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촌집(芝村集) 이희조(李喜朝)생년1655년(효종 6)몰년1724년(경종 4)자동보(同甫)호지촌(芝村), 간암(艮菴), 지사재(志事齋)본관연안(延安)시호문간(文簡)특기사항이정귀(李廷龜)의 증손(曾孫).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芝村先生文集卷之一 / 詩 / 德涵送馬邀余同宿。余以其方爲銓官。引嫌不赴。涵書引寒暄送馬邀來一蠧之事。獨卧無聊。口占一絶以呈。
| 林泳 | 1649 | 1696 | 羅州 | 德涵 | 滄溪 |
良晤居然失好緣。東西脉脉但書傳。從來萬事隨吾分。莫把今人比昔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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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村先生文集卷之一 / 詩 / 至日。林德涵 泳 自嶺東歸路。歷訪而去。夜坐書懷以寄。戊午。(1678,숙종4,지촌24세)
| 숙종 | 6 | 1680 | 경신 | 康熙 | 19 | 26 | 換局 이후 閔維重이 學文之士로 천거하다. |
| 숙종 | 7 | 1681 | 신유 | 康熙 | 20 | 27 | 健元陵 參奉이 되었으나 肅謝 후 곧 체직되다. |
端居保幽貞。寂寞守隩區。忽忽感歲暮。中夜起長吁。蕭條霜霰集。蕪沒荃蕙枯。胡爲蟄窮廬。欝欝乖遠圖。交親各所營。靡然共奔趍。蹙蹙何所騁。世路日崎嶇。眷言同心子。落落在海隅。相思邈難親。但覺歲月徂。今朝衡門下。征車忽暫紆。延之坐中堂。促膝仍引壺。憐我病纏綿。喜子顔敷腴。煩吝庶云祛。此德知不孤。况復値冬至。陽德昭泉塗。幾微諒難忽。一念戒或麤。相對語何窮。勖哉及張朱。日暮更解携。悵望空踟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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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집(滄溪集) 임영(林泳)생년1649년(인조 27)몰년1696년(숙종 22)자덕함(德涵)호창계(滄溪)본관나주(羅州)특기사항이단상(李端相), 박세채(朴世采)의 문인. 조성기(趙聖期), 김창협(金昌協), 이희조(李喜朝), 남학명(南鶴鳴) 등과 교유
滄溪先生集卷之十三 / 書 / 與李同甫
方擬趍宿兄所。已通於和兄矣。來札忽到。審得其家有故。難於會宿。極用驚悵。此中阻懷如山。若失今宵。後會又無定期。柰何柰何。弟每夜獨宿草堂。靜寂無異山房。兄末可枉屈耶。玆送人馬奉邀。若不遐棄。願卽惠然。昔一蠹每送馬迎致寒暄。吾儕雖不敢妄擬先賢。此亦豈非好事耶。謹掃席以待。
| 숙종 | 22 | 1696 | 병자 | 康熙 | 35 | 48 | 2월 6일, 졸하다. ○ 4월, 아우 林淨이 마침 和順 縣監에 제수되어 運柩하여 돌아가 咸平의 先塋 곁에 장사 지내다. |
| 숙종 | 26 | 1700 | 경진 | 康熙 | 39 | - | 11월, 南平 동쪽에 移葬하다. |
| 숙종 | 33 | 1707 | 정해 | 康熙 | 46 | - | 9월, 金昌協이 문집 서문을 짓다. |
| 숙종 | 34 | 1708 | 무자 | 康熙 | 47 | - | 羅州 동쪽 金牙面 傑山村에 移葬하다. ○ 5월, 南九萬이 서문을 짓다. ○ 8월, 아우 淸道 郡守 林淨이 문집 간행을 완료하고 발문을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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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村先生文集卷之十七 / 祭文 / 祭林德涵文
| 숙종 | 22 | 1696 | 병자 | 康熙 | 35 | 42 | 서연관,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상소 사직하다. |
| 林泳 | 1649 | 1696 | 羅州 | 德涵 | 滄溪 |
維歲次丙子二月丁亥朔二十四日庚戌。延安李喜朝。謹以淸酌庶羞之奠。哭祭于近故副提學林公之柩前。文以侑之曰。嗚呼痛哉。兄志大而遠。識博而邃。寧學聖賢而未至。不欲以小成自足。故於窮格工夫。用力最多。盖凡天人性命之微奧。經史百氏之浩穰。莫不剖析淹貫。各極歸趣。是其蓄貯於胷中者甚厚。所以發爲論說。亦沛然如江河之不窮。使人聽之怳然。殆莫測其涯涘。盖由兄之天姿寡欲。聡明絶倫。故其所造詣。乃能卓然如此。實非近時學者所可企及也。嗚呼痛哉。兄年十七。來自湖南。始遊我先人之門。是時兄之文名已大振矣。旋魁司馬。人爭艷稱。然兄之所自期。與我先人之所相勉。顧不在是。兄乃絶意當世。杜門自守。後雖黽勉通籍。非其志也。難進易退。在朝無幾。而及其風樹不停。荐丁大慽。則益决勇退之計。十年高卧。若將終身。此其出處始終。亦可謂無負所學矣。嗚呼痛哉。兄之昨年一出。固爲就醫。亦其眷眷憂世之心。終不敢忘。盖將左右師門。助成治道。以少塞上下之望。而天不祚宋。玄石旣歿。曾未幾何。兄又相隨而奄忽。此實時運所關。謂之何哉。余以不才。早孤失學。賴兄指導。得有啓發。然余狷狹而寡陋。兄則寬平而博洽。豈敢友乎。心實師法。惟兄不鄙。許以相長。靡言不契。見期彌重。尋常琢磨。盖不欲一日相捨。而爰自壬戌。南北便隔。千里相望。心痗首疾。待兄之來。不翅飢渴。而萬峴一夜之話。臨湍暫時之晤。皆不足以展此積懷之萬一。聞兄還自松都。又添新疾。而余亦吟病經冬。頃始就候。則兄之精神言語。已無復平日矣。抆涕歸來。寸心如燬。亦不謂其聞訃之若是遽也。嗚呼痛哉。先人不幸。抱道未試。如余無狀。旣不足以少承厥志。則其有望於兄者。實深且切。而今焉已矣。尙復何說。念兄年位出處。比之先人。旣多相類。且其欲歸未歸。遺恨無窮者。又前後一轍。則斯已可異。况君上賜藥之恩。實如先朝所以待先人者。則余尤安得不撫念今昔。觸事增痛耶。嗚呼痛哉。兄之志業。固未盡究。然觀於庚申後一䟽。則其所抱負。亦略可見矣。至於講學論事之詳。則有師友間往還書牘在焉。後之尙論者。亦可以知兄矣。噫。兄年雖短。兄名必長。視彼享壽考之樂。而與草木同腐者。其得失遠矣。尙復何言哉。惟是斯文世道之責。更無可托。而余之畸窮。將益踽踽凉凉。靡有所歸矣。抑兄有一稚兒。亦不能相見於死生之際。想兄於此。必難瞑目於九原矣。嗟呼嘻噫。聞兄旅櫬近將返葬故山。而余拘賑政。恐難祖送。玆修薄具。匍匐來哭。百年交道。畢於今日。兄如有靈。庶歆我酌。嗚呼痛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