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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감사

지금 보기 드문 아름다운 청년

작성자yiso|작성시간25.04.09|조회수122 목록 댓글 0

지금 보기 드문 아름다운 청년

 

며칠 전 어느 청년으로부터 용서를 비는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실수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지난달에 통장에 돈이 없어서 돈이 안 빠져 나갔어요! 몇 번 안 빠져 나갔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요?”

 

마음이 무척 상한 음성이었고 숨이 넘어가는 듯 다급하였다.

 

“윤진아,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선생님, 이제 통장에 돈 있어요. 그 동안 안 빠져나간 것 다 빼가세요.”

“알았어. 전화 주어서 고맙다.”

“선생님, 근데 샤론이에게 지난달에 돈 주었어요? 안 주었어요?”

“주었지.”

“어떻게요?”

“송금이 어려워서 일 년 분을 한꺼번에 보냈거든.”

“그럼 샤론이도 생활비 받은 거지요?”

“물론 받았지.”

“아이고! 다행이다. 선생님! 감사해요. 밀린 돈 빨리 빼 가세요.”

“알았어. 그렇게 할게. 윤진아! 직장에는 잘 다니고?”

“예 선생님!”

“내가 연락하고 한번 놀러 갈게.”

“예,  선생님.”

 

전화를 끝내는 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결연 아동에게 보내는 후원금이 중단되어 아이가 돈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파하는 청년의 마음이 절절하였다. 아동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돈을 제 때 보내지 못한 자신을 책하는  청년의 순수와 사랑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년이어서 나를 더욱 울렸다.

 

나에게 허겁지겁 전화를 건 청년은 아기였을 때 고열(高熱)로 뇌 손상을 입었다.

그는 세상에 건강한 아기로 왔으나 고열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지만 뇌 손상을 입었고 그로 말미암아 지적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의 꾸준한 노력과 열심, 인내와 정성으로 특수 장애인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학교 교육과 훈련 덕분에 기본적으로 자기를 관리하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뇌 손상으로 말미암아 이해도 느리고 말도 느리고 동작이 굼뜨다.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그는 일반 직장에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장애인 사업장에 다니고 있다. 작년 가을까지는 물티슈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하였는데 지금은 어느 빌딩에서 유리창 청소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지적 장애인 임에도 부모님이 결연으로 고아들을 돕는 것을 보고 자신도 고아를 돕고 싶어 하였다. 우리는 그의 원함대로 그의 고아들과 빈민 아동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좋은 열매를 맺도록 결연을 맺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무책임하거나 가볍게 생각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최소한 3년은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바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약속을 성실하게 잘 지키고 있다.

 

몇 년 전에 K시에 있는 어느 교회를 찾아갔다.

특별히 연고가 있는 교회가 아니었고 어느 여신도회 연합회 행사에 갔을 때 처음 보는 권사님이 친절하게 맞이하며 K시에 있는 자기 교회를 방문해 주라고 요청하하므로 엉겁결에 대답을 하였고 그 약속을 지키고자 교회를 찾아 간 것이었다.

교회에 10시 20분경에 도착하였는데 몸을 둘 곳이 참으로 어정쩡하였다. 교우들이 성가대 연습, 어린이 지도, 점심 식사 준비, 예배 준비 등으로 분주하므로 나는 누구도 방해하고 싶지 않아 1층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예배 장소로 바로 올라 갈 것인가? 아니면 나가서 시내를 배회하다 다시 올 것인가를 생각하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 때 나이 가눔이 어려운 키가 나보다 작고 몸집이 퉁퉁 비만인 청년이 다가 와서 “어디서 오셨어요?”, “우리 교회에 처음 이지요?”, “누구를 보러 오셨어요?”라고 연거푸 친절하게 물었다. 장애인이라는 감이 들어 피하고 싶었지만 내가 외부인인 것을 금방 파악한 것이 대견하여 “아무개 권사님 보러 왔어요.”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그가 바로 “어어! 그 권사님이 우리 엄마여요.”라고 하며 나를 데리고 성가 연습을 하고 있는 권사님께로 갔다.

그 뒤로 나는 부모님들의 초청으로 그와 함께 외식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부모님들과 함께 부안과 줄포, 곰소에도 갔다. 그리고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 권사님들과 함께 무한 리필이 가능한 뷔페에 가서 포식하며 그에게 돈을 내게 만들었다. 지평선 축제에도 함께 가서 하루 종일 걸으며 군것질 하며 구경하였다. 이렇게 지내며 친해졌을 때 그는 결연을 맺어 한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였다. 청년의 의지와 아름다운 생각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나는 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지 않았다. 자기 삶을 책임지기도 버거운 청년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님이 적극 권하였으므로 아름다운 영혼의 청년에게 첸나이에 사는 빈민가정의 5,6세 아동인 샤론과 결연을 맺어 주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그를 만났는데 그가 대뜸 나에게 “선생님, 우리 샤론이 잘 있나요?” 라고 물었다. 몹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18년 동안 결연 사역을 했지만 한번도 그런 인사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였다. 대부분의 결연자들이 결연 아동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고아와 빈민 아동 또는 장애 아동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결연아동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피붙이를 대하듯 애정 어린 자세로 아이의 안부를 물어 온 것이었다. 그의 자상한 질문이 '장애인은 타인에게 무관심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선입관과 편견, 무식과 고정관념을 팍팍 깼다.

 

그 후 그의 새 일터에서 열린 바자회에 그의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 두 분과 함께 가서 오뎅 국물과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꽃 피고 새우는 따스한 날에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이제 며칠 전에 받은 샤론이의 사진을 가지고  나의 고정관념과 무지를 팍팍 깨며 나를 울린 청년,  지금 보기 드문 아름다운 청년과의 약속을 지키러 가야겠다.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이 봄에 그가  더 사랑받으며 더 행복하기를 빈다.  

'사랑하므로 행복한 청년에게 복이 있다. 천국은 그들의 것이다'고 말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

 

2025년 4월 9일 수요일 축시

우담초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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