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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6/21 주일설교 - 믿음을 보이며 살아야

작성자오승훈목사|작성시간26.06.21|조회수15 목록 댓글 0

믿음을 보이며 살아야
약 2:14~26

1.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
  1)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자신의 공로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선포했다(롬 3:28). 인간의 어떤 노력도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는다.
  2) 야고보 역시 이 진리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야고보가 문제 삼은 것은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짓된 신앙이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단지 머리로 동의하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삶이 어떠하든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러한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3)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행위를 거부한 것이고, 야고보는 구원받은 자의 ‘결과’로서의 행위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도의 메시지는 모순이 아니라,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상호 보완적인 진리이다.

2.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참된 믿음
  1)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여기서 행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행함은 구원의 결과이며 증거이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기 때문에 사과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과를 맺는다. 마찬가지로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의 변화와 선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2)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믿음이 뿌리라면 행함은 열매이다. 믿음이 생명이라면 행함은 그 생명의 표현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삭을 바치는 순종 가운데 나타났다. 라합 역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다. 그들의 행위가 구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믿음이 행위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3)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주일에만 신앙을 고백하고 삶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면, 야고보의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라는 이 질문 앞에서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믿음이 예배당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또한 가정과 직장, 교회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통해 그 믿음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3. 믿음을 보이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
  1) 지적인 동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해서 살아 있는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심지어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고 말하였던 것이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머리로 알고 두려워 떨지만 우리는 그것을 ‘구원받은 신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고백은 귀신의 믿음과 다를 바 없는 ‘죽은 믿음’이다.
  2) 17세기 네덜란드 제2종교개혁의 신학자들은 이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그들은 교리가 단지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을 경계했다. 특별히 빌헬무스 아 브라켈은 참된 믿음이란 단순한 교리적 동의가 아니라 성령께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삶 전체를 새롭게 하시는 역사라고 가르쳤다. 참된 믿음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믿음이다.
  3) 그러므로 성도는 단지 바른 교리를 아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바른 교리는 반드시 바른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믿음은 성화를 향해 나아가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회개하며 순종하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믿음의 증거이다.

4. 이 말씀을 대하는 오늘의 성도들로서
  1)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나타나야 한다.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되고, 행함은 믿음 위에서만 올바른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는 단지 믿음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라고 질문해 보아야 한다.
  2) 작은 순종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살아서 역사하는 ‘살아 있는 믿음’, ‘온전한 믿음’임을 세상에 증거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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