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수가 많아진다’,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란 뜻.
1. 여로보암 1세(Jeroboam Ⅰ) - 이스라엘의 분열을 주도한 자로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B.C. 930-910년). 에브라임 사람 느밧과 스루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왕상 11:26), 아비야와 나답을 낳았다(왕상 14:1; 15:25). 솔로몬휘하에서 신임받은 유능한 신복(공사 감독관)이었다(왕상 11:28).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10지파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고(왕상 11:29-40), 이에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고 했으므로 그는 급히 애굽으로 망명하였다(왕상 11:40).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 왕 때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지파를 규합하여 북이스라엘(세겜을 수도로 함)에 또 다른 왕국을 세워 왕이 됨으로써 왕국의 분열이 시작되었다(왕상 12:1-20).
특히, 그는 백성들이 남왕국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을 막고자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두고 그곳을 예배 중심으로 삼았다(왕상 12:25-33). 그리고 정한 절기를 변경하여 율법을 왜곡시켰고(7월 15일의 장막절을 8월 15일에 지키게 함), 레위인이 아닌 자로 제사장을 삼아 제사를 드리게 했고(왕상 12:31), 산당을 만들었다. 이 같은 죄로 인해, 그는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과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급격히 몰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왕상 13-14장). 하지만 그는 악행을 거듭하다가(왕상 13:33-34) 유다 왕 아비야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하나님의 징계로 최후를 맞게 된다(대하 13:20).
한편, 여로보암의 죄악은 북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반복되었고, 북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자’로 묘사되고 있다(왕상 15:26, 34; 16:19, 31; 22:52; 왕하 3:3; 10:29; 13:2, 11; 14:24; 15:9, 18, 24, 28). 그리고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는 결국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의 패망의 큰 원인이 된다(왕하 17:16, 18).
2. 여로보암 2세(Jeroboam Ⅱ) -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로서 10여 년 간 아버지 함께 통치하다가 그를 계승하여 제13대 왕이자 예후 왕조의 네 번째 왕(B.C. 793-753년)이 되었다(왕하 13:13; 14:16, 23). 특히 그는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북이스라엘 최고의 황금기를 가져온 왕이다(왕하 14:23-29). 아버지 요아스 때부터 북이스라엘은 수리아와의 싸움에서 이겨 잃었던 북방의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또 유다를 눌러 남방으로의 영토 확장에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주변국 앗수르와 아람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배경하에서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의 예언대로 ‘하맛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솔로몬 때의 영토와 흡사한 넓이의 광대한 땅을 지배하게 되었다(신 3:17; 왕하 14:25-28).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 번영 뒤에는 빈부(貧富)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모순이라는 그림자가 생겨났고, 더욱이 중근동 지역에 성행하던 각종 우상과 타락한 문화가 급격히 유입됨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영적 부패를 심화시켰다. 이에 대해 당시 활동했던 선지자 아모스는 사회 전반의 부패와 극심한 빈부의 차이(암 2:6-7), 헛된 종교적 행위(암 5:21-24; 7:10-17), 허물어져 버릴 거짓된 평안(암 6:1-8)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고(암 7:7-13), 선지자 호세아도 같은 맥락에서 여로보암 때의 죄악을 비유적으로 고발하고 있다(호 1-3장). 그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왕하 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