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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다시 읽기

최윤 / 친밀의 고도

작성자이난희|작성시간21.04.18|조회수26 목록 댓글 0

 T섬에서 돌아와 얼마 안 있어 갑작스럽게 정연이 지방 연수를 떠났다. 우리보다 일 년 일찍 입사하기도 했지만 업무에 두각을 나타 낸 직원에게 보내는, 누구나 원하는 육 개월 간의 지방 연수였다. 가을이 왔지만 남은 우리 둘만 산에 가는 것에 흥이 나지 않았다. 가끔 문자를 주고받고 통화를 해도 셋의 관계는 다소간 서먹했다.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그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정연의 서울 복귀를 축하하는 산행으로 우리는 왜 남덕유산을 골랐을까. 이 거칠고 날카로운 성깔을 드러내는 산을 왜 택했을까. 이 산이 금강과 남강과 황강을 품고 있다는 상징에 우리가 이끌리지 않았을까. 남덕유산에 대해 조사하다가 지도에서 이 세 강의 상류를 찾아보면서 모두 단번에 반하고 말았다. 남덕유산은 두 오빠가 같이 오른 마지막 산이기도 했다. 두 오빠의 사이가 살갑던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남덕유산에 가자고 제안한 것은 내가 아니라 수아와 정연이었다. 정연이 출장에서 돌아온 후부터 두어 달, 우리는 남덕유산에 오르는 준비를 했다. 우리는 웬만한 산꾼들이 필력을 총 동원한 산행기록도 열광적으로 읽었다. 그러나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압도적인 장관 앞에 우리는 말을 잃는다. 어떤 그럴듯한 말도 뛰어넘는, 오!, 와아~, 아, 세상에! 저 깊게, 파란…… 하늘!…… 우주! 우리를 멍청한 말더듬이로 만드는 암봉까지의 가파른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가쁜 호흡을 모으느라 여념이 없다.

 

                                                         - 최윤 소설 「친밀의 고도」 중에서 / 학산문학 202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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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이 셋이 오르고 있는 남덕유산의 의미는 적지 않다. “이 산 이 금강과 남강과 황강을 품고 있다는 상징”이야말로 이들을 이끌리게 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세 강을 모두 품은 남덕유산은 셋이 만들어 갈 관계의 이상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남덕유산은 혜진이 “두 오빠가 같이 오른 마지막 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덕유산을 오르는 일은, 두 오빠가 실패한 자리에서 새롭게 써나가는 관계의 등정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등정기는 성공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것은 작품의 맨 마지막을 채우는 남덕유 산의 압도적인 장관과 그것을 향한 셋의 가쁜 호흡에서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이 압도적인 장관 앞에 우리는 말을 잃는다. 어 떤 그럴듯한 말도 뛰어넘는, 오!, 와아~, 아, 세상에! 저 깊게, 파 란…… 하늘!…… 우주! 우리를 멍청한 말더듬이로 만드는 암봉까지 의 가파른 계단을 하나, 하나 밟으며 가쁜 호흡을 모으느라 여념이 없다. 

 

                                                                                        -작품론 중에서 / 숭실대학교 이경재 교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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