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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감사

참새를 쫓는 방법- 영감으로 되어진 일

작성자yiso|작성시간26.06.22|조회수70 목록 댓글 0

참새를 쫓는 방법 - 영감으로 되어진 일 

 

우리 집은 마을에서 농사를 많이 짓는 축에 속하였다. 나는 맏이로서 농사일에 언제나 동원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모심기 철에는 뒤 모쟁이를 하고 모심기가 끝나면 뜬 모를 다시 심는 어머니 뒤를 따라 다니기도 하였다. 모심기 이후로 서너 번의 농약을 뿌리는 데 어머니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농약 주는 날로 잡아 나와 오빠를 농약주기에 동원시켰다. 내 일은 줄을 끌고 농약을 뿌리는 아버지 뒤를 따라 다니며 줄이 꼬이거나 땅겨지는 일이 없도록 보조하는 일이었다. 농약을 주고 나면 전신이 진흙투성이가 되었으나 나는 아버지 뒤에서 줄을 당기거나 늦추는 일을 즐겨하였다. 당시 유행하는 농약기계는 펌프식이었고 펌프질을 통하여 커다란 물통에 담긴 농약이 줄을 타고 살포기를 통하여 분무되는데 줄이 꼬이면 농약이 나오지 않았다. 줄을 빨리 잡아당기지 않으면 아버지가 뒷걸음질 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줄을 너무 많이 당겨 놓으면 줄의 무게에 아버지가 휘청거렸다. 어머니의 할당으로 시작된 줄잡기 역을 이십대 초, 집을 떠날 때까지 계속하였는데 지금도 아버지 뒤를 따라 가끔 줄을 잡는 꿈을 꾼다.

농약 주기가 끝나면 8월 15일, 광복절을 전후하여 보름 정도 새보기가 시작된다. 기억의 창고에 의하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새보기를 시작하였다. 아침 여섯시가 되면 어머니가 나를 깨웠다. 아버지의 밀짚모자를 쓰고 손목까지 닿는 어머니의 작업복, 발목까지 내려오는 월남치마를 입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가마니 한 장을 들쳐 메고 찢어진 옷가지가 펄럭거리는 긴 장대를 들고 대문을 나서면 나는 영락없는 거지였다. 그래도 항상 책 두어 권을 옆구리에 끼고 갔다.

 

제남리와 가전리 앞을 지나 유강 2구 쪽으로 흘러가는 대농수로  1백여 미터 앞 정도에 있는 우리 논에 도착하면 새들에게 '새지기'인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논길을 한 바퀴 빙 돌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무서운 놈이 왔다.  근처에 얼씬 거리지 마라. 잘못 걸리면 혼난다!" 참새들에게 우리 논에 올 생각을 하지 마라는 경고를 날린 후에 리어카길로 만들어진 큰 농도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책을 읽거나 동요와 어린이교회학교에서 배운 찬송가를 시들어지게 불렀다. 그리고 장엄하게 기도를 바쳤다. 나는 가끔 지금 나의 삶이 그 때 바친 기도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깨달으며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당시 십대 초의 시적 감수성으로 신선한 아침의 정경, 위대한 자연에 몰입하여 곧잘 시를 썼다. 그러나 기도와 묵상 중에도 새들의 기척이 느껴지면 용사처럼 장대를 휘두르며 논길을 달렸다. 이런 새보기 순회를 몇 번 반복하면 9시가 되었다.

보통 9시면 어머니가 오셔서 장대를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때로는 10시가 넘어도 오지 않으셨다. 그 정도면 집에 갈 생각으로 딴전을 피우게 되는데 그러면 어머니는 용케도 그런 상황에 도착하여 "새가 너를 본다."고 야단을 치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논으로 항하였다. 부지런한 참새 떼들이 마을 입구에 있는 유강리 김씨 아저씨네 논에서 마구잡이로 입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새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지! 새들아, 니들도 밥을 먹어야 살지. 근데 이 논에서만 먹지 말고 흩어져서 다른 논에 가서 먹어라. 그래야 너희들도 쫓기지 않고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잖니? 한 논에서 많이 먹으면 논의 주인이 피해를 입었다고 화를 내고 너희들을 쫓을 수밖에 없어. 그러면 너희들이 다른 논으로 도망치고 다른 논의 주인이 또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너희들은 계속 쫓겨 다니게 되잖아.”

 

그러자 참새들이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흩어져 다른 논으로 갔다.

우연의 일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들의 흩어짐에 감동을 받았다. 그 때 그 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새들의 배고픔을 생각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깨달음이요, 영감이었다. 하루 한 줌 먹이로 족하는 작은 새들에게 우리 사람들이 너무 인색하고 너무 잔혹하고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고 죄송하였다. 송구한 마음을 여미며 여느 때처럼 논길을 걸으며 말을 건넸다.

 

“새들아, 미안하다. 니들도 밥을 먹어야 사는데 그 생각을 못하였어. 너희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너희에게 따로 양식을 주지는 못할망정 힘으로 쫓아내기만 했던 나를 용서해다오. 이제 겸손히 너희 또한 함께 살아야 하는 소중한 생명이요, 친구임을 인정한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들어다오. 부디 떼 지어 다니지 말고 몇 마리씩 움직여라. 그리고 이 논 저 논 골고루 돌아다니며 먹어라. 한 집 논의 벼 이삭이 몽땅 하얗게 뜨물이 잡히고 쭉정이가 되면 사람들이 너희들의 소행을 괘씸하게 여겨 잡으려고 혈안이 된다. 너희들이 내 말을 들으면 앞으로 밥을 먹다가 쫓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골고루 흩어져서 평안히 밥을 먹어라. 새들아, 그 동안 우리 인간의 등쌀과 소인배적인 탐욕적인 행위에 화를 내지 않고 살아 주어서 고맙다.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거짓말처럼 떼지어 다니던 참새들이 흩어졌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새를 쫓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8월 15일, 광복절이 되면 어머니의 요구대로 여전히 밀짚모자를 쓰고 가마니 한 장 들고 헝겊 조각이 펄럭이는 긴 장대를 메고 들판으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 찬송과 기도를 바쳤다. 때로는 웅변을 토하며 예수님 흉내를 냈다. 새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는 말씀을 들려 주었다.

그 후 우리 논이 참새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하여튼 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사랑하였고 하나님께서 사람들보다 먼저 만드신 새들을 친구로 여겼다. 이 경험으로 말미암아 나는 동물과 식물에게 말을 거는 버릇이 생겼고 외국에서 나그네로 살며 홀로 광야 길을 걸을 때 풀과 나무들에게 말을 걸으며 용기를 내곤하였다.

 

어쨌든 나는 일찍부터 참새 쫓기를 하면서 대지의 딸로 자랐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아침 시간에 벼 한포기 한포기를 친구로 생각하며 말을 건넸고 나의 속생각을 토로하였다. 대지는 나의 노래, 찬양, 기도 그리고 웅변에 귀를 기울이며 열렬히 반응하였다. 나의 시적 감수성, 상상력, 감정이입, 생명에 대한 관심, 작은 것들에 대한 애정, 기후와 자연에 대한 신뢰와 감사 등은 그 때 하나님께서 새지기인 어린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렵고 힘들 때 들판을 그리워하며 논길에서 서성거린다. 문제가 복잡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들길을 거닐며 무아지경에 빠진다. 지금도 고향의 들판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거룩한 땅으로 나의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지금도 8월 15일 광복절 무렵이 되면 모든 들판이 참새를 쫓는 온갖 소음으로 요란하다.

참새를 함께 살아야하는 우리 이웃으로, 친구로 맞이하는 시대의 대전환이 오는 날을 기다린다.

 

2026년 6월 22일 월요일 신시 

우담초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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