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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펌)

기독4 한국기독교의 역사

작성자빙혼서생|작성시간15.08.10|조회수157 목록 댓글 0

 

<한국 기독교의 역사>

 

(1) 한국 최초의 기독교

 

한반도에 기독교(=가톨릭+정교회+380여 개신교)가 들어 온 것은 AD1770년경이다. 그러니까

다산 정약용 선생의 3형제가 모두 이 한반도 최초의 기독교(가톨릭) 신자들로써 ‘귀양살이’를

하거나 ‘순교’를 하거나 ‘귀양살이로 죽’는다. 어째든 한반도 최초의 기독교(가톨릭)는 한반도

에서 최고 강력한 존재가 왕이 아니라 Yhwh 또는 Jesus이라고 주장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왕에 대한 ‘반역죄’로 처벌 받고, 또한 조선의 신분제 계급사회를 붕괴시키는 평등사상 때문에

또한 공격을 당한다. 기록으로 확인된 것만 해서 1800여명이 넘게 학살을 당한다.

 

(2) 미국 개신교의 한반도 상륙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1905년경부터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개신교가 퍼지기 시작한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일본제국주의의 보호를 받는다. 그 이유는 일본과 미국 간의 비밀 협약인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일본은 조선을 먹고 미국은 필리핀을 먹기로 비밀 약속을 했기 때문

이다. 따라서 이들 미국 개신교는 가톨릭과는 전혀 다르게 탄압을 받기는커녕 일제의 지원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한반도 토착종교를 모조리 迷信(미신)이라고 비난함으로써, 일본 토착종교인 ‘신토(신토의 사원

이 바로 신사)’와 개신교가 한반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10,000년 동안 한반도

각 가정에서 제조해 오던 술의 제조를 금지하고 일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사업자만 술을 제조

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개신교 목사와 장로들은 총`대포 제작에 사용해달라면서 교회의

종 1,540개를 일본군에 헌납했고,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교회의 헌금을 가져다가 전투기를

사서 일본군 해`공군에 헌납하거나, 아예 교회 건물 자체를 매각한 대금으로 전투기를

구입해서 일본군에 헌납한다.

 

그러한 일제강점기 개신교 부흥의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북한에 있다. 이 당시

한반도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개신교 부흥 현상이 ‘평양 대부흥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평양 대부흥 운동’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가문이 지금도 북한에 살고 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가문이다.

 

북한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어머니가 개신교 모태신앙이라서

그 이름까지도 개신교식의 반석(=베드로)인 것이 명백한 증거다.

김일성 어머니는 성이 강씨라서 강반석이다.

 

즉 제자 ‘시몬’에게 Jesus께서 ‘넓은바위(=반석)’라는 의미로 붙인 ‘베드로’라는 이름이

바로 모태신앙에 열성 개신교 신자였던 김정일 할머니의 이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은 남아도는 헌금을 가져다 바치고서는,

박사 학위 정도는 미국의 이곳저곳에 난립한 저렴한 신학교에서 사오고 있다.

 

(3) ‘양복 입은 무당’ 취급을 당하는 한국 개신교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해방(1945)과 한국전쟁(1950) 이후 설자리를 찾지 못한다. 일단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지역에서는 개신교 모태신앙의 김일성이 모든 종교를 금지해버렸다.

남한에서는 폭발적 물가상승률과 생산시설 기반이 완전하게 파괴되어 자기들 먹고 살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주일에 40분짜리 연설 2~3회만 하고서는 내내 가만 앉아

놀고먹으면서 장례식만 기웃거리고 다니는 ‘양복 입은 무당’ 정도로 여겨졌던 목사들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개신교는 그렇게 1970년대 초반까지 고전에 고전을

거듭할 뿐이었다.

 

(4) 미국 개신교의, 신비주의(통성기도`방언)와 공격적 영업기법 수입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세력을 키우기 시작해서 1980~1990년대에 개신교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개신교 교회에 이른바 통성기도와 방언 따위의 심리적인 신비주의 그리고

밴드나 설교방송 따위의 공격적인 종교 활동이 한반도에 최초로 도입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이 개신교 신비주의는 심리학적인 현상으로 AD1900년 1월에 미국 켄자스주의 근본-원리주의

개신교인들이 마치 미치광이처럼 환장을 한 듯 한 집회를 하던 도중에 우연하게 처음 시작

됐다.(참고로 방언이라는 현상은 흰두교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종교문화현상이다.

또한 최근 한국 가톨릭에서도 방언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유행 중인 심리현상으로 보인다.)

 

또한 그들이 지구상 최초로 라디오 방송설교를 시작해 공격적인 영업형 개신교의 시작을

알린다. 라디오 방송 초기라서 프로그램도 없고 수입원도 없던 당시의 라디오 방송사들은

헌금을 가져다가 자신들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이 근본-원리주의 개신교 광신자들에게

호의적일 수밖에는 없었다.

 

1970년대 후반 당시 한국 380여개 개신교 목사들은 95%가 아닌 100%가

모두 이 통성기도 방언 밴드 설교방송를 ‘異端(이단)’이고 ‘사이비’라고 규정했다.

이런 심리적 맹신-광신 유도의 영업기법을 최초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도입해 온

서울 여의도의 초대형교회 목사를 요한계시록에 나온 ‘적그리스도’고 ‘사탄’이라고 단언했었다.

 

그러나 재미난 것은 이 적그리스도와 사탄이 대박을 터트려버린다.

그리고 그 적그리스도와 사탄이 한반도에 있는 380여개 개신교 교파 전체의 종교활동 및

신앙생활 방식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린 것이다.

 

AD2015년인 지금은 80여개 교파가 넘게 난립한 장로교는 물론 한국 380여개 개신교단이

모두 그 ‘이단’ ‘적그리스도’ ‘사탄’의 심리적 영업기법을 일상적으로 이용하여

통성기도`방언`밴드`방송설교를 하고 있다.

 

무속에서는 종이가 그냥 잘려나가는 날선 작두 위에서 무당이 돼지까지 끌어안고서 맨발로

뛰어도 상처가 생기지 않거나 신과 접신 혹은 빙의를 하고, 불교에서도 귀신을 쫓거나 병을

고치거나 귀신과 대화를 하고, 가톨릭에서는 눈이나 손바닥 또는 발바닥에서 Jesus의 십자가

처형 때처럼 피가 나오는 성흔이 생기고, 힌두교에서도 잘 드는 칼로 혓바닥을 그어도 멀쩡

하고, 또한 무엇보다도 방언과 동일한 현상이 2500년이 넘도록 전래되어지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수피즘이라는 신비주의가 있고, 유대교에서도 하시디즘이라는 신비주의가

있고~ 모든 현상이 그 어떤 대단한 신이 역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심리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겠다.

 

어째든 이 1970년대 후반부터 개신교 목사들은 돈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확보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성경을 왜곡한 몰몬교의 그 십일조를 그대로 한국 개신교에 도입한다.

 

그래서 AD2015년 현재 개신교 교회에 가면 하는 일이 크게 딱 두 가지다.

그 중 하나는 ‘무조건 믿고 무조건 충성하면 무조건 복 준다.’는 목사들의 주장을

‘아~아멘! 믿~씁니다!’하며 어떻게든 믿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한 움큼 싸들고 간 돈을 목사들에게 바치는 것이다.

이 둘이 개신교 교회가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 신앙 활동이다.

 

(5) 돈에 파묻힌 개신교 목사들

 

결국 그래서 한국 개신교 교회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다. 몰몬교처럼 1/10조에다가

OOO감사헌금 시리즈까지 목사들 그룹에게 돈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들어와서 쌓인다.

개척교회를 해서 경제적 자립만 넘어서면 목사들 연봉이 수 억 원이 되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었다.

 

연봉 이외에 목사 자식들 전체의 피아노`태권도 학원비부터 해외유학자금까지 모두 대고도

돈이 남아돌아서 땅을 사고, 교회 건물 올리고, 문화센터 짓고, 주차장 구입하고, 교회 기도원

만들고, 신자들 실어 나를 버스 구입하고, 교회 수련원 만들고, 교회 공동묘지 만들고,

그래도 돈이 남아돌아서 개신교 케이블 방송사 만들고 그러는 중이다.

 

몰몬교처럼 한 20년 공격적인 교세 확장에 순진한 신자들의 그 눈먼 돈을 물 쓰듯이 퍼서

쏟아 붓고 있다.

 

그래서 목사의 아들들을 미국 유학 보내서 맘껏 놀면서 신학교 졸업장 따오게 만들어가지고

교회와 신자를 상속해 준다. 노는 것은 교회 돈으로 미국 선교하러 간다고 잠깐씩 미국 가서

놀다 오면 된다. 요즘 동네의 독립 건물 있는 정도의 교회 목사들의 아들 상당수가 미국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다. 해외 청소년선교 선교사라는 명분으로 교회 돈 그 눈먼 돈으로

월급까지 받아가면서 말이다.

 

이 시기에 신나게 즐기다가 고등학교 졸업해서 신학교 진학해 대충 대충 졸업장 받은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해외 유학파로써 목사 안수 받는 것이다.

그렇게 대를 이어 십일조와 OOO감사헌금 시리즈로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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