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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좌]

청나라 상가희장군과 삼번의 난

작성자淸巖채주옥|작성시간26.06.22|조회수1 목록 댓글 0

상가희(尙可喜)

1673년 그가 은퇴하려 했던 일이 계기가 되어 삼번의 난이 일어났다. 원래 명(明)나라의 장군이었던 그는 1634년 북동쪽에서 명나라를 침략해온 만주족의 청나라에게 충성을 돌렸다.

1644년 만주족이 명을 정복하고 청(淸:1644~1911/12)을 건국했을 때, 청의 유력한 장군이 되었다. 1649년 조정은 그에게 평남왕이라는 칭호를 주고 남쪽 광둥[廣東] 지방을 원정하게 했다. 임무를 수행한 후 그 지역에 대한 문무의 전권을 가진 번왕으로 임명 었다.

1673년 상가희가 황제에게 은퇴할 것을 상소하자 조정은 이를 허락하고 광둥을 조정의 직할지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같은 번왕인 오삼계(吳三桂:1612~78)는 남쪽의 윈난[雲南]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태 진전에 매우 놀랐다. 자신의 권력도 빼앗길지 모른다는 염려 끝에 오삼계는 반란을 일으켰으며 남부의 또다른 번왕도 이에 호응했다.

상가희는 여전히 충성을 다짐했으나 그의 맏아들이 아버지를 가두고 반란에 가담했다. 이렇게 시작되어 후일 '삼번의 난'으로 알려지게된 이 반란은 1681년에 가서야 완전히 진압되었다. 자신의 아들을 다스릴 수 없었던 그는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뒤 건강이 악화되어 곧 죽었다. 23명의 중 11명이 장군, 3명이 지방관으로 대부분 청에 충성을 바친 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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