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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을 그리며

작성자임한율(월파)|작성시간26.06.22|조회수27 목록 댓글 0

 

어머님을 그리며 / 이O순

 

‘이별’이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고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오죠.

특히 반평생 이상 생사고락을 함께한 어머님과의 이별은 나에겐 세상을 잃은 듯한 큰 아픔이었습니다.

나에게 어머님은 평소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었고 또한 아픔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려서는 국민학교 교사로 단아함과 품격을 지닌 분으로 존경하였고, 커서는 항상 나를 염려 걱정하는 모습에 한없는 사랑을 느꼈죠.

 

그러나 내가 결혼한 후 저의 삶은, 늘 경제적인 어려움과 남편의 까탈스러운 성격 탓에 너무나도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나 IMF가 터지면서 적은 봉급에 상여금까지 반납하게 되면서 회의를 느끼고 퇴직을 좀 일찍 하였지요. 그리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부동산사무실을 개업하였으나 경험도 부족하고 적은 금액으로 사무실을 얻다보니 잘되지 않아 5년 만에 접었지요. 그 후 지인의 부동산에서 근무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다니던 부동산도 그만두고 지내던 중, 오빠가 어머님 명의의 청약저축으로 APT가 당첨되어 살던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되었죠. 그래서 어머님은 내가 살고 있는 마석 연립주택에 전세로 이사를 오셨지요. 난 매일 오가며 어머님을 돌봐드렸는데 치매증세가 있는 것 같아 검사받은 결과 치매(癡呆) 초기진단을 받으셨어요.

처음에는 치매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답니다. 늘 단아하고 고우시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리셨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단아하시던 모습은 증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허물어지고 마냥 약하시고 계속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내 마음도 병들어 가는 것 같았지요.

증세가 날로 더 심해져 마침내 어머님과 합가를 하게 되었죠. 당시 신장이 좋지 않아 투석을 받던 남편과 어머님, 두 환자를 돌보느라 정말 힘들고 지쳐갔지요. 시간은 흘러 어머님은 밤에 도무지 주무시지 않고 새벽 두세 시에 방문을 두드리며 “야, 밥은 안 먹느냐?” 하시며 냉장고와 밥솥을 열어보고 계속 엉뚱한 말로 잠을 잘 수 없게 하셨죠.

그러던 중 남편이 12년간 투석을 받던 중 병세가 심해져 4년 전 세상을 떠났지요. 나는 계속 어머님을 돌보아 드렸는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로 건강이 극히 나빠졌지요. 그래서 어머님을 계속 모시기 힘들어 오빠와 상의 끝에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머님께 커다란 불효(不孝)를 저지르는 같아 죄송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요양원에 어머님을 뵈러 갈 때마다 나를 간절히 바라보시며, “나 너네집에 가 살면 안 되니?” 제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셨죠.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님께서 폐렴으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시고, 4일째 되던 날 설을 하루 앞두고, 향년 98세로 이 세상과 영영 하직하셨습니다.

어머님과의 이별은 내게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슬픔과 생전에 잘못해 드린 것만 생각나는 고통이었죠. 혼자된 텅 빈 마음으로 보내는 하루하루, 이제는 질병도 고통도 없는 천상에서 평온한 나날 보내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 어머니!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진정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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