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기원(起源)과 자의(字義)와 자형(字形)을 체계적으로 밝힌 책은 후한시대에 허신(許愼 : 서기 30~124년)이 쓴 說文解字(설문해자)』(이하 『설문)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후대의 학자들이 허신의 설문을 토대로 한자의 기원이라고 하는 은(殷) · 주(周) 시대의 갑골문자(甲骨文字)와 금문(金文 : 청동기 銘文)을 해독할 만큼, 설문은 한자의 기원과 구성을 밝히는데 있어 가장 권위있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자에 대한 가장 뛰어난 주석서라고 평가받는 청나라 때의 단옥재(段玉裁)가 지은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도 허신의 설문을 주석한 것이다.
허신이 설문에서 六書(육서)법칙에 의거해 한문의 문(文)과 자(字)를 분류함으로써 한문의 기원과 구성을 밝혀 놓았기에 먼저 문(文)과 자(字)에 관해서 살펴본다.
六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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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
① 상형(象形) |
물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 |
日 月 山 川 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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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사(指事) |
추상적 개념을 기호화하여 만든 글자 |
一 二 三 上 下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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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 |
③ 회의(會意) |
상형과 지사 등의 독립된 글자를 합쳐 새로운 뜻을 나타낸 글자 |
明 林 森 炎 學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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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형성(形聲) |
회의와 비슷하지만 한쪽은 뜻을 한쪽은 음을 나타낸 글자 |
城 柱 轉 詩 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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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字 의
활 용 |
⑤ 전주(轉注) |
글자의 본래 뜻을 연관된 뜻으로 전용한 글자 |
樂(풍류 악, 즐거울 락, 좋아할 요) 說(말씀 설, 기쁠 열, 달랠 세, 벗을 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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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가차(假借) |
음이 같거나 비슷한 뜻을 빌어다 쓴 글자. 외래어 표기 등에 많이 씀 |
可口可樂(코카콜라) 百事可樂(펩시콜라) |
△ 文은 ‘亠(돼지해머리 두)’에 ‘乂(사귈 예)’가 합쳐진 글자로 ‘글월 문’이라고 하는데 이때 글월은 옛말로 글자이자 그림을 뜻한다. 물건을 본떠서 만든 木(나무 목)․日(날 일)․月(달 월)․川(내 천)․火(불 화) 등의 상형문(象形文)이 대표적으로 문(文)에 속하는 글자이다.
문(文)에 속하는 다른 글자는 지사문(指事文)이다. 지사문은 직접 본뜰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의 단어들이다. 이를테면 上(윗 상)과 下(아래 하)이다. 일정 기준선(一)을 긋고 ‘점 복(卜)’을 위에 넣어 ‘위, 올라감’을 뜻하는 上을 만들고, 아래에 넣어 ‘아래, 내려감’을 뜻하는 下를 만들었다. 丨(뚫을 곤)을 넣지 않고 卜을 넣은 것은 올라가되 한없이 올라가지 말고 중(中)을 잡으라는 것이고, 내려가되 한없이 내려가지 말고 중(中)을 잡으라는 뜻이다.
△ 文과 짝이 되는 자(字)에는 회의자와 형성자가 있다. 뜻과 뜻이 모여서 이루어진 글자가 회의자이며, 뜻과 음이 합쳐져 이루어진 글자가 형성자이다.
林(수풀 림)․森(빽빽할 삼)․炎(불꽃 염)․學(배울 학) 등이 회의자에 속하며, 城(성 성)․柱(기둥 주)․轉(구를 전)․詩(시 시)․指(가리킬 지) 등은 형성자라고 분류한다. 회의자와 형성자는 모두 文으로부터 나온 글자(字)들인데 형성자의 경우 허신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한쪽이 음(音)이면, 다른 한쪽은 뜻인 훈(訓)을 나타낸다고 정의하였다.
△ 그 외 전주(轉注)문자와 가차(假借)문자 등은 모두 문(文)과 자(字)를 적절히 재활용하여 쓰는 글자들을 분류한 이름이라고 보면 된다.
좌양우음(左陽右陰)과 左東右西(좌동우서)
예전에 우리의 동서남북의 표시방법은 서양과는 정반대였다. 우리나라는 지구의 북반부에 위치하면서 겨울에는 눈이 내리며 춥고, 여름은 비가 많은 동시에 덥다. 또한 겨울은 해가 비스듬히 지나고, 여름은 남중하여 지나간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겨울에는 햇볕을 많이 받아들여 따뜻하고 여름에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최대한 막아 시원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했다.
이에 따라 나온 것이 남향집이며, 최대한 단열과 보온 효과를 높이기 위해 지붕의 모양은 ㅅ자형으로 만들고 처마를 길게 하며 지붕 속에는 흙을 넣었다. 그리고 출입하는 남쪽 벽의 앞문 외에 별도로 북쪽면에 뒷문을 만들어 여름날에는 열어두어 시원하게 만들었고 겨울에는 굳게 닫아두었다.
집을 남향으로 지은 것은 추운 겨울에 난방을 위해 최대한 햇볕을 많이 받아 들이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사람이 위치하는 기본 방향도 밝은 남쪽을 향하도록 하였으며 누워 잠자는 머리 위쪽도 남향하도록 하였다. 이에 崇明(숭명)사상이 들어서기 전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지도 역시 남쪽이 위로 가게 하여 그렸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아래쪽은 북쪽으로 등진 모습이 되고 왼쪽은 바로 해가 떠오르는 동쪽이 되고, 오른쪽은 해가 지는 서쪽이 된다. 요즘 학교에서 가르치는 서양식 방향 표시법과는 완전히 반대개념이다. 이러다보니 우리의 문화나 뜻글자를 이해하는데 애먹게 되는데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左陽右陰, 左東右西의 개념이 바로 서야 한다.
◑ 음양오행에 따른 左右의 개념
① 右의 口는 하늘의 밝은 양(一)에 대한 음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口는 여러 가지로 쓰이는데 입 또는 땅, 혹은 새의 둥지로 보기도 한다. 둥우리는 집을 의미하는데, 새나 사람이나 집에 들어갈 때는 해가 서녘에 기우는 저녁 무렵이므로 口는 음의 방위인 서쪽을 뜻한다. 西(서녘 서), 酉(술병 유, 열째 지지 유), 兌(서방 태), 如(같을 여) 등과 같이 口가 들어 있는 글자들은 대개 음과 관련된다. 따라서 口가 들어간 右(오른우)는 서쪽을 뜻한다.
고대 동양에서는 어두운 북쪽을 등지고 밝은 남쪽을 향하는 것을 토대로 방위를 정했다. 북을 등지고 보면 좌가 동쪽이고, 우는 서쪽인 左東右西의 방위가 정해진다. 또한 좌양우음의 배치이기도 하다.
② 左의 工은 天地(二)가 하나로 통함(丨)을 나타내므로 천지기운이 교통하여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과 의미가 통한다. 봄은 밝은 양의 기운이 발하는 계절이고 방위상으로는 왼편인 동방에 속한다. 따라서 工은 양의 방위인 동쪽을 상징하며 工이 들어간 左(왼 좌)는 동쪽에 해당하는 것이다. 左와 右의 工과 口에는 좌양우음의 이치가 담겨 있다. 陽先陰後의 원리에 따라 領議政(영의정) 아래 다음 서열은 左議政이며 그 다음이 右議政이다. 左議政을 높게 두는 것은 ‘左達承明’의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반면 공부를 익히는 학생들에게 서쪽은 완성의 단계이므로 서원(書院)에서 기숙사를 배치할 때 서재(西齋)는 선배들의 방이 되고 동재(東齋)는 생기(生氣)를 받아들여 익히라는 차원에서 신입생들의 방이 된다. 궁궐에서 태자의 궁을 동쪽에 두고 東宮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천자자연의 이치(易)를 본받은 유학사상 : 四德과 五常
『논어』는 문장 자체가 매우 간결하여 내용이 압축적이고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詩經』『易經』『書經』의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易經』은 공자가 유학사상의 모태로 삼은 경전인데다, 공자 자신이 십익전을 지어『주역』을 완성하였기에, 공자의 사상이 집약된 『논어』에는 『주역』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유학에서는 하늘이 대자연이라면 사람은 소자연으로, 하늘이 대우주라면 인간을 소우주로 본다. 이에 군자는 마땅히 대자연의 德과 道를 따르고 본받아 살아야 한다고 본다. 『주역』은 대자연이 음양의 이치에 운행된다고 보고 이에 따라 소우주인 사람도 음양의 이치에 의해 살아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를『주역』계사전에서 ‘一陰一陽之爲道(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순환반복의 이치를 일컬어 도라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주역』乾괘에서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스스로 굳건하게 하여 쉬지 않고 노력한다 : 天行이 健하니 君子 以하야 自彊不息하나니라)’라고 하였다.
『주역』의 괘사를 쓴 周나라 문왕은 음양의 이치에 의한 하늘의 春夏秋冬(춘하추동)과 땅의 生長收藏(생장수장) 원리를 天道의 四德인 元亨利貞(원형이정)으로 나타내었다. 공자가 이를 사람의 仁義禮智(인의예지) 四德 사상으로 정리하였다.
맹자는 이를 四端(사단)인 惻隱之心 · 辭讓之心 · 羞惡之心 · 是非之心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과 五倫(君臣有義 · 父子有親 · 夫婦有別 ·長幼有序 · 朋友有信)으로 발전시켰다.
주자는 ‘원형이정은 하늘의 떳떳함이고 인의예지는 인성의 벼리니라(元亨利貞은 天道之常이요, 仁義禮智는 人性之綱이라’고 하였다. 이 四德에 信을 붙여 사람이 떳떳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이라 하여 五常이라고 한다. 四德과 四端 및 五倫과 五常은 유학의 핵심사상이 되었다.
『주역』에서 ‘元亨利貞’ 四德중에 으뜸은 元인데 元은 봄과 동쪽을 상징하며 仁德을 나타낸다. 이에 봄은 사계절의 머리이며, 仁은 인의예지 四德의 핵심이자 머리이다. 중천건괘는 仁을 모든 善 가운데 어른이 된다(善之長也)고 하였다.
한자를 올바로 공부하기 위해서나 『논어』를 제대로 해득하기 위해선『주역』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한다.
‘天道(천도)는 虧盈而益謙(휴영이익겸)하고
地道(지도)는 變盈而流謙(변영이류겸)하고
鬼神(귀신)은 害盈而福謙(해영이복겸)하고
人道(인도)는 惡盈而好謙(오영이호겸)하나니라’고 하였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여 겸손한 데에 더하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여 겸손한 데로 흐르게 하고,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롭게 하여 겸손함에 복을 주고,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여 겸손함을 좋아하나니라.)
盈은 지나치게 가득찼다는 뜻이다. 이에 보름달을 표현할 때 盈자를 써서 盈月이라 하지 않고,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이 밤새도록 환히 비춘다는 뜻의 望月(망월)이나 물이 가득 찼다는 뜻의
滿자를 써서 滿月(만월)이라고 한다. 물이 만조가 되면 다시 썰물이 되어 밀려나가듯이 달도 차면
다시 이지러지기에 보름달을 滿月이라고 하는 것이다.
滿자는 보름달일 때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이가 매우 커 조수가
해안 깊숙이까지 밀려들어와 찬다는 뜻이다. 물론 그믐달일 때도
보름달 때와 마찬가지로 만조(滿潮)가 되나 그믐달은 어둡기에 회현(晦弦)달이라고 한다.
◎ 盈과 益:유익(有益)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더할 익(益)’은 盈처럼 수북이 쌓인 모습이 아니다.
물이 차면 넘쳐 흘러 주변을 적시듯이 益이란 글자는 그릇에 물이 가득 차면 넘치는 모양이다.
차야 남에게 보탤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