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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학의 역사

작성자학선|작성시간14.08.20|조회수747 목록 댓글 0

 


관상학의 변천사


명리학이나 성명학이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면 얼굴이나 손을 관찰하여 운명적 특성을 아는 방법은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고 볼 수 있다.


상(相)이라는 글자는 나무(木) 옆에 눈(目)이 있다. 즉 나무의 눈, 즉 움이 트고 자라는 기운을 표상한 글자인데, 그 상(相) 앞에 붙는 관(觀)은 황새(雚)가 창공을 날면서 먹이를 찾는(見)다는 뜻에서 유래한 글자지만 육안(肉眼)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안(心眼)으로 본다는 뜻이 강하다.


초보 관상가는 당연히 육안으로 보겠지만, 달인의 경지에 들어선다면 심안(心眼)의 경지가 열릴 것이고 형이하학적이던 관상법이 정신세계와 맞닿는 형이상학적인 학문으로 승화될 것이다.


문헌상으로는 『좌전(左傳)』에 숙복(叔服)이란 분의 일화가 처음 등장한다. 동주시대(BC 770∼BC 256)때 내사(內史)라는 벼슬에 있던 분인데 노(魯)나라의 재상 공손오가 숙복을 청하여 자신의 두 아들의 관상을 감평 받았는데 후일 예언대로 적중되었고, 노나라 문공 14년에 천문(天文)을 보고 7년안에 송·제·진(宋·齊·晋)나라 임금들이 서거할 것이라 예언하였고, 적중되었다.


숙복이후 관상에 능했던 사람은 고포자경(姑布子卿)이란 분인데 주(周)나라의 고위 관료였다. 어린 공자(孔子)를 보고 대뜸 「일준월각(日準月角),하목해구(河目海口),가지성인지탄(可知聖人之誕)」

- 반듯한 일각, 월각(이마)에 은하수 같이 깊고 맑은 눈, 바다 같은 입 모양은 가히 성인의 탄생임을 알겠구나 -

공자가 장래 성현이 됨을 예측하였으니 참으로 탁월한 분이다.


다음의 명관상가는 초(楚)나라의 당거(唐擧)라는 분이다. 당거가 진(秦)나라의 대신 이태의 관상을 보고 “100일 안으로 국가의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고 예언한 내용과 연(燕)나라 사람 채택의 상을 관찰한 후 “앞으로 43년간 더 살겠다”고 말해준 내용이 사마천의 『 사기(史記)』권79 <열전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에 관한 일화로 대표적인 것은 초왕(楚王) 항우(項羽)를 멸하고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漢高祖)의 후궁이였던 박희(薄姬)의 상(相)을 보고 뒷날 천자가 될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 후 사내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성장하여 한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또 다른 일화로는 하내(河內) 지방의 관리였던 아부(亞父)의 관상을 보고 예언하기를 “3년 뒤에 제후가 될 것이며, 제후로 봉해진지 8년 후에는 장상(將相)이 되어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는 귀한 몸이 되지만 그 후 9년 후에는 굶어 죽을 것이다. 그 이유는 코의 양옆으로 나타나는 팔자(八字) 주름 즉 법령(法令) 끝이 입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그 예언대로 승승장구 출세를 하다가 나중에 옥사(獄事)가 발생하여 며칠동안 단식(斷食)하다가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허부 이후에도 명관상가는 많이 배출 되었는데, 모든이를 다 거명할 수는 없고, 몇몇 중요한 분을 손꼽자면 삼국시대 때의 인물 주건평(朱建平), 수(隨)나라말 당(唐)나라 초기의 을불홍례(乙弗弘禮), 당(唐)나라 최고의 술사 원청강(袁天綱) 부자(父子), 당태종때 인물 장경장(張憬藏), 의사이면서 도교학자로 581년에 출생하여 682년까지 장수하였던 손사막(孫思邈), 송(宋)나라때 인물 마의도사(麻衣道士) 본명은 전해져오지 않지만 『마의상법(麻衣相法)』으로 유명하다.


오대(五代)말 송나라 초기때 도교의 도사 진단(陳搏)은 관상사(觀相史)에서뿐 아니라 역학사에 중대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또한 송나라를 개국한 초대황제 조광윤(趙匡胤)이 아직 미천한 신분일때 후일 천자가 될 상이라고 판단하였다고 전해온다.

원공(袁珙 ; 1334-1410년)은 지금의 절강성 출신의 명관상가였으며, 그의 아들 원충철(袁忠徹)도 훌륭한 관상가로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 원공은 『柳庄神相全編』이란 명저를 남겼고, 아들 원충철 또한 『袁忠徹古今識鑑』8권과 『袁忠徹符臺外集』5권을 저술했다.


불교 인물로는 달마대사가 <달마상법>을 창안했다고 하나 이는 믿을만하지 못하고, 『古今圖書集成』권 647「江寧府志」와 「抗州府志」에 등장하는 묘응(妙應)이란 승려가 유명했고, 청(淸)나라 옹정(雍正)황제때 관상술에 능했던 이름이 전하지 않는 노승이 있었다.


서양 문명권에서 관상술은 기원전 2000년경에 이미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는 서판(書板)들이 발견되었다.


⦁만약 비뚤어진 얼굴에 오른쪽 눈이 튀어나와 있다면, 그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개떼에게 잡아먹힐 운명이다.

⦁어깨에 곱슬곱슬한 털이 난 남자에게는 여자들이 따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세네카, 테툴리아누스, 크세노폰, 플루타르코스, 타키투스, 유베날리스, 루키아노스 등 철학자, 역사가, 시인들이 관상학에 능했거나 관심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서양 관상학의 창시자는 기원전 6세기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라고 전해진다.

다른 한편에선 히포크라테스가 관상학의 창시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키케로가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관상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날 소크라테스의 제자는 이집트의 관상가 조피로스가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그는 멍청할뿐더러 고루하다. 왜냐하면 쇄골에 움푹 팬 곳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를 밝힌다."

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분노한 제자가 스승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치자 소크라테스는 그 관상이 옳으며 자신은 단지 이성을 통해 악덕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였다.


관상학은 동양과 서양이 따로 없이 모든 인류의 공통관심사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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