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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기 그리스 졸업여행 4일차 : 코린토(260512)

작성자임재호/안양/23|작성시간26.06.11|조회수145 목록 댓글 0

코린토 - 아크로코린토 성 - 켕크레애

코린토

코린토(그리스어: Κόρινθος)는 고대 그리스도시 국가로, 펠로폰네소스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이어주는 코린토스 지협에 자리 잡아 아테나이스파르타의 대략 중간 지점에 있는 나라였다. 오늘날 코린토 시는 고대 코린토스 유적과 대략 북서쪽으로 5km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코린토스는 신약성서에서 사도 바울이 보낸 첫 번째, 두 번째 편지로 잘 알려졌다. 또한 사도 바울의 선교 활동의 일부로 사도 행전에서도 언급된다.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이야기》의 제2권은 코린토를 중점으로 다룬다.

고대 코린토는 기원전 400년에 인구 90,000명을 지닌, 고대 그리스의 거대하고 중요했던 도시 중 하나였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146년에 코린토를 파괴하고, 기원전 44년에 그 위치에 새로운 도시를 세웠으며, 이후 코린토 현의 현도가 되었다. .From 위키백과

코린토 일일투어 버스 탑승장

아테네 투어 버스 정류장

코린토 투어 버스

코린토 운하 옆 휴게실

휴게실 앞 열대나무

코린토스 유적

코린토스 유적지는 고대 도시의 중심부와 산정에 있는 요새·신전이 함께 남아 있는 형태로, 아폴로 신전과 아고라 주변의 유적이 대표적입니다.

운하를 지나 유적지로 들어가면 박물관, 아폴론 신전, 사도 바오로 연설터(비마) 등 핵심 포인트를 중심으로 둘러보는 동선이 효율적입니다.From Chat GPT

코린토 유적지

아폴론 신전

코린토(고린도) 고대 유적지의 아폴론 신전은 그리스에 현존하는 신전 중 가장 오래된 편에 속하며, 도리아식 기둥 유적이 대표적으로 남아 있는 명소입니다. 원래 38개의 도리아식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대부분 유실되어 7개(자료에 따라 6개로도 언급) 정도만 남아 당시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From Chat GPT

신전 안내판

아폴론 신전1

아폴론 신전2

아폴론 신전3

시지프스산

그리스의 아크로코린토스 는 흔히 “시지프스의 산”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고대 코린토스의 왕이었던 시지프스 와 관련된 전설 때문에 유명합니다.

시지프스는 신들을 속이고 인간에게 비밀을 알려준 죄로, 죽은 뒤 끝없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는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 했지만, 정상에 거의 도달하면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이 일을 영원히 반복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바로 “시지프스의 형벌”입니다.

이 전설 때문에 코린토의 높은 산성인 아크로코린토스가 시지프스의 산으로 전해집니다. 실제로 이 산은 해발 약 575m의 거대한 바위산 위에 세워진 천연 요새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파르고 험합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이 산을 보며 시지프스 신화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고 합니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 는 『시지프 신화』에서 이 이야기를 인간 삶의 부조리와 끊임없는 도전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From Chat GPT

시지프스산

유적

사도 바오로

바오로(Paul, 고대 그리스어: Παῦλος 파울로스, 라틴어: Paulus 파울루스, 공동번역성서), 바오로(천주교), 바울(개신교)는 초기 기독교사도로, 신약성경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바오로 서신을 저술한 인물이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서 그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앞장서서 박해하였으나, 예수의 음성을 들은 이후 회심하여 이후 기독교의 초기 신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회심하기 전의 이름은 왕의 이름인 '요청받은 자'라는 뜻의 '사울'(שָׁאוּל)이었다.

바오로는 초기 기독교를 이끈 뛰어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교의를 전하려는 열정으로 아프리카(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를 돌아다녔다.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닌 그의 선교 여행과, 신약성서 27개의 문서 가운데 13편에 달하는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서들은 초대교회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그는 자신이 선교 여행 중에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유대인에게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배가 파선했다. 그렇게 그는 유대교와 구분된 기독교를 확립했고, 그 교회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바울의 열정은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가에 대해 구약성서를 근거로 변증하는 지성적인 신앙에 뿌리를 두었다. 바울로 신학 및 서신은 기독교 교리와 역사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커서 혹자는 '예수가 없었다면 바울로도 없었겠지만 바울로가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다.'라고 평하기도 한다.From 위키백과

사도 바오로가 활동 했던 곳

사이프러스 나무

그리스 건축의 기둥 양식을 보여 주는 야외 박물관

도리아식 : 민무늬

이오니아식 : 양머리 무늬

코린트식 : 아칸서스잎 장식

박물관 뒷면

고고학 박물관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은 그리스 코린토(Corinth)에 있는 박물관이다. 건축가 스튜어트 톰슨(W. Stuart Thompson)이 1932년 완공한 것으로 세 개의 전시실과 대형 뜰로 구성돼 있다. 코린토에서 발굴된 조각, 도자기, 선사시대의 유물들은 두 개의 주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다. 제3전시실에 소장된 아스클레피온(Asklepieion)에서 출토된 테라코타는 예약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선사시대로부터 헬레니즘을 거쳐 비잔틴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장품으로는 기원전 6세기경의 <대리석 스핑크스>,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의 아들로 추정되는 <젊은이의 대리석 초상>, <디오니소스의 머리가 장식된 모자이크>, <비잔틴 꽃병>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of Corinth]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전시관)

머리가 없는 석상

석상에 머리부분이 없는 이유

1. 전쟁과 약탈 때문

고대 코린토스는 여러 차례 전쟁과 침략을 겪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146년 로마군이 코린토스를 파괴했을 때 많은 신전과 조각상이 부서졌습니다. 이후에도 지진과 약탈이 반복되며 머리 부분이 가장 쉽게 떨어져 나갔습니다.

2. 기독교 시대의 우상 파괴

로마 후기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이교 신전과 신상들을 우상숭배의 상징으로 여겨 훼손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신의 얼굴이나 머리를 제거해 “신적 권위”를 없애려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3. 자연 풍화와 구조적 약점

대부분의 고대 조각상은 목 부분이 가장 약한 구조입니다.

수천 년 동안: 지진, 낙하, 풍화, 이동 과정 손상 등이 반복되면서 머리가 먼저 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발굴 현장에서는 몸통과 머리가 따로 발견되는 사례가 흔합니다. 학자들은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라, 전쟁·종교 변화·자연 훼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From Chat GPT

유물

스핑크스

각종 인물상

청동 투구

모자이크 벽화

유물

벽화2

벽화3

박물관 정면

점심 먹었던 곳

아크로코린토 성

아크로코린토(Acrocorinth)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고대 요새 도시로, 고대 코린토스 위쪽의 거대한 바위산 정상에 세워진 천연 요새입니다. 해발 약 575m 높이의 산 정상에 자리해 코린토스 평원과 코린토스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며, 고대부터 군사·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 거점이었습니다.

아크로코린토의 역사

아크로코린토는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특히 고대 그리스 시대와 비잔틴·오스만 시대를 거치며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코린토 도시국가의 핵심 방어 거점이었으며,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무역로를 통제하는 중요한 위치이며,정상에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마케도니아와 로마가 이 지역을 장악하며 군사 요새로 활용했고, 로마 시대 코린토스는 국제 무역도시로 크게 번영했습니다. 성벽과 방어시설이 대대적으로 보강되었고, 십자군과 오스만 제국이 번갈아 차지하며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 남아 있는 성벽 대부분은 중세 시대에 증축된 것입니다.

구조와 특징

아크로코린토는 자연 암벽 위에 세워진 거대한 산성 형태입니다.

여러 겹의 성벽과 방어문 , 좁고 가파른 진입로, 산 정상의 우물과 저장시설, 넓은 전망대와 감시 지점 특히 성문은 적의 침입을 어렵게 하기 위해 굴곡진 형태로 설계되었습니다.From Chat GPT

아크로코린토 성 안내문

성 입구로 올라가는 길

지중해와 성

관람 안내문

원경1

원경2

입구

입구에서 바라본 안쪽 모습

원경3

원경4

원경5

켕크레애

켕크레애(Cenchreae)는 고대 켕크레아 항구로, 코린토의 동쪽 항구였습니다. 코린토가 두 바다를 연결하는 전략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겐크레아는 에게해와 소아시아 방면 무역의 중심 항구 역할을 했습니다. 반대로 서쪽의 레카이온 항구는 이오니아해와 이탈리아 방향을 담당했습니다.

켕크레애는 단순한 무역항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8장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가 이곳에서 배를 타고 에페소로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로마서》 16장에는 켕크레애 교회의 여성 집사였던 포이베가 언급되어, 당시 이미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 켕크레애 유적은 현대 지명 케크리에스(Kechries) 부근에 남아 있으며, 바닷속 방파제 흔적과 항만 구조물이 발견됩니다. 특히 수중고고학 조사에서 초기 기독교 시대의 교회 유적과 모자이크도 출토되어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From Chat GPT

안내문

켕크레애 항구 안내도

사도 바오로와 코린토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선교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바오로은 제2차 선교여행 중 코린토스를 방문하여 약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코린토 교회가 세워졌고, 이후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가 기록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Paul the Apostle 은 아테네 선교 후 남쪽의 코린토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코린토는 로마 제국의 상업 중심지로, 동서양 무역이 모이는 국제도시였으며, 항구와 시장이 활발했고 다양한 민족과 종교, 철학이 공존하던 도시였습니다. 바오로는 이곳에서 유대인 출신 천막 제작자 부부인 Aquila 와 Priscilla 를 만나 함께 생활하며 일했으며, 생계를 유지하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설교했습니다.

코린토는 부유했지만 도덕적으로 매우 혼란한 도시로 알려졌으며, 바오로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십자가의 복음”을 중심으로 선교했습니다. 특히 그는 인간의 지혜나 화려한 수사보다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오로 코린토 서간

사도 Paul the Apostle 의 코린토 서간은 신약성경에 포함된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와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를 말합니다.

이 편지들은 바오로가 그리스의 국제도시였던 Corinth 교회에 보낸 것으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문제와 신앙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코린토전서의 내용

코린토전서는 교회 내부의 여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당시 코린토 교회에는 신자들 사이의 파벌과 분열, 도덕적 문제

우상 숭배 문제, 예배와 성찬의 혼란, 영적 은사 갈등 등이 있었습니다.

바오로는 교회가 세상의 가치보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특히 가장 유명한 부분은 13장의 “사랑장”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

또한 15장에서는 예수의 부활과 인간의 부활 희망을 설명하며 기독교 부활 신앙의 핵심을 제시합니다.

코린토후서의 내용

코린토후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편지입니다.

바오로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도로서의 진정성을 설명하며, 참된 신앙은 권력이나 화려함이 아니라 “고난과 섬김”에 있다고 강조했고, 이 편지에는 바오로의 선교 여행과 고난, 약함 속의 하느님 은혜, 용서와 화해, 가난한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입니다.

바오로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사랑, 공동체 일치, 부활 신앙, 섬김과 희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From Chat GPT

 

항구 유적

항구 유적2

옛 항구 모습

항구 입구

항구 유적3

파란 하늘과 푸른 지중해 구분이 모호합니다.

지중해 핀 꽂

아테네 지하철 역사 안내도

아테네 지하철

아테네 식료품점

아침 08:10 제우스 신전 앞에서 출발한 일일 투어 버스는 약 70km 떨어진 코린토 까지 2시간 소요 되었습니다. 여기도 평일 교통체증이 심한 곳입니다. 중간 휴식장소에서 코린토 운하를 보아야 하는데, 모두를 놓쳤습니다. 이어서 도착한 코린토 유적지에는 아폴론 신전과 초기 사도 바오로가 활동한 장소로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유명한 코린서 전서와 후서가 쓰여진 곳으로 기독도 성지 순례지로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켕크레애는 성경에도 나오는 지명으로 이렇게 조그만한 항구가 아직도 유적으로 유지 보존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근처 아크로코린토는 옛 유럽의 산성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나라의 산성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켕크레애에서 본 지중해는 푸른색과 달리 짓푸른 남색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아테네 지하철도 타 보고, 근처 식품점에서 식재료를 구입하여 맛있는 저녁을 지어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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