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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동자도 다 안다"의 유래

작성자빙혼서생|작성시간02.08.23|조회수21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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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고탁본


척주동해비각 및 비석

- 이 비는 조선 현종2년(1661)에 삼척부사 허목[허미수] 세운 것이다.

허목(1595-1682)선생은 퇴계 이황 선생의 성리학을 물려받아 근기의 실학발전에 가교적 역할을 한 분으로 효종의 초상에 대한 모후의 복상기간이 논의되자 서인 송시열 등의 기년설을 반대하여 남인 선두에서 삼년설을 주장하다가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당시 삼척은 해파가 심하여 조수가 읍내까지 올라오고 홍수때는 오십천이 범람하여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용왕이 노했다고한다.

-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은 신비한 뜻이 담긴 동해송을 지어 독창적인 고전자체로 써서 정라진 앞의 만리도에 척주동해비를 세우니 바다가 조용해 졌다.

그후 비가 파손되어 조수가 다시 일자 숙종36년(1710) 이를 모사하여 현재의 정상동 육향산에 세워 조수를 막았다 한다.문장이 신비하여 퇴조비라 하는 이 비는 전서체에서 동방제일의 필치라 일컬어 지는 허목의 기묘한 서체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탁본을 떠서 수재를 막는 부적으로 쓰이며 아이들이 비문에 오줌을 누는등 회손하면 다리가 부러지기도해서 매우 신성시 여기는 지역 보물이다

- 그리고 허목은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처럼 작은 해일을 내가 막을 수 있으나 앞으로 오는 큰해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 해일이 오기 전에는 두타산에 큰 불이 날 것이다[강원도 산불].
그리고
해일이 몰려오면 솥을 들고 두타산 정상으로 피해야 살 것이다.

- 격암 남사고 선생이 울진에서 지은 비결

동해 100리가 물에 잠긴다는 비결과 맞아 떨어진다

-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해일이 몰려오는 개벽의 실상] 아주 작은 어린이 동자들도 다 아는 것이라 하여 "삼척동자"도 안다는 말이 나왔다고 전한다.

자 어찌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를 우리만 몰라서야 되겠는가? 이제는 개벽의 실상을 바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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