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연천의 비무장지대 경계초소(GP)에서 있었던 김동민 일병의 총기난사로 8명의 사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온 사회가 시끌벅적하다. 자식을 군에 보내고 무사히 제대하여 사회에 복귀하기를 바라던 희생자들과 김일병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그 충격과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병사들과 부모들, 이 사건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에게 심심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멀쩡한 병사가 동료들이 자고 있는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40여발을 발사하여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이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군대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 해 본다.
이런 사건이 왜 일어났을까?
김일병이 게임오락과 만화를 즐겨 보아 왔고, 소위 말하는 리셋(reset)증후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군대내의 상관의 폭력에 대한 반항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김일병의 정신상태에 원인이 있다는 이들도 있는 등 그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일면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원인은 한국군대의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고 본다.
50년이 넘도록 유지되어온 우리나라 군대가 이제는 변화되어야 한다는 경종으로 이해한다.
우리나라 군대는 대부분의 젊은이들과 부모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젊은 시절 3년(지금은 2년정도)이란 시간을 폐쇄되고 억압적인 곳에서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거역도 못하고(거역하면 징역형이나 향후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입대한다. 심지어는 입대를 합법적으로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오죽하면 신의 아들(군면제)이니, 장군의 아들(단기병)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났겠는가?
더군다나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다. 힘 없고 빽없는 서민들의 자식들이 체념하고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화해와 통일의 사회 분위기는 우리나라 군대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우리나라 군대는 북한군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과거 남북이 극한 대립을 하고 있을 때 우리군은 북한의 공격으로 부터 나라와 사회, 가족을 지킨다는 절박한 감정이 있었다. 자신이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이 낭비가 아니라 애국이요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교류는 활발해지고 있고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금강산 관광을 다녀올 정도로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풀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뿔달린 도깨비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동포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주적을 미국으로 설정하고 있다. 지금 북핵문제로 북미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속에서 북한군은 오히려 조국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군복무에 자원해 나선다고 한다.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군대는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이전 70,80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그 변화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 몇년간의 공백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손실이다. 가뜩이나 취업문제, 진학문제 등으로 젊은 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가?
군대가 사회와 격리되어 구시대적 문화잔재들이 만연한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군대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시대와 사회의 현실에 부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몇 일 전 뉴스에 해병대가 소개된 적이 있다. 훈련강도가 훨씬 강함에도 해병대에서는 이런 총기사고가 거의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이라면 자원한 병사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객관상황이 좋고 나쁨은 마음먹기에 따라 큰 문제가 안된다고 본다. 자원을 했다는 것은 그곳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성취욕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결속력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언론에서는 요즘 신세대들의 특성을 탓하기도 하였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집단생활을 싫어하며 오냐오냐 자라서 규율과 질서를 잘 안지킨다는 등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며, 그러기에 군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가 전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군대도 우리나라 사회의 일부이다. 모든 원인을 군 내부에서 찾지 않고 외부에서 찾는 것은 그 만큼 군대가 과거 강압적인 사회분위기에 젖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가 과거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사회로 돌아가면 군대가 잘 운영될 것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사는 과저로 흐르지 않음을 어찌하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군대의 정체성을 찾고 시대상황에 맞게 총체적 혁신을 해야한다.
개인의 문제나 일면적인 처방으로는 치료를 할 수 없고 이와 유사한 사건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때가 되었다.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가?'
어설픈 병사들 숫자만 늘린다고 전투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숫자는 적지만 일심단결하는 정도에 따라 전투력은 규정된다고 생각한다. '모병제로 바꾸면 군을 기피하기에 군인수가 줄어들어 결국은 나라가 북한으로 부터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일반적인 징병제 주장론자들의 근거일 것이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렇게 어거지로 군대에 끌고오니까 군기강도 해이해지고 돌발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라고. 마음도 없는 사람들을 억지로 입대시켜 놓고 정신력이 문제가 있다는 둥,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둥 개인들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빽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야 국적을 포기하면서 까지 군대를 기피하고 있는 현실이지 않는가?
군생활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복지문화시설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군대는 교도소가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 삶을 뒤로하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회적 우대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그나마 군대생활을 보람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생활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군대에 보낼 것이다. 그 부모들이 돈이 없어서 빽이 없어서 자식을 군대에 보낸다는 자책감이 들게 해서는 안된다. 자식에게 미안한 부모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군대에 가고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와 사회생활에 복귀할 수 있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나 만의 욕심일까?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만인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옛말을 믿으며 모든 이들의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