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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다시 읽기

시의 힘/ 신대철 시인

작성자이난희|작성시간21.05.16|조회수130 목록 댓글 0

이 계절의 시인 · 신대철 문학강좌

신대철 시인의 문학강좌는 2012년 칭기즈칸 탄생 850주년기념 국제학술대회 때 발표한 자료를 재수록 하였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시인이 들려주는 ‘시의 힘’은 전쟁의 참상을 시인의 예리한 감성으로 어떻게 고발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전쟁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편집자 주

 

시의 힘

 

 한국인들이나 몽골인들은 아직도 분단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전쟁 지역에서 내몽골 학자와 외몽골 학자가 만나 칭기즈칸 850주년 학술대회를 연다는 사실은 만남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만합니다. 특히 할힌골 전투 지휘소가 남아 있는 이 솜 베르 솜지역은 도르노드 문화권에 속한 지역이기 때문에 학술대회가 열리는 이 순간엔 잠시 정서적으로 국경이 지역 경계로 바뀌는 것 같은 황홀한 착각을 일으켰습니다. 한 · 몽 역사 유적 답사 중 우리(손필영 시인, 김미월 작가)가 이 뜻깊은 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오래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준비한 글은 전쟁에 대한 시의 대응 문제입니다.

 

 CNN과 AL JAZEERA를 통해 이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스포츠처럼 생중계되고 구경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구경꾼들은 죽은 어머니의 품에서 떨고 있는 어린아이와 개와 쥐에 뜯기며 썩어가는 시신은 잊은 채 날아다니는 포탄만 보고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사는 피로 점철된 전쟁사라고 할 정도로 매 시대마다 집단 이익을 위해, 혹은 그럴듯한 숭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애국과 애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상되었습니다. 전쟁은 그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부정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남북전쟁을 찬양했던 휘트먼은 전쟁의 참상을 보고 전쟁을 부정했고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한 반전시인 윌프레드 오웬은 애국심이란 미명 하에 젊은이들을 사지로 보낸 자들을 증오했습니다. 전쟁 요인은 물론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전쟁의 승리가 국가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무수한 생명들을 빼앗아 얻은 국가의 이익은 무가치한 것입니다. 전쟁이 국가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음 전쟁과 관련된 몽골시는 인간과 전쟁의 문제를 다시 한번 숙고하게 만듭니다.

 

 

                전쟁은

                      화약의 연기

                      전염병, 고생

                                       -검버자브 「전쟁」 일부

 

 

 몽골의 전쟁시는 대부분 국가주의와 이념 속에 태어난 시이기 때문에 국가와 이념을 지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중요할 뿐입니다. 전쟁의 현장은 보이지 않고 화약 연기, 전염병, 고생 등 전쟁과 관련된 언어들만 나열되고 있습니다. 할힌골 전쟁을 다룬 시 가운데 비교적 전쟁의 구체적인 상황이 드러나 있는 수렌자브의 시 「90개 영웅 이야기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할흐강 물가에

90 개 영웅이 태어났다

할흐강 물가에

90 개 영웅이 영원히 잠들었다

높은 하늘을 향해

90 개의 비석을 빛나게 한다.

비석 쪽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길이 지워지진 않았다.

잡초 같은 것이 자라지도 않았다.

(…)

스웨르드럽스크 기차역에서

손자를 보냈던 할아버지

스왜스터플 공원에서

애인을 그리워했던 여인

모스크바 학교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들

몽골에서 올 소식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 수렌자브의 시 「90개 영웅 이야기시」부분

 

 

 영웅으로 태어나 영웅으로 죽었다는 이 서사시의 끝도 ‘망치와 낫이 있는/ 국가 상징을 존경한’ 소련 영웅들의 이야기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은 ‘통계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1억에서 1억 8천만 사이입니다. 한반도의 남북을 합친 인구(7천만 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전쟁에 희생되었습니다. 큰 것들만 짚어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1500만 명, 제2차 세계대전에서 5천만 명, 한국전쟁 300만 명, 베트남 전쟁 120만 명 등이다.’여기에 21세기의 첫 전쟁인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뒤이어 일어난 이라크 전쟁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불어날 것입니다.

 

 저명한 철학자들과 국제분쟁 전문가들이 인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하지만 미래에 닥칠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의 참상은 생생히 고발되어야 합니다. 고발 자체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인류의 공생. 공존에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오웬의 반전시는 전쟁에 대한 시인들의 시적 대응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1)마소처럼 죽는 자들에게 무슨 조종인가?

오로지 괴물스런 총부리의 분노뿐.

오로지 탕탕 불을 뿜는 잽싼 소총 소리만이

저들을 위한 숨 가쁜 기도일 뿐이다.

저들을 웃기지 말라. 어떤 기도도, 종소리도,

어떤 슬픔의 목소리도 아닌 합창만 있을 뿐

울부짖는 포탄의 날카롭고 미친 합창과

슬픈 고장으로부터 저들을 부르는 나팔소리뿐

어떤 촛불을 켜들고 저들의 명복을 비나?

소년들의 손에서 말고 눈망울엔

안녕을 비는 거룩한 눈빛이 비치리라.

소녀들의 창백한 이마는 저들의 관을 씌우나니.

이들이 바친 꽃은 인내하는 자의 정이오

서서히 오는 어스름마다 차일을 내림이다.

- 오웬 「비운에 간 젊음을 위한 송가」 전문

 

 

2) 부대를 멘 늙은 거지같이 허리가 곱으로 굽고

휜 다리 무릎을 맞닿고 흉한 노파처럼 콜록거리면서

우리는 진창 속을 걸으며 저주했다.

마침내 끈덕지게 터지는 조명탄을 뒤로하고

먼 곳에 있는 휴식을 찾아 터벅거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잠자면서 걸었다. 대부분 신발을 잃고

피가 엉킨 발로 절뚝거렸다. 모두가 절름발이, 모두들 장님.

피로에 취해, 등 뒤에 가볍게 떨어지는

독가스 탄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독가스다! 가스! 빨리들! 황홀한 더듬질.

흉물스런 방독면을 간신히 맞추어 쓴다.

하나 누군가는 마냥 고래고래 소리치며 비트적거리다

불속에 아니면 끈끈이 속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린다.

안개 낀 유리창과 짙은 파랑 불빛을 통해 희미하게,

마치 푸른 해저인 듯 그는 익사하는 것이었다.

 

나의 숱한 꿈속에서, 어설픈 내 시야에서,

그는 걸근거리며 숨 막힌 듯 내게 대들다 익사한다.

숨 막히는 꿈속에서, 그대도 만일 그 사람을

내던져 실은 달구지 뒤를 따라가면서

흰 눈알 뒤트는 모습 보게 된다면,

죄악에 염증이 난 악마의 얼굴 같은 처진 그 얼굴을,

달구지 뒤뚱거릴 때마다, 거품처럼 썩은 폐에서

암처럼 흉측한, 쓸개를 되씹듯 한, 죄 없는 혀

의 불치의 상처에서, 피가 솟구쳐 나온 걸 보게 되면

친구여, 그대는 구사일생의 무용담을 갈구하는 아이들에게

기고만장하여 들려주지 않으리라.

해묵은 거짓을: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감미롭고 온당한 짓이라고.

                                - 오웬 「감미롭고 온당하다」 전문

 

 

 인용된 시 두 편 중 1)은 전쟁의 잔혹성과 비애를 2)는 독가스 공격과 국가의 승리를 위해 조국애를 강요하는 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묘사하고 있는데 1)은 마소처럼 죽어가는 전사자들을 위해 영혼을 위무해 주는 이들은 오직 천진한 소년소녀들뿐이라고 합니다. 죽은 전사자들을 위한 어떤 기도도 조종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는 나팔소리와 총부리의 분노, 소총소리, ‘울부짖는 포탄의 날카롭고 미친 합창’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2)는 전쟁 속의 죽음은 전쟁 영웅들이 말하는 위대하고 숭고한 죽음이 아니라 참혹한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오웬은 죽어가는 병사의 모습에 대해 ‘흰 눈알 뒤트는 모습’, ‘악마의 얼굴 같은 처진 그 얼굴’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쓰면서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감미롭고 온당한 짓’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오웬이 전쟁의 무자비함과 허위성을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는 그의 기독교 정신에서 온 것입니다. 1916년 겨울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고성능 폭약(스웨덴 과학자 노벨이 발명)과 독가스 속에서 살아남은 오웬은 이 무렵에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무인지경에 계십니다. 거기서 병사들은 그분의 목소리를 자주 듣지요. ‘사람이 그 친 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영어와 프랑스어로만 말해 진 것인가요? 안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순수한 기독교는 순수한 애국과는 맞지 않다는 것 을 알 수 있어요.’

 

 

오웬이 반전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이상섭의 지적처럼 집단적 이기심으로 인하여 적대관계를 맺고 있지만 전쟁 당사자들은 ‘서로 친구이지 원수는 아니라는 높은 이념’,다시 말하면 기독교 이념에 도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웬도 휴전 일주일을 앞두고 상브로 도강 작전 중 전사하고 맙니다.

세계 제1차 대전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나타난 전쟁의 참상은 73년 전 일어난 몽골 할힌골 전투나 62년 전 한국 땅에서 일어난 6 · 25 전쟁의 비극성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세계사에서 볼 때 동족상잔의 비극이 한국과 몽골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아직도 전쟁이 긴장 상태로 계속되고 있고 전쟁의 기운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비극적이라 할 만합니다. 마지막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내 시 한 편을 소개하고 그치겠습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소용돌이치며

먼 바다로 나가는 합수머리

살얼음 낀 개펄에

재두루미 떼 내리는 늦가을

 

한국은 새 천년을 맞이하려고

분쟁 지역에서 부쳐온

철모와 탄알과 탄두를 녹여

평화의 종을 만들었습니다.

몽골은 할흐강 유역에서 관동군을 물리친

탱크 포신 30㎝를 보내왔습니다.

 

임진각에서 평화의 종이 울릴 때마다

초원의 빛이 터져 나갔습니다.

초원의 빛은 할흐강의 은빛 물결소리와

올리아스 숲의 푸른 바람소리를

지평선을 넘어가는 양떼의 울음소리를 되울려

할힌골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의 어두운 기억을 달래고

깃발을 쥔 채 이름 없이 스러진 영혼들을

온누리에 떠도는 피맺힌 원혼들을 감싸 안았습니다.

 

그 초원의 빛을 타고 재두루미떼도

부이르 호수를 지나

다리강가 숨팅터이룸*에서 숨 고르다가

살얼음 낀 개펄로 날아들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합수머리 물살이 잔잔해집니다.

                                                         -신대철,「초원의 빛으로」 전문

 

 

* 몽골 수흐바타르 아이막(도) 다리강가 솜(군) 지역 이름. 이 다리강가 일대는 돌하르방 같은 석인상과 고구려와 고려의 제단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일대는 늪지나 호수가 많아 시베리아에서 한국 철원이나 서해안으로 날아가는 독수리, 고니, 재두루미 등 겨울 철새들의 중요한 이동경로가 되고 있다.

 

 

 한국은 1999년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 세계 주요 전쟁터에서 사용된 무기를 녹여 ‘평화의 종’을 제작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 때 사용했던 기관총을, 터키는 1980년대 발칸 전쟁 때 사용된 권총 1정을,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습격 때 격침된 전함 선체 일부를, 러시아는 2차 세계 대전 때 사용된 철모 1개를, 몽골은 1939년 일본의 몽골 국경 침입 때 할흐강 주변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던 탱크 포신 30센티를 각각 기증하였습니다.

 내 시 「초원의 빛으로」는 한국의 ‘평화의 종’을 소재로 하여 쓴 시입니다. 특히 몽골 초원, 할힌골, 다리강가 등과 한강, 임진강, 바다 등을 시의 연결고리로 삼은 것은 한국과 몽골의 혈연적 유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언어적 장치입니다. 철새들의  이동경로를 따라 평화의 빛도 몽골에서 한국으로 오고 그 빛은 다시 한국에서 몽골로 흐르기를 기원합니다.

 

 

-2015년 학산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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