)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왕대비인 인수왕후 이외의 간행 관련자들의 노출을 가능한 한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한 듯하다. 이런 이유로 발문 작성자가 빠져 있으나 훈민정음 창제 이후 불전의 언해, 곧 간경사업에 관여했던 승려 중 연산군 당시까지 생존하여 仁粹大王大妃, 貞顯王大妃와 함께 ‘인경목활자’의 조성 등 간경불사 활동을 했던 승려는 ‘學祖’뿐이다. 실제로 ‘학조’는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 간행 바로 전 해인 연산군 1년에는 先王인 成宗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대비가 內帑을 내어 만든 ꡔ선종영가집언해ꡕ, ꡔ금강경언해ꡕ, ꡔ반야심경언해ꡕ 등 刊經都監 후쇄본 인출의 간경불사를 주도하고 ‘印經木活字’로 발문을 쓴 적이 있다. 이로 미루어 ꡔ시식권공언해ꡕ,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의 발문을 작성하고 두 책을 편찬한 승려는 ‘학조’일 수밖에 없다.24)
앞에서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의 활자를 ‘인경목활자’라고 했는데 이 용어는 천혜봉(1965)에서 처음 사용한 이래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이 활자로 만들어진 문헌 중 현전하는 것은 한문본인 ꡔ天地冥陽水陸雜文ꡕ(日本 天理大學 소장)과 언해본인 ꡔ시식권공ꡕ과 ꡔ육조법보단경ꡕ 등이다. 한문본과 언해본의 간행이 모두 같은 해인데, 간기에 의하면 한문본은 3월, 언해본은 5월에 간행되어 한문본이 2개월 정도 앞선다. 이를 안병희(1978)에서는 언해본을 조성하기 위한 한글 목활자의 제작과 언해에 소요된 시간 때문으로 해석한 바 있다.25) ‘인경목활자본’은 活字가 美麗하고 精巧하다. 인쇄된 지면의 상태를 보면 묵색의 착색 정도가 비교적 양호하여 읽기에도 불편함이 덜하다. 곧 可讀性이 높다. 다만 같은 글자라도 자획의 크기가 서로 다르고, 인쇄된 묵색의 濃淡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네 귀퉁이[四隅]에 空隙이 있어서 활자본임을 짐작하게 하고, 칼로 깎아낸 듯한 흔적이 목활자본임을 확인시켜 준다.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모두 3권 3책으로 간행되었으나 최근까지 상권과 중권 두 책만이 전해져서 그 전모를 알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다행스럽게도 1998년 남권희 교수에 의해 하권 1책이 발굴․소개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원간본 간행 후 55년이 지난 1551년(嘉靖30년, 명종6년)에 원간본을 판밑으로 하여 뒤집어 새긴 覆刻本인 데다 기대했던 발문이 없었다. 이 점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비록 초간의 발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 번각본이라고 하더라도, 방점 표기 등 일부 정밀을 요하는 표기를 제외하면 언어 사실은 원간본 그대로여서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2000년에는 남권희 교수가 해제를 쓰고, 김동소 교수가 국어학적인 고찰을 하여 영인본을 내놓았다.26) 이로써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의 전면적인 연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2. 서지 사항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남아 있는 책이 드문 편이다. 특히 하권은 앞에서 언급한 복각본 1권만이 전해질 뿐이다. 한문본의 조성과 유통이 매우 활발했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해본의 印刊과 유통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우리가 텍스트로 하고 있는 ‘인경목활자본’ 외에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필사본 1권이 더 있을 뿐 다른 책은 보기 어렵다. 이 책은 1844년에 60장 분량으로 간행되었고, 제명은 「언뉵조대법보단경」이다. 현재는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전하는 책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7)
[원간본]
권상: 서울대학교 규장각 일사문고(고귀 294.34-H995u). 103장 뒷면 낙장.
산기문고, 성암고서 박물관, 호암미술관, 고 이동림님 소장.
권중: 산기문고, 호암미술관, 이승욱님, 고 이동림님 소장.
[중간본]
권중(복각본): 대구 개인 소장
권하(복각본): 대구 개인 소장
이미 앞에서 논의한 대로 원간본인 상권과 중권은 ꡔ시식권공언해ꡕ에 첨부되어 있는 발문을 통해 간행과 관련된 사항을 알 수 있고, 중간본(복각본)인 하권은 책 뒤에 있는 刊記에 重刊 간행 시기, 간행지, 刻手를 비롯한 간행 관여자 등이 드러난다. 하권의 마지막 면인 91장 뒷면에 ‘嘉靖三十年 辛亥 暮春日 全州府地 淸□山 圓岩寺開板’ 이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 책이 명종 6년(1551)에 전주부 원암사에서 복각된 책이라는 사실을 전해준다.28)
위의 현전본 중 영인 ․ 공개되어 연구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책은 아래와 같다.
권상(원간본, 일사문고본):
국어학회편 자료선집 Ⅱ, 국어학회편, 일조각(1972).
해제--안병희, 영인내용--法海略序 9-24장, 본문 1-30장.
홍문각(1979), 영인내용--전체, 해제--없음.
권중(원간본, 이겸로 소장본):
인하대 인문과학연구소, 인하대 출판부(1976).
해제--남광우, 영인내용--전체.
홍문각(1992), 해제--홍윤표, 영인내용--전체.
권하(중간본/복각본, 개인소장본):
홍문각(2000), 서지 사항--남권희
국어학적 연구--김동소, 영인내용--전체.
상․중․하 3권의 형태서지는 다음과 같다.29) 상․중권은 고 이동림님 소장본을 대상으로 하고, 하권은 현전 유일본인 복각본을 대상으로 한다.
상․중권 | 책 크기 | 31.3㎝ × 20.6㎝ |
제명 | 상권은 서외제와 내제 없이 첫 장의 제1행에 ‘육조법보단경서’라고 되어 있고, 중권은 표지 다음의 첫장 1행에 바로 章名인 ‘정혜일체 제3’이 나온다. | |
판심제 | 단경(상/중) | |
반곽 | 24.2㎝ × 15㎝ | |
판식 | 사주단변, 활자본이어서 사우공극(四隅空隙)이 있다. | |
판심 | 상하 대흑구, 상하 내향흑어미. | |
행관 | 유계8행 17자, 언해문: 16자, 협주: 작은 글자 쌍행 16자, 정음. | |
구결 | 방점 없이 작은 글자 쌍행. | |
하권 | 책 크기 | 26.5㎝ × 20㎝ |
제명 | 소장자가 최근에 개장한 뒤 서외제를 ꡔ壇經下ꡕ라 하고 오른쪽에 묵서로 “가정30년 신해”라 써 놓았다. | |
판심제 | 단경 하 | |
반곽 | 24㎝ × 16㎝ | |
판식 | 사주단변(복각본이어서 四隅에 空隙은 없다). | |
판심 | 상하 대흑구, 상하 내향흑어미. | |
행관 | 유계 8행 17자, 언해문 : 16자, 협주 : 작은 글자 쌍행 16자, 정음. | |
구결 | 방점 없이 작은 글자 쌍행(계선이 있으나 뚜렷하지 않다). |
언해 양식은 경 본문을 분단하여 정음 작은 글자 두 줄로 구결을 달고 언해문을 두었다. 언해문은 한 글자 공란을 두고 시작했다. 원문의 정음 구결은 오른쪽 줄 아래부터 작은 글자 두 줄로 적었으나 방점은 두지 않았다. 언해문의 한자에는 오른쪽 아래에 한자와 같은 크기의 글자로 독음을 달고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점은 한자의 注音이 당시까지 관판본 문헌에 주로 쓰이던 이른바 동국정운음이 아니고, 당시에 실제 발음되던 현실 한자음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간행 이전에도 단편적으로 현실 한자음이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 문헌에서는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언해문의 중간에 설명이 필요한 한자어나 불교용어가 나올 경우에는 작은 글자 쌍행으로 협주를 두되, 아무런 표시가 없이 삽입했다. 해설 부분과 하권의 守塔沙門 令韜의 후기도 작은 글자 쌍행으로 되어 있다.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 상․중․하 3권에 실려 있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상권: 서문 24장 (1ㄱ-24ㄴ)
오법전의 제1(悟法傳衣 第一) 83장 (1ㄱ-83ㄴ2행)
석공덕정토 제2(釋功德淨土 第二) 20장 (83ㄴ3행-103ㄱ, 103ㄴ 훼손)
중권: 정혜일체 제3(定慧一體 第三) 13장 (1ㄱ-13ㄴ6행)
교수좌선 제4(敎授坐禪 第四) 5장 (13ㄴ7행-18ㄴ6행)
전향참회 제5(傳香懺悔 第五) 30장 (18ㄴ7행-48ㄴ3행)
참청기연 제6(參請機緣 第六) 64장 (48ㄴ4행-111ㄱ, 이하 한두 장 낙장)
하권: 남돈북점 제7(南頓北漸 第七) 30장 (1ㄱ-30ㄴ4행)
당조징조 제8(唐朝徵詔 第八) 11장 (30ㄴ5행-40ㄴ5행)
법문대시 제9(法門對示 第九) 12장 (40ㄴ6행-52ㄱ7행)
부촉유통 제10(付囑流通 第十) 34장 (52ㄱ8행-85ㄱ, 85ㄴ/ 1면 공백)
후기(後記) 6장 (86ㄱ-91ㄴ3행)
간기(刊記) 및 각수질(刻手秩) 5행 (91ㄴ4행-91ㄴ8행)
Ⅳ. 어학적 고찰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훈민정음이 창제․반포되고 정확히 50년 후에 만들어진 불전언해서이다. 이 책은 인수대왕대비의 주도 아래 왕실의 內帑으로 간행되어서 관판본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반세기라는 시간의 경과가 반영된 듯, 정음 창제 초기에 간행된 관판 언해본들30)과 비교하면 표기 등 몇몇 예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음운 변화 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표기 원칙 같은 어떤 인위적인 기준의 변화가 더 강하게 작용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선 초기 문헌에 등장하는 ‘ㅸ, ㆆ’ 등의 문자가 쓰이지 않고, ꡔ원각경언해ꡕ(1465년) 이후 간행된 다른 정음문헌31)에서처럼 各自竝書 표기가 이 책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실제로는 ꡔ원각경언해ꡕ 이후에 간행된 문헌인 ꡔ내훈언해ꡕ(1465년), ꡔ두시언해ꡕ(1481년), ꡔ불정심다라니경언해ꡕ(1485년), ꡔ영험약초ꡕ(1485년) 등의 책과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 이후에 간행된 책인 ꡔ개간 법화경언해ꡕ(1500년), ꡔ속삼강행실도ꡕ(1514년), ꡔ번역노걸대ꡕ․ꡔ번역박통사ꡕ(1517년 이전) 등의 문헌에는 各自竝書 중 ‘ㅆ’이 보이는데, 1496년에 간행된 책인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에는 예외 없이 ‘ㅅ’으로만 나타난다. 合用竝書는 앞 시대와 같이 쓰였다.
종성은 8종성에 의한 표기가 대체로 지켜졌으나 ‘ㅿ’이 쓰인 예가 있고, 체언의 음절말 자음 중 유성자음 ‘ㄴ, ㄹ, ㅁ, ᅌ’은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통합될 때 ꡔ월인천강지곡ꡕ(1447년)에서처럼 일부에서 분철한 예가 나타난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언해문에 쓰인 한자의 注音이 바뀐 점이다. 일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32) 정음 창제 후 관판 문헌에서 일관되게 지켜지던, 개신음인 동국정운에 근거한 한자음 표기가 폐기되고, 그 당시에 실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현실 한자음에 의한 주음 표기가 전면적으로, 그리고 정연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정음 초기 문헌에서 보이던 동국정운 한자음 주음 표기원칙에서 현실 한자음 주음 표기로의 일대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 책은 ‘法語’를 언해한 불전언해서이다. 훈민정음 초기에 간행된 대부분의 불전언해서들은 단조로운 문장 구성과 제한된 어휘 사용을 보이는데, 이 책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다만 法門을 集錄한 ‘法語’라는 문헌의 성격 때문에 이 책만이 가지는 독특한 문장 구성에 의한 문체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이러한 문체적 특성은 底本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이 점 다른 불전언해본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 언해본의 문장 구성은 대부분 惠能이 깨우침과 관련하여 주변 사람들이나 門人들에게 묻고 대답하는 문답 형식과 說話者(집록자, 또는 책 편찬자)가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을 가하는 해설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묻는 이는 깨달음을 얻고, 배우기 위해 최대한 예의를 갖춘 공손한 표현을 할 수밖에 없어서 겸양법 선어말어미 ‘--’의 출현이 빈번하다. 또 話者인 惠能이 문인들을 부르고 설법하는 내용이 많아서 ‘善知識아 ~’ 云云의 호칭과 평서형의 설명법 어미 ‘-니라/리라’로 끝을 맺는 종결형식의 문장이 주로 쓰였다. 그런가 하면 설화자가 주어 명사인 혜능을 높이는 표현으로 인해 존경법 선어말어미 ‘-으시/으샤-’의 쓰임이 잦고, 역으로 혜능이 청자일 경우 듣는 이를 높이는 공손법 선어말어미 ‘--’가 많이 쓰이는 등 대체로 경어법 문장 사용의 폭이 넓다. 또, 물음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설정한 듯한 문형인 ‘엇뎨 ~ -고/오’식의 묻고 그것에 답하는 구성으로 된 의문형 문장도 다수 보이는데, 이는 저본인 한문본 ꡔ육조법보단경ꡕ에서 ‘何 ~’로 되어 있는 문형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가 보이는 문체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장에서는 앞에서 열거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의 표기법, 음운 현상, 문장 구성, 어휘 등을 살필 것이다. 이 책의 언어 사실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는 남광우(1976), 김동소(2000ㄴ), 김양원(2000) 등이 있다. 남광우(1976)은 중권의 해제를 통해 서지 사항과 표기법 등 일부 언어 사실을 고찰한 것이다. 김동소(2000ㄴ)에서는 하권을 대상으로 하여 서지 사항, 표기법, 음운 현상, 어휘 등에 대해 정치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김양원(2000)은 상․중․하 3권을 대상으로 표기법 및 음운 현상을 폭넓게 살핀 것이다. 각각 이 책의 서지 사항, 표기법, 음운 현상 등에 대해 논의한 것인 바, 이 방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33)
1. ‘ㅸ’과 ‘ㆆ’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에는 ‘ㅸ’과 ‘ㆆ’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정음 초기 문헌에 보이던 ‘ㅸ’은 이 책에서 예외 없이 ‘ㅇ, 오, 우’로 바뀌었다. 자립형식이나 活用形 모두에서 마찬가지다. ‘ㆆ’은 ‘-ᇙ+전청자’ 표기가 쓰이지 않고, 동국정운 한자음의 폐기로 이 문헌에 쓰인 예가 없다.
(1) ㄱ. 역[礫] <하: 23ㄱ> / <능엄 5: 72ㄱ>34)
ㄴ. 두려이[圓] <중: 91ㄴ> / 두려 <월석 9: 21ㄱ>
ㄷ. -와 <상: 1ㄴ> / - <석보 9: 31ㄴ>
ㄹ. 더러운[汚] <중: 76ㄴ> / 더러 <월석 2: 59ㄴ>
‘ㅸ’은 ꡔ능엄경언해ꡕ(1462년) 등 刊經都監 간행 문헌부터 전면적으로 폐기되어 이후 문헌에서는 일부의 예외[ꡔ목우자수심결언해ꡕ(1467) 등]를 제외하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ꡔ몽산법어약록언해ꡕ(?1459)35)와 ꡔ능엄경언해ꡕ에 예외적으로 쓰였던 ‘’이 여기서는 ‘역’으로 실현되고, 이후에 간행된 문헌의 활용형에 단편적으로 쓰였던 ‘ㅸ’은 모두 ‘ㅇ, 오, 우’로 바뀌었다. ‘ㆆ’은 정음 초기 문헌에서부터 국어의 초성 표기에 쓰인 적이 없고 사이글자나 동명사어미 ‘-ㄹ’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ᇙ’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문헌에서는 ‘-ㄹ+전청자’형 표기로만 나타나서 ‘ㆆ’의 용례가 없다.
(2) ㄱ. -가 <상: 27ㄱ>
ㄴ. -ㄹ디어다 <상: 55ㄴ>
ㄷ. -ㄹ제 <상: 1ㄴ>
동명사어미 ‘-ㄹ’과 의존명사 ‘’가 통합된 ‘ㄹ’ 등은 ‘-ᇙ’ 같은 형태로 적은 적이 없이 정음 초기 문헌부터 ‘-ㄹ’로만 적혔는데, 이 책에서는 각자병서 폐기로 ‘-ㄹ’ 형으로 표기되어 있다.
(3) 그럴 <상: 64ㄴ>, 이실 <중: 13ㄱ>
2. 초성병서
이 책에는 各自竝書 표기가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각자병서 표기는 ꡔ원각경언해ꡕ(1465) 이래 폐지되었으나, ꡔ원각경언해ꡕ 이후에 간행된 일부 문헌과 ꡔ단경언해ꡕ 이후에 간행된 일부 문헌에 쓰인 예가 보인다. 그러나 이 문헌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合用竝書는 10가지(ㅺ, ㅼ, ㅽ, ㅻ; ㅳ, ㅄ, ㅶ, ㅷ; ㅴ, ㅵ) 중 2가지(ㅻ, ㅷ)가 보이지 않는다. <석보상절>에서 실현되었던 ‘ㅻ’(, 19:14ㄴ)은 이후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며, ‘ㅷ’은 이 문헌에 해당하는 어휘가 없어서 목록에 빈칸이 되었다.36)
1) 각자병서
ꡔ원각경언해ꡕ 전까지는 각자병서로 적혔으나 이 책에서 단일자로 바뀐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4) ㄱ. 말[言] <상: 12ㄴ>, 스니[書] <상: 26ㄴ>
ㄴ. 도혀[却] <중: 4ㄴ>, 드위혀[翻] <중: 89ㄴ>
ㄷ. 害가 <상: 27ㄱ>
홀딘댄 <상: 25ㄱ>, 마롤디어다 <상: 55ㄴ>
入定제 <중: 104ㄴ>
이실/그럴 <중: 13ㄱ>, 시라 <상: 3ㄱ>
각자병서는 정음 초기 문헌에는 8가지(ㄲ, ㄸ, ㅃ, ㅆ, ㅉ, ㆅ, ㆀ, ㅥ)가 나타나지만, 이 문헌에는 ‘ㅆ, ㆅ, ㄲ, ㄸ, ㅉ’이 쓰일 수 있는 어휘나 환경에서 모두 단일자형으로 실현되었다. (4ㄱ)은 정음 초기 문헌에서 각각 ‘말’과 ‘쓰니’로, (4ㄴ)은 각각 ‘도’와 ‘드위’로 표기되었었다. (4ㄷ)은 문헌에 따라 ‘-ᇙ가 ~ -ㄹ까’, ‘-ᇙ딘댄 ~ -ㄹ띤댄’, ‘-ᇙ디어다 ~ -ㄹ띠어다’, ‘-ᇙ제 ~ -ㄹ쩨’로 실현되고, ‘-ㄹ’는 ‘-ㄹ’로만 나타나던 형태이다.
2) 합용병서
이 문헌에는 합용병서의 사용이 활발한 편이다. 그 목록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5) <ㅺ> 거리[滯] <상: 75ㄱ>, 리[尾] <하: 28ㄴ>
<ㅼ> [又] <상: 3ㄴ>, 해[地] <중: 54ㄴ>
<ㅽ> 리[速] <상: 31ㄴ>, 얼굴[形骸] <하: 65ㄴ>
<ㅻ> (없음)
<ㅳ> 러듀믈[墮] <상: 23ㄱ>, 들[義] <중: 50ㄱ>, [茅] <하: 29ㄱ>
<ㅄ> 디[用] <상: 12ㄱ>, [種] <상: 30ㄱ>, [米] <상: 27ㄴ>
<ㅶ> [隻] <상: 33ㄱ>, 논디라[薰] <중: 23ㄱ>
<ㅷ> (없음)
<ㅴ> [時] <상: 58ㄴ>, 어[貫] <하: 82ㄴ>
<ㅵ> 라[刺] <하: 15ㄱ>
위의 예에서 우리는 초성 합용병서의 경우 정음 초기 문헌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 중성표기
이 책에는 <훈민정음> 해례 중성해에 제시된 中聲字가 대부분 쓰였으나, 중성 29字 중에서 ‘ㆉ, ㆇ, ㆊ, ㆈ, ㆋ’ 등 5자는 용례가 없다. 이 중 ‘ㆉ([牛] 등)’의 경우는 이 문헌에 해당 어휘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고, 그 외는 주로 한자음 표기에 사용되었던 중성자들이다. 특히 ‘ㆊ, ㆋ’는 16세기 초에 간행된 <훈몽자회>(1527년)의 한자음에 실례가 나타나는 점으로 미루어, 이 책에는 해당 한자가 없기 때문에 빈칸으로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37) ‘ㆌ’는 이 문헌에서 한자음 표기에만 사용되었다.
(6) 聚:落락 <상: 64ㄱ>, 宗趣: <중: 58ㄴ>, 取:次․ <하: 25ㄱ>
4. 종성표기
종성표기는 훈민정음 종성해에 규정한 ‘ㄱ, ᅌ, ㄷ, ㄴ, ㅂ, ㅁ, ㅅ, ㄹ’의 8종성과 ‘ㅿ’이 보인다. 초기 문헌에서 ‘유성후두마찰음’ ‘ㅇ[ɦ]’ 앞에서 ‘ㅅ’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ㅿ’은 ‘워’에서 보인다. 이러한 9종성 외에 합용병서의 ‘ᇇ(←ᆬ), ᆱ, ᆲ, ᆲ(←ᆵ)’이 보이고, 사이시옷과 통합 표기된 ‘ᆳ, ᇝ’이 나타난다.
(7) ㄱ. 맛나[逢/遇] <상: 31ㄴ>, 긋디[斷] <중: 3ㄱ>, 븓디[關] <중: 50ㄱ>
ㄴ. 워[獦獠] <상: 7ㄴ>, [邊]업스니 <중: 27ㄴ>
cf. [邊]업스시니 <용가: 125>
ㄷ. 고[座] <하: 5ㄴ>; 옮디[遷] <하: 37ㄱ>; 여듧[八] <상 : 9ㄴ>, 앏[前]
<중: 51ㄴ>
ㄹ. 믌결[波浪] <상: 58ㄱ>; 간[暫] <중: 49ㄴ>, 장[盡心] <하: 3
ㄴ>
5. 한자음 표기
ꡔ단경언해ꡕ는 동국정운 한자음의 사용을 지양하고 당시에 실제 사용했던 현실 한자음, 이른바 전통 한자음에 바탕을 둔 주음방식을 전면적으로 취한 최초의 문헌이다. 김동소(2000ㄴ: 7-14)에서는 이를 ‘전통한자음’이라 규정하고,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전통 한자음 변화 유형을 8가지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한국어 자체의 음운 변화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김양원(2000: 26-28)에서는 ꡔ단경언해ꡕ 상․중․하 3권 모두의 한자를 찾아 이를 김동소(2000ㄴ: 10-11)의 분류기준에 따라 정리하였다. 자세한 논의는 두 선행 연구에 미루고 여기서는 평음의 유기음화와 관련된 한자어 및 불교용어 독음의 표기 변화에 대해서만 논의하고자 한다.
(8) ㄱ. 讚:잔嘆:탄 <서: 19ㄱ> / 讚:찬야 <중: 53ㄴ>
ㄴ. 讖:記․긔 <서: 14ㄴ> / 讖:記․긔 <중: 97ㄱ>
<8ㄱ>은 상․ 중․ 하 전권에서 모두 8회 출현하는데 ‘잔’으로 주음된 곳이 7회, ‘찬’으로 주음된 곳이 1회이다. 이로 미루어 이 시기에 유기음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8ㄴ>의 용례는 많지 않지만 역시 일부 유기음화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김동소, 2000ㄴ: 12-13)참조.
불교용어의 한자음은 동국정운음이라고 하더라도 몇 차례 변개가 있었는데, 그 변화의 모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9) [解脫]의 [解]
ㄱ. ․ <석보 23: 9ㄴ>
ㄴ. :갱 <월석 17: 48ㄱ>, 활자본 <능엄 6: 22ㄱ>, 목판본 <능엄 6: 25ㄴ>
ㄷ. : <법화 6 : 8ㄴ>, <금강 : 131ㄱ>
ㄹ. :하 <단경 상: 43ㄱ>, cf 涅․녈槃반解: <중: 93ㄱ>, 見:견解: <상:
19ㄴ>
(10) [般若]의 [般]
ㄱ. 반 <석보 23: 15ㄱ>, 목판본 <능엄 1: 20ㄱ>
ㄴ. ․ <법화 5: 188ㄴ>, <금강서: 9ㄱ>
ㄷ. 반 <단경 상: 10ㄴ>, ․반 <중: 31ㄱ>
이러한 변개는 梵語로 된 陀羅尼의 유입과 불경언해 작업의 활성화 등으로 梵語나 巴里語에서 音借한 불교용어나 한자로 조어한 용어의 한자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의 결과, 보다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고자 노력한 데서 온 것으로 보이나, 이 문헌에 이르러서는 현실의 독음을 수용한 결과로 짐작된다.38)
오늘날 쓰고 있는 불교용어로서 일반 한자어의 독음과 다르게 실현되는 ‘波, 婆, 便, 布’ 등이 현실 한자음이 주음된 최초의 문헌인 이 책에서 이미 일반 한자음과 다르게 주음되어 있어서 주목을 하게 된다. 불교용어의 한자음이 일반 한자음과 다르게 실현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이겠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 주는 문헌으로서 이 책의 한자음 표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1) ㄱ. 波바羅라蜜․밀 <상: 57ㄴ> / 波파浪:랑 <상: 97ㄱ>
ㄴ. 婆바舍:샤斯多다 <하: 71ㄱ> / 婆파 <훈몽 상: 31ㄱ>
ㄷ. 方便․변 <하: 23ㄱ> / 便편․히 <서: 24ㄱ>
ㄹ. 布:보施․시 <상: 85ㄴ> / 流류布포 <상: 30ㄱ>
<11ㄴ> ‘婆’의 일반 한자음은 이 책에 용례가 없어서 29년 후에 간행된 책인 <훈몽자회>(1527년)에서 가져왔다. <11ㄷ>은 오늘날의 한자음이 [방편]인 점으로 미루어 후에 유기음화하여 ‘편(便)’으로 된 듯하다.
6. 방점표기
ꡔ단경언해ꡕ의 방점표기는 일관성이 없다. 같은 문헌 안에서의 서로 다른 표기는 말할 것도 없고, 초기의 문헌과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김동소(2000ㄴ: 14-18)과 김양원(2000: 33-35)에서는 같은 문헌 안에서 보이는 차이와 앞 시기에 간행된 문헌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타나는 차이를 검증한 바 있다. 이 문헌에서의 방점표기는 어떤 원칙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혼란하다.
7. 사이글자
사이글자는 체언이 결합할 때 음성적 환경에 따라 체언 사이에 끼어드는 자음 글자인데, ꡔ용비어천가ꡕ와 ꡔ훈민정음언해ꡕ에는 각각 ‘ㄱ, ㄷ, ㅂ, ㅅ, ㅿ, ㆆ’과 ‘ㄱ, ㄷ, ㅂ, ㅸ, ㅅ, ㆆ’의 6자가 쓰였으나, <석보상절>에서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이후 문헌에서는 ‘ㅅ’이 주로 쓰였으나 간혹 ‘ㅅ’ 외에 다른 글자가 쓰인 적도 있다. 이 문헌에는 예외 없이 모두 ‘ㅅ’으로 나타난다.
(12) ㄱ. 믌결 <상: 58ㄱ>, 오날브터 <중: 32ㄱ>, 뎘지블 <하: 40ㄴ>
ㄴ, 中을브터 <상: 69ㄴ>, 간 <중: 49ㄴ>
8. 분철표기
15세기에 간행된 대부분의 정음문헌은 주된 표기 방식이 연철이었다. 다만 ꡔ월인천강지곡ꡕ에는 체언의 말음이 ‘ㄴ, ㄹ, ㅁ, ㅿ’ 등일 때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통합하면 분철 표기했다. 용언의 경우에는 어간 말음 ‘ㄴ, ㅁ’이 어미 ‘-아’와 만나면 분철 표기했다. 이 책에서는 체언의 말음이 ‘ㄴ, ㄹ, ㅁ, ᅌ’인 경우에만 조사와의 통합에서 일부 분철 표기한 예가 보인다.
(13) ㄱ. 자음 ‘ㄴ’ 뒤: 돈 <상: 3ㄴ>, 신을 <상: 27ㄱ>, 서너번이러라 <하:
88ㄴ>, 간이나 <중: 56ㄴ>
ㄴ. 자음 ‘ㄹ’ 뒤: 뎔이라 <서: 20ㄱ>
ㄷ. 자음 ‘ㅁ’ 뒤:
① 연철: 으로 <서: 3ㄴ>, 사을 <상: 68ㄴ>, 일훔은 <하: 14ㄴ>
② 분철: 미 <하: 74ㄴ>, 사미 <상: 16ㄴ>, 일후미 <하: 12ㄱ>
ㄹ. 자음 ‘ᅌ’ 뒤: 스이로소다 <상: 38ㄱ>, 이 <중: 108ㄱ>
예 (13ㄱ-ㄹ)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체언의 말음이 ‘ㅁ’인 경우에는 연철된 예와 분철된 예가 각각 절반 정도이다. 이 문헌에 체언의 말음이 무성자음이면서 분철한 특이 한 예가 하나 있는데, 하권의 ‘도을[賊]<87ㄱ>’이다. 이는 이 어휘가 한자어 ‘盜賊’에서 온 때문일 것이다.39)
9. 주격과 서술격 표기
이 문헌에서 주격조사는 선행체언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이, ㅣ, ∅’로 실현되었다. 서술격조사도 ‘이-, ㅣ-, ∅-’로 실현되어 초기의 문헌과 차이가 없다. 구결문과 언해문 모두에서 동일하다. 다만 다음의 경우는 예외이다.
(14) ㄱ. 一切般若智ㅣ 다 自性을브터 나논디라 <상: 55ㄱ>
(一切般若智ㅣ 皆從自性야) <상: 54ㄴ>
ㄴ. 곧 이 偈ㅣ 本性 보디 몯호 알오 <상: 22ㄱ>
(便知此偈ㅣ 未見本性고) <상: 21ㄱ>
여기서 주격조사 ‘ㅣ’는 ‘∅’로 실현되어야 하나 굳이 ‘ㅣ’를 적어 놓았다. 이는 앞문장과 뒷문장 사이에 아무런 표지가 없으면 자칫 해독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 배려로 보인다. 같은 음운론적 조건임에도 서술격의 ‘ㅣ’는 ‘∅’로 실현되었다. 서술격의 위치에서는 ‘∅’로 실현되어도 읽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서도 굳이 격 표지 ‘ㅣ’를 실행한 배려가 짐작이 간다.40)
(15) ㄱ. 곧 일후미 四智菩提니라 <중: 73ㄴ>
(卽名四智菩提니라) <중: 72ㄱ)
ㄴ. 곧 일후미 般若智니라 <상: 57ㄱ>
(卽名般若智니라) <상: 56ㄱ>
10. 모음조화
모음조화는 대체로 혼란한 모습을 보인다. 모음조화에 관한 한 정음 초기 문헌부터 혼란상을 보여 왔다. 이는 기저형의 실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김동소(2000ㄴ)에서는 하권을 대상으로 연결모음 ‘-으/-’, 목적격조사, 관형격조사, 부사격조사, 대조보조사, 선어말어미 ‘-오/우-’, 연결어미 ‘-어/아’, 관형사형어미 ‘-/는’ 등의 경우를 면밀히 살폈다. 비록 하권에 국한한 것이라고 해도 ꡔ단경언해ꡕ의 모음조화 양상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1. 문장 구성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다른 불전 언해본들에 비해 문장 유형이 다양한 편이다. 法語를 底本으로 하고 있는 이 문헌의 성격 때문에 나름의 독특한 문장 구성이 보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단조로운 문장 구성과 제한된 어휘 사용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여타의 불전언해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불전의 원문을 분단한 후 구결을 달아서 언해한 형식, 이른바 ‘對譯’ 형식의 번역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이 문헌이 보이는 문장 구성의 특징을 살피려고 한다.
(16) ㄱ. 大師ㅣ 니샤, “善知識아 다 조히 야 摩訶般若波羅蜜을 念라.”시고, 大師ㅣ 良久시고(良久 오래 시라), 다시 衆려 니샤, “善知識아 ~알리라.” <悟法傳衣 第一, 상: 2ㄴ>
ㄴ. 이 卷을 자바 字 무른대, 師ㅣ 니샤, “字 곧 아디 몯거니와 드란 곧 請야 무르라.” 이 닐오, “字 오히려 아디 몯거니 엇뎨 能히 들 알리오.” 師ㅣ 니샤, “諸佛妙理 文字애 븓디 아니니라.” <參請機緣 第六, 중: 49ㄴ>
<16>은 說法을 請한 것에 대해 답하거나 답하면서 다시 묻는 형식의 문장이다. 이 책의 문장은 대부분 이러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16ㄱ>은 혜능이 韶州의 韋刺史 일행에게 法門을 하는 내용이고, <16ㄴ>은 혜능이 한 비구니에게 행한 법문인데, 문답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중간에 설화자(집록자, 또는 편찬자)가 끼어들어 해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혜능이 문인을 부르는 “善知識아 ~ ”형 문장이 많고, 門人이 묻는 유형의 문장인 “엇뎨 ~ -오/고”식의 구성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저본의 의문문 구성 “何/豈/寧~”으로 되어 있는 문장을 번역한 때문이다.
(17) ㄱ. 秀ㅣ 호, ‘廊下 향야 서 뎌 和尙이 보시게 홈만 디 몯도다.’ 믄득 다가 ‘됴타’ 니거시든, 곧 나 저고 닐오, ‘이 秀의 作이다.’ 고… <悟法傳衣 第一, 상: 15ㄱ>
ㄴ. 祖ㅣ… 무르샤, “偈 이 네 지다? 아니다?” 秀ㅣ 오, “實로 이~간대로 求논디 아니다. 온… 보시니가? 아니가?” <悟法傳衣 第一, 상: 19ㄱ>
ㄷ. 達이 닐오, “… 엇뎨 宗趣 알리고?” 師ㅣ 니샤, “나~ 사겨 닐오리라.” <參請機緣 第六, 중: 58ㄱ>
(17) 역시 문답식 문형이다. (17ㄱ)은 神秀가 五祖弘忍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게송을 지어서 전할 방법을 생각하는 장면이고, (17ㄴ)은 弘忍과 神秀의 대화 부분이다. <17ㄷ>은 혜능과 門人 法達의 대화 부분이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단경언해>에는 의문문의 유형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의문문의 문답에 등장하는 청 ․ 화자에 따라 話階 等級이 달라져서 존경법의 ‘-으시/으샤-’, 겸양법의 ‘--’, 공손법의 ‘--’ 등 경어법 선어말어미의 출현이 매우 잦다.
종결형식 중에는 ‘-니라’나 ‘-리라’로 맺음을 하는 평서형 문장이 많이 보인다. ‘-니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중 원칙이나 당위에 해당하는 진술에 나타나고, ‘-리라’는 미래에 대해 예측하거나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등의 진술에서 주로 보인다.
(18) ㄱ. 녜 괴외야 妙用이 恒沙ㅣ리라 <하: 38ㄴ>
이 作을 브트면 곧 本宗을 일티 아니리라 <하: 50ㄴ>
ㄴ. 다가 正면 十八正을 니르왇니라 <하: 44ㄱ>
이브터 서르 쳐 심겨 宗旨 일티 마롤디니라 <하: 52ㄱ>
12. 어휘
이 문헌에는 15세기에 간행된 여타의 정음문헌과 다르게 표기되어 있거나, 여기에서만 쓰인 어휘가 몇몇 보인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 ㄱ. -ㄹ뎐: 作法홀뎐 네 이리 자 리니 <서: 12ㄴ>
ㄴ. 워[獦獠]: 獦獠 워라 <상: 7ㄴ>
ㄷ. 아닔 아니며[莫非]: 여러 劫ㅅ因이 아닔 아니며 (莫非累劫之因이며) <상: 47ㄱ>
ㄹ. 어옛비[矜恤]: 외이 가난닐 어옛비 너교미 일후미 慧香이오 (矜恤孤貧이 名慧香이오 <중: 21ㄴ>
ㅁ. 가야[憍]: 가야 소교 믈 드로 닙디 마오 (不被憍誑染고) <중: 24ㄴ>
ㅂ. 지[了然]: 三身을 보아 지 自性을 제 알에 호리니(見三身야 了然自悟自性호리니) <중: 35ㄴ>
ㅅ. 데-[浮游]: 녜 데미 뎌 하 구룸 니라 (常浮游호미 如彼天雲니라 ) <중: 38ㄴ>
ㅇ. [痕]: 돌해 師ㅅ 趺坐신 무룹 과 (石에 於是有師趺坐膝痕과) <중: 51ㄴ>
ㅈ. 셔히[諦]: 내 이제 너 爲야 니노니 셔히 信고 (吾今에 爲汝說노니 諦信고) <중: 73ㄱ>
ㅊ. 그리나[然]: 그리나 (然이나) <하: 2ㄴ>
ㅋ. 져조니[鞫問]: 져조니 (鞫問니) <하: 87ㄱ>
위의 어휘들은 이 책에만 나오는 유일한 예이거나 다른 문헌에 용례가 드문 것들이다. ‘셔히’는 상․ 중․하 3권 모두에 용례가 있으나, 15세기 정음문헌 중 이 책에 처음 나오고 이후 문헌에서는 널리 쓰였다.
Ⅴ. 결 론
지금까지 조선조 연산군 2년(1496)에 간행된 정음문헌인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의 底本, 간행 경위, 서지 사항, 국어학적 특징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책의 한문본은 당나라 시대에 在世했던 禪宗의 육대조사 惠能의 법문을 門人인 法海가 집록하고 뒷사람들이 첨삭․편찬하여 오늘에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이래 이 책의 유통과 간행이 매우 활발했던 듯하다. 특히 元나라 때의 승려 蒙山 德異가 편찬(1290)한 책인 ‘德異本’이 고려조에 유입(1298)되었고, 이후 고려 승려 萬恒에 의해 간행(1300)된 덕이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이 지속적으로 重刊되었다. 언해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의 底本도 바로 이 덕이본이다.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훈민정음 창제 후 꼭 50년 만에 仁粹大妃의 명을 받은 당대의 고승 學祖에 의해 3권 3책으로 인간되었다. 간행 부수는 모두 300질이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 책이 경전 간행만을 위해 특별히 조성된 ‘印經木活字’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당시까지 간행된 정음문헌의 한자에 주음했던 東國正韻 한자음이 전면 폐기되고, 이른바 현실 한자음이 주음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논의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의 저본, 간행 경위, 서지 사항, 언어 사실 등의 특징을 밝힌 것이다.
제Ⅱ장에서는 한문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의 조성과 현전 異本들에 대해서 살폈다. 한문본 ꡔ육조법보단경ꡕ은 혜능의 高足弟子인 법해에 의해 집록되었고, 이후 계통에 따라 부분적으로 첨삭이 있어서 판본에 따른 품의 분장과 표현 방법 등 일부 내용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 最古本인 돈황 석굴 발굴본, 이른바 돈황본은 천 여 년 동안 석굴에 비장되어 있다가 20세기에 발굴․공개되어 육조대사 당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전 판본은 돈황본 계통, 혜흔본 계통, 종보본 계통으로 나뉜다. 혜능의 법어집을 ‘壇經’이라고 불러온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는 이 어록에 실려 전하는 혜능선사의 가르침이 중국불교 선종의 근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혜능선사가 講說한 禪의 요체가 경전과 같은 존숭을 받았고, 이러한 진리를 후인들이 높이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러왔던 것이다.
제Ⅲ장에서는 ꡔ육조법보단경ꡕ의 언해본 간행 경위와 형태서지를 밝혔다. 이 책의 현전본 중에는 간행당시의 刊記가 없어서 자세한 간행 경위를 알기 어려우나, 같은 시기에 간행된 책인 ꡔ시식권공언해ꡕ의 발문에는 이 책과 관련된 기사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동일한 발문이 이 책의 원간본 하권에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발문에 의해 ꡔ육조법보단경언해ꡕ는 인수대왕대비가 內帑으로 간행 경비를 부담하고, 당시의 고승 학조로 하여금 번역․간행케 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문헌에 쓰인 목활자는 경전 간행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져, 이 책 간행 1년 전인 연산군 1년(1495)에 刊經都監 후쇄본으로 간행된 ꡔ선종영가집언해ꡕ 등의 발문에도 사용되었었다. 현전하는 상․중권은 원간본이고, 하권은 명종6년(1551)에 간행된 복각본이다. 각 책들의 현전 현황과 영인 사항, 그리고 형태서지를 밝혔다.
제Ⅳ장에서는 이 문헌에 실려 있는 언어 사실 중 특기할 만한 내용을 살폈다. 본론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ㅸ, ㆆ’ 등의 문자는 이 문헌에 쓰이지 않았다.
2) 各自竝書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合用竝書는 ‘ㅺ, ㅼ, ㅽ; ㅳ, ㅄ, ㅶ; ㅴ, ㅵ’ 등이 보인다. ‘ㅷ’이 쓰이지 않은 것은 이 문헌에 이 글자가 쓰일 어휘가 없었기 때문이다.
3) 중성 표기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중성글자들이 대부분 쓰였으나 동국정운 한자음의 폐기로 ‘ㆇ, ㆊ, ㆈ, ㆋ’ 등 4자는 용례가 없다. ‘ㆉ’는 다른 문헌에 고유어에도 쓰인 예가 있으나([牛]<월석1:27ㄱ>) 이 책에는 해당하는 어휘가 없어서 빈칸이다.
4) 종성표기는 ‘ㄱ, ᅌ, ㄷ, ㄴ, ㅂ, ㅁ, ㅅ, ㄹ’의 8종성 외에 ‘ㅿ(워, 상 : 7ㄴ)’이 쓰였다.
5) 한자음 표기는 정음 창제 후 官版 문헌에서 일관되게 지켜지던 改新音인 동국정운에 의한 한자음 注音 표기가 폐기되고, 그 당시에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현실 한자음이 주음되어 있다. 평음과 유기음으로 주음되어 있는 ‘讚(잔/찬)’과 ‘讖(잠/참)’을 통해 당시에 이 글자들의 유기음화가 진행 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불교용어 중 ‘解脫’의 ‘解’자와 ‘般若’의 ‘般’자가 정음 초기문헌에서부터 이 문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폈다. 또 오늘날 쓰고 있는 불교용어로서 일반적인 한자음과 다르게 실현되는 ‘波(바/파)’, ‘婆(바/파)’, ‘便(변/편)’, ‘布(보/포)’ 등이 이 문헌에 이미 다르게 주음되어 있는 사실을 살필 수 있었다.
6) 이 문헌의 방점표기는 매우 혼란하여 같은 문헌 內에서도 서로 다르게 표기된 예가 많고, 정음 초기 문헌과 비교해 보아도 다르게 나타난 예가 상당수 보여서 어떤 원칙을 찾기가 어렵다.
7) 사이글자는 예외 없이 ‘ㅅ’으로 통일되었다.
8) 선행 체언이나 어간의 말음이 자음일 때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와 만나면 대체로 연철했으나, 선행 체언의 말음이 ‘ㄴ, ㄹ, ㅁ, ᅌ’일 경우에는 모음 조사와의 통합에서 일부 분철표기한 예가 보인다.
9) 주격과 서술격표기는 각각 선행 체언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이, ㅣ, ∅’나 ‘이-, ㅣ-, ∅-’로 실현되었다. 언해문과 구결문 모두에서 동일하다. 다만 ‘이’나 ‘ㅣ’ 다음의 주격표기에서 ‘ㅣ’를 실현시킨 예가 있는데(一切般若智ㅣ <상 : 55ㄱ>/ 곧 이 偈ㅣ <상 : 22ㄱ>), 이는 앞뒤 문장이 이어질 때 오는 해독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0) 이 책에서 모음조화는 혼란한 양상을 띤다.
11) 문장 구성의 유형이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이 책의 이러한 문체적 특성은 법어라는 底本의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이 점 다른 언해본들과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문장은 혜능이 깨우침과 관련하여 주변 사람들이나 門人들에게 묻고 대답하는 문답 형식과 說話者(집록자, 또는 책편찬자)가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의문문의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특히 ‘엇뎨 ~ -오/고’형이나 ‘엇뎨 ~ -가/고’형 의문문이 많이 보인다. 평서형 문장은 대체로 ‘-니라/리라’형 종결형식이 많다. 경어법 사용이 활발하여 존경법 선어말어미 ‘-으시/으샤-’, 겸양법 선어말어미 ‘--’, 공손법 선어말어미 ‘--’의 쓰임이 잦은 편이다.
12) 이 문헌에는 15세기에 간행된 여타의 정음문헌과 다르게 표기되어 있거나 여기에서만 쓰인 독특한 형태의 어휘가 몇몇 보인다.
주제어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 혜능(惠能), 덕이(德異), 언해(諺解), 인경목활자(印經木活字), 언어 사실(言語 事實), 국어학적 특징, 동국정운음(東國正韻音), 현실 한자음(現實漢字音)
4) 이 논의에서는 갖은 이름은 ꡔ육조법보단경ꡕ이라 하고, 줄여서 부를 때는 ꡔ단경ꡕ이라 할 것이다.
5) 몽산 덕이화상에 대해서는 김무봉, 「몽산화상육도보설 언해본 해제」, ꡔ몽산화상육도보설 언해(영인본)ꡕ(서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논문집 제16집, 1993ㄷ) 참조.
8) 후술하겠지만 당대의 고승인 ‘學祖’로 추정된다. 앞의 논의인 안병희(1978) 참조.
9) 천혜봉, 「연산조의 인경목활자에 대하여」, ꡔ조명기박사 화갑기념 불교사학논총ꡕ, (서울: 중앙도서출판사, 1965) 참조.
13) ‘壇’은 ‘戒壇’을 의미하므로 ‘壇語’는 출가자와 재가자들을 위해 개설한 ‘菩薩戒壇’에서의 ‘受戒說法’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성본(1989) 참조.
14) 정병조, ꡔ육조단경ꡕ(서울: 한국불교연구원, 1978) 참조..
21) 어려운 발문의 번역을 흔쾌히 해주신 김갑기(동국대 국어국문학과)교수께 사의를 표한다.
23) 燕山君 日記, 연산군 2년(丙辰) 四月 戊子條 참조.
29) 하권은 실사하지 못하여 영인본과 남권희(2000)를 참고하였다.
30) 여기서 이르는 ‘정음 창제 초기의 관판 언해본’은 ꡔ석보상절ꡕ 등의 초기 문헌부터 간경도감 간행의 언해본까지를 말한다.
31) 훈민정음 창제 초기에 간행된 문헌 중 순수하게 정음으로만 된 문헌은 없으므로 여기서의 정음문헌은 국한 혼용문을 가리킨다.
35) 이 책의 간행 연도와 ‘’ 등에 대해서는 김무봉,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의 국어사적 고찰」, ꡔ동악어문론집ꡕ 28(서울: 동악어문학회, 1993ㄴ) 참조.
37) 김동소(2000ㄴ: 9)는 ‘ㆊ, ㆋ’가 ꡔ훈몽자회ꡕ(1527년)의 한자음 표기에 나타난다고 보고했고, 김양원(2000: 18)은 ‘ㆋ’의 실제 용례를 제시한 바 있다.
38) 김무봉, 「금강경언해 해제」, ꡔ금강경언해 주해ꡕ(서울: 동악어문학회, 1993ㄱ) 참조.
39) 김동소(2000ㄴ: 29), 김양원(2000: 37) 참조.
智ㅣ 能히 一萬 어료 滅니(一智ㅣ 能滅萬年愚滅니) <중: 43ㄱ>
이 卷을 자바(尼ㅣ 乃執卷야) <중: 49ㄴ>
반기 가미 理ㅣ 덛덛니라(必去ㅣ 理亦常然이니라) <하: 65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